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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언제나 거짓말쟁이
손아람(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김남희(일러스트레이션) 2014-08-26

“크레타인, 언제나 거짓말쟁이, 사악한 짐승, 게으른 돼지.” 크레타인이었던 에피메니데스의 시는 문학보다 논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크레타인이 언제나 거짓말쟁이라면, 이 시는 거짓인가? 거짓이라면 크레타인은 언제나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참이라고 해도 크레타인은 언제나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논리학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2천년이 걸렸다. 결론은 이 역설이 술어논리의 근본적인 결함에서 비롯됐으므로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사고방식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거짓말의 지배를 받을 운명이다.

제주도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말했다. “벚꽃의 원산지는 원래 제주도인데 일본인들은 자기 꽃이라고 우기죠. 일본인들은 항상 거짓말을 해요.” 끝없이 이어지는 일본인에 대한 험담을 듣기 지겨워서 사실 내 국적이 일본이라고 대답해버렸다. 당황한 표정으로 손님은 그런 사람 같지 않다고 얼버무리는 그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본인이라면 나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왜 내가 그런 사람 같지 않다는 건가? 지난 대선 때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남자가 손에 든 피켓에는 “선덕여왕 이후 1400년만에 여자 대통령! 남자의 거짓말에 속지 말자!”라고 써 있었다. 이 남자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

자가당착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므로 인간의 뇌는 자가당착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뇌촬영 거짓말 탐지기의 개발자인 대니얼 랭글밴에 따르면, 강한 믿음은 거짓을 주관적인 진실로 만든다.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는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신체징후를 탐지하는 것이다. 오류는 기계의 결함보다는 인간의 결함 탓이다. 발화자가 믿고 싶어 하는 거짓을 뇌는 진실로 처리한다. 뇌가 구분하지 못한다면 뇌활동을 탐지하는 기계가 구분할 리 없다. 외과의사들은 수면 마취 과정에서 짧은 시간 동안 ‘고해성사’를 경험한다고 증언한다. 대뇌피질이 기능을 잃어가면서 환자는 거짓말을 창조하는 정교한 작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환자의 혼잣말은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진실일까?

연이어 벌어진 군대 왕따 사건이 ‘약자에 대한 가해’로 정리되어 공분을 살 때 나는 그것이 전형적인 바깥의 시선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비합리성에 대한 분노다. 나는 공간 내부자로서 몇번의 왕따를 목격했는데 약자에 대한 가해로 인식되는 왕따는 단 한번도 없었다. 왕따는 늘 악자에 대한 응징으로 행해졌다. 합리적인 사람은 합리적으로 동참한다. 합리성은 자기통제보다는 자기정당화에 더 유용한 기제다. 합당한 조건 아래서만 증오를 표현해야 한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은 늘 합당하지 않은 증오를 발산한다. 소수의 합의가 최종심급이 되는 폐쇄공간에서는 수위가 통제되지 않을 뿐이다. 훌륭한 거짓말은 거짓말쟁이부터 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