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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시어머니와 스파이, 닮았네~

이스라엘 드라마가 원작인 <스파이>의 한국화 방식

각자 비밀을 숨기고 있을 땐 평화롭던 가정이 가족의 안전을 위해 서로의 비밀을 염탐하면서 첩보극의 주 무대가 되는 드라마가 있다. KBS 금요 드라마 <스파이>의 원작인 이스라엘 드라마 <The Gordin Cell>은 이스라엘에 정착한 전 KGB 요원 부부가 공군 소속인 아들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자, 아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스파이 업무에 뛰어들고 아들 역시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이를 리메이크한 <스파이>에선 한국 과학자 김우석(정원중)을 납북하려다 그와 사랑에 빠진 간첩 박혜림(배종옥)이 동료를 배신하고 신분을 세탁해 한국에 자리잡았고, 그들의 아들 김선우(김재중)는 국정원 요원이 되었다. 혜림 부부는 아들이 그저 평범한 공무원인 줄 알았고, 늘 예민하던 엄마를 안심시키려 진짜 직업을 숨겼던 아들은 엄마가 간첩이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리메이크 소식을 듣고 유튜브에서 원작의 트레일러를 찾아보던 중 제일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도청기를 설치한 엄마가 아들과 그의 애인 사이에 살 부딪치는 규칙적인 파열음(!)까지 냉정하게 감청하던 장면이다. 결혼한 아들 부부의 방을 엿듣는 시어머니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드물지 않은 한국 실정에선 이 상황에 비정상적인 집착 외의 것을 보여주기 쉽지 않을 텐데…. 아들을 지키려는 모성과 아들의 연인을 견제하는 심리가 혼재된 사생활 침해인 동시에 프로 스파이의 면모를 보여주는 원작의 장면을 어떻게 현지화할지가 무척 궁금했다.

<스파이>의 4회. 사무실에서 대기해야 한다며 밤늦게 집을 나선 선우의 뒤를 밟던 혜림 부부가 도착한 곳은 아들의 애인인 이윤진(고성희)의 원룸이다. 국정원 정보를 캐내려 아들에게 도청기를 설치했던 혜림 부부는 윤진의 원룸에서 벌어지는 소꿉장난 같은 살림 놀이를 엿듣게 된다. 배달피자에 딸려오는 피클을 아껴뒀다 카레와 함께 내놓고 레스토랑 기분을 내는 젊은 연인의 알콩달콩한 대화에 혜림은 “여보, 선우 분명 카레 싫어했죠!” 하고 발칵 짜증을 낸다. “집에서 따뜻한 밥 먹고 쉬다 나가야지. 첩보원 일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닌데.” 그간 가정에서 안락한 쉼터와 식사를 제공하던 혜림이 자기 역할을 빼앗긴 질투심을 선배 직업인의 충고로 포장하는 재미있는 장면이다. 섹스를 키스 정도로 수위 조절한 것은 예상한 바였지만, 집에선 꼼짝도 하지 않던 아들이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뒷모습을 황망하게 지켜보는 혜림 부부의 코믹함은 꽤 마음에 드는 리메이크다. 생사를 오가는 첩보물의 긴장을 한껏 끌어올렸다가 적재적소에 한국 가족 드라마의 클리셰를 겹쳐 웃음을 유발하는 노련한 솜씨. 단막극에서 여러 번 호흡을 맞췄던 작가와 연출가의 조합이 미니시리즈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사례다.

+ α

회색 옷의 스파이

아들의 애인인 윤진을 저녁식사에 초대한 혜림은 회색 니트 터틀넥 차림으로 손님을 맞고, 외투를 벗은 윤진 또한 재질만 약간 다른 회색 터틀넥을 입고 있다. 제복을 제외하면 같은 장소에 있는 주요 여성 캐릭터가 같은 옷을 입는 장면은 몹시 드문데, 여기서는 두 사람이 동일한 내력을 감추고 있다는 힌트가 된다. 같은 회에서 조직을 이탈하는 여간첩 역시 회색 터틀넥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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