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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약자가 이긴다
손아람(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김남희(일러스트레이션) 2015-02-24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는 후각이 발달한다. 멀리 떨어진 사냥감의 위치를 탐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어나 갯과와 고양잇과 동물이 그 예다. 반면 초식동물은 근접 포식자를 정확히 식별해야 하므로 시각이 발달한다. 대표적으로 기린, 타조, 얼룩말 같은 초원의 초식동물은 특출난 시각을 지녔다. 인간의 시각 역시 뛰어난 축에 속한다. 인간의 조상이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잡아먹혔던 초식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포유류를 통틀어 영장류는 가장 많은 색깔을 구별하고, 가장 뛰어난 공간 지각력을 가지는데, 이는 풀보다는 나무에 달린 색깔 있는 과육을 주로 섭취해왔다는 뜻이다. 인류의 조상이 나무 위로 올라가 유배 생활을 자처한 이유는 뭘까? 운동 능력이 떨어져 육상에서는 포식자로부터 뛰어 도망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즉, 진화생물학적 기준에서 볼 때 인류는 한때 열등한 생태학적 지위를 지닌 종이었다. 그 결과로 밟아야 했던 진화의 경로는 잘 알려져 있다. 나뭇가지 사이를 이동하다보니 손가락이 발달했고, 나뭇가지에 매달리다보니 척추가 일자로 펴져 직립보행에 적합해졌고, 직립보행을 하다보니 손가락으로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었고, 다른 작업을 하다보니 뇌가 발달했고, 그 뇌로 지구를 지배하게 된다.

적자생존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논리는 다르다. 적자생존의 진화법칙은 생태계의 최약자를 최상위 포식자로 만든다. 약자는 생존에 적합한 해법을 찾기 위해 불가피하게 모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진화적 압력 속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 대부분이 실패하더라도 성공한 하나의 전략이 지배 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생태 역학적 균형을 가져온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종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신대륙과 아시아로 이동한 민족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약소 집단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인류 대이동의 종착지에 위치한 미국과 중국과 일본이 경제 규모의 선두 3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우연이라 하겠다. 15세기 서유럽의 르네상스와 19세기 독일의 약진 역시 분열의 역사를 통해 담보할 수 있었던 문화적 다양성 덕분이었다. 진화의 역사에서 패권이 승계되지 않고 패권 바깥으로부터 전복되는 현상은 시야를 넓혀도 여전히 관찰된다. 5억년 전, 척추라는 거추장스러운 돌연변이 때문에 온 바다 생물의 반찬이었던 하이코익시스는 포식자를 피해 땅으로 도망쳤다. 육상에서 척추가 중력의 지지대 역할을 해준 덕분에 하이코익시스의 후예들은 몸집을 한계 이상으로 부풀릴 수 있었고 곧 생태계의 제왕 자리에 올라섰다.

저서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에서 고승덕은 자신이 고시 3관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못생긴 외모를 꼽았다. 젊은 시절 연애 경쟁력이 떨어졌기에 만회를 위해 고시 공부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일말의 진실이 느껴지는 고백이다. 그는 ‘포기했을 때’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획득한 우월한 연애 경쟁력이 책임 능력의 가역대를 넘어섰을 때 장엄하게 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