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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네놈을 살려두긴 쌀이 아까워
주성철 2015-08-14

최근 만화가 강풀에게 벌어진 일로 인해 공분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카카오 만화 속 세상에 웹툰 <무빙>을 연재하고 있던 그는 지난 7월 말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잠시 기한을 정하지 않고 휴재하겠다”는 요지의 공지를 올린 적 있는데, 잠시 가족 곁을 지키며 마음을 다스리고 돌아오겠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함께 안타까워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작가는 마음대로 쉴 수 있어 좋겠다’라는 식의 비아냥 섞인 댓글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었고, 만화가와 고인을 향해 도를 넘어선, 감히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러운 댓글도 상당수 있었다.

이에 강풀은 SNS를 통해 “온라인에서 만화를 그려온 지난 십 몇년 동안 한번도 고소를 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밝힌 뒤 “더이상 참지 않습니다. 모든 악플들을 캡처해두었고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곧 봅시다”라는 글과 함께 악성댓글을 캡처한 한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그의 단호하고도 격앙된 심경이 충분히 이해되는 내용이었다. 현재 그가 소속된 누룩미디어는 강경대응 의지에 따라 소송 관련 절차를 준비 중이다. 이후 그의 글을 지지하는 댓글이 증가하는 속도와 이미 달려 있던 악플들이 삭제돼가는 속도는 거의 비슷하게 빨라졌다. 그렇게 벌금이 무서웠다면, 제발 생각 좀 하고 살 것이지.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노회찬은 요즘 아베와 일베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다. 강풀을 향해 악플을 단 쓰레기 같은 종자들이 모두 일베는 아니겠지만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정황은 충분히 포착되고 있다. 댓글의 닉네임을 보고 알아낸 사람도 있고, 하여간 그 증거는 꽤 많다. 한편, 비슷한 시기 두 다리가 없는 한 아프리카 소년의 그 유명한 사진(잘려진 다리 부분을 흰색 분필로 그려넣은 가슴 아픈 사진)을 며칠 전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사에 빗대 ‘하사 사진 발견’이라고 키득대며 올린 게시물도 봤다. 진정 할 말을 잃었다.

어쨌거나 강풀은 결심을 바꿀 일이 없어 보이고, 분명 눈물 콧물 짜내며 선처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게 생겨날 것이다. 문득 과거 용서를 구했던 악플러들 중 최고의 변명을 둘러댔던 이가 떠오른다. 소녀시대 태연이 악플러들을 고소한다는 경고에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고양이가 우연히 타자를 쳤던 것 같다”며 그 악플은 자신이 단 게 아니라 고양이가 단 것이라고 용서해 달라 읍소했던 것.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어떤 변명에도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문득 척 노리스가 주연한 <스트롱맨>(1991)의 한국 출시 VHS 비디오 재킷 카피도 떠오른다. “네놈을 살려두긴 ‘쌀’이 아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