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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조선시대 왕은 왜 빨리 죽었어요?

<사도> <왕의 남자> 등에서 살펴본 왕의 도(道)

<사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연약한 50대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학교가 산에 있어서 산바람이 너무 세면 휘청거리기는 했다, 진짜로). 피골이 상접하고 창백하고 피부가 처지고 기운이라고는 없어서 폐병 걸린 일제시대 지식인처럼 보였던 (근데 왜 지식인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폐병에 걸리는 걸까) 그분에겐 반전이 하나 있었으니…. “얘들아아아아! 장조로 선생이 서른아홉살이래애애!”

세상살이 험한 걸 몰랐던 소녀들은 경악했다. 뭐라고? 그럼 우리도 20년만 더 살면 저렇게 되는 거야? 아니지,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조로 선생만 이 모양으로 늙은 거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미스터리는, “조로 큰딸이 우리 학교 3학년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버지는 서른아홉인데 딸은 열아홉, 우리 혹시 일제시대 즈음에 살고 있는 건가. 소문을 물고 돌아온 우리 반 제비양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진상은 이랬다. 아들 귀한 가문의 5대 독자로 태어난 조로군은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혼인,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에 몸을 바쳐 밤낮없이 생산에 종사하였으나 하늘이 무심하여 여덟번 연속으로 딸을 낳았고, 마침내 아홉째는 아들을 봤지만 하나로는 불안하다는 집안 어른들의 강요에 다시 한번 몸을 바쳐, 불행하게도 막내딸을 얻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당시 밝혀진 6대 독자 나이 여덟살, 11년 동안 애가 아홉, 중간에 쌍둥이도 없대. 이쯤에서 여고생들은 계산을 포기했다. “애 낳는 게 힘든 줄은 알았지만… 만드는 것도 쉽진 않구나.”

그랬기에 국사 선생님이 의기양양하게 이런 사실을 선포한 순간, 소녀들은 심드렁했다. “조선시대 국왕의 평균 수명은 마흔여섯이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이 해서 그래, 한 여자하고만 열을 낳아도 서른아홉이 쉰아홉 된다고.

<간신>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조선시대 국왕들이 단명한 이유는 그것 말고도 많았다. 고칼로리 식단과 운동 부족,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화병(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잘도 이만큼 살았구나). 그중 으뜸은 화병일지니 내가 아는 이만 해도 울화가 원인이라는 종기로 죽은 임금으로 문종과 정조가 있고, 울화가 사망 원인의 하나였다는 태조가 있으며, 존속살인과 대량 학살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세조는 나병과 불면증으로 죽었다는데, 조선시대 로열 패밀리 버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인 <사도>를 보니 한명을 추가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사도세자, 아버지의 울화가 부른 자식의 울화가 야기한 아버지의 울화로 인한 존속살인의 피해자. 해마다 명절만 되면 존속살인이 증가한다는데, <사도>가 하필이면 추석에 개봉하다니 의미심장하다.

출신이 천한 후궁의 아들로 태어나 궁궐 바깥에 살면서 고기를 못 먹고 본의 아니게 나물을 비롯한 건강식을 섭취하여 조선의 왕답지 않게 여든 넘게 장수한 자수성가 임금 영조(송강호)는 온갖 사교육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꼬맹이가 경서를 줄줄이 외우면서 한 구절 빼먹었다고 불합격을 내리다니, 유서 깊은 암기 위주 교육의 폐해다. 왕년에 사서삼경 중에서 삼서를 읽었던 나로서는 (장학금 준다 그래서 울며 울며 읽었는데 <논어>와 <맹자>를 거쳐 <대학>을 읽고 있는 와중에 장학생 발표가 나서 공부를 접었다)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거 진짜로 어렵다고. 특히 <논어>, 문장은 짧은데 뜻이 깊어 말수 적은 남자랑 밀당하는 기분이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

공부만 잘하면 뭐하나. 세종은 고기를 좋아하여 삼시세끼 고기만 먹고 공부를 좋아하여 날이 밝도록 공부만 했다는데, 사람이 20년 정도 그렇게 살면 송중기가 한석규 되어 만백성이 슬퍼한다(출연진이 중년으로 바뀌면서 숱한 시청자가 애통해했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참조).

<왕의 남자>

사도세자처럼 공부는 싫어했지만 운동은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렸던 왕으로는 연산군이 있다. 아버지 성종은 “어찌 다른 왕자들과 노는 데만 힘을 쓰고 학문에는 뜻이 없어 이같이 어리석고 어둡느냐?”고 꾸짖었다는데,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유일한 자식, 이복형제들과 사이 좋게 함께 놀면 좋지 아니한가요? 그리하여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연산군은 <왕의 남자> <간신>에서 보다시피 아무한테나 놀자고 조르면서 점잖은 대신들에게 음주와 가무를 강요하고, 싫다는 여자 허리 붙들고 하반신을 밀착하면서, 21세기 기러기 아빠 부장님 부럽지 않은 진상으로 자라난다. 누군가 이르기를 역사는 순환하는 바퀴와 같다더니, 진상의 역사는 뿌리가 깊기도 하지.

<사도>가 끝날 무렵 느닷없이 등장한 정조(소지섭)도 공부만 하다가 어머니 환갑 잔치에서 이제야 한번 제대로 놀아보겠다며 부채춤을 (그것도 춤이라면) 추는데, 그게 우리 부장님이라면 나는 어떻게 호응해야 할지 몰라 술 먹고 설사하는 척하면서 단란주점 화장실에 뼈를 묻었을 거다. 그처럼 춤은 이상하게 추지만 효심은 깊었던 정조는 할아버지와 협상 끝에 사록을 찢고 불태워 꽤 많은 사람을 죽인 아버지의 죄를 덮기로 합의를 보지만… 그러면 뭐하나, 200년 뒤에 드라마 <하늘이시여> <한중록>, 영화 <사도> 등으로 세상 사람 전부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을 알게 되었는걸.

그러니까 공식적인 기록만 고친다고 하여 아버지의 죄를 덮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교과서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얼리어답터 고종

구중궁궐 한 떨기 외로운 왕이 살아남기 위한 두세 가지 개인기

<나는 왕이로소이다>

남 탓하기

<사도>의 영조는 자식 성적이 오르지 않고 말썽만 부리자 세자를 가르친 신하들을 모아놓고 나무란다, 네, 네, 애가 서울대 들어가면 유전자 덕분이고 재수생 되면 과외 선생 탓이지요. 밥을 먹으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집을 나간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충녕대군(이분이 미래의 세종)도 먹을 게 없자 자기 때문에 지지리 고생하는 호위무사(임원희)만 구박하니, 귀한 자리 당신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면 국민이 미개한 탓일까요.

<가비>

취미 생활

왕자 시절엔 마음껏 놀지도 못한 연산군은 어른이 되어도 그다지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정규직 광대로 임용하여 밥 주고 월급 줬더니 장생과 공길에게 왕따당하는 <왕의 남자> 참조) 여자들하고만 놀다가 쫓겨난다. 여자도 없는데 나라도 없었던 고종 또한 스케일이 남다른(그래도 왕이니까) 취미를 키웠으니, 그는 커피만 좋아한 것이 아니라(<가비>) 자기가 좋아서 전기와 전차 같은 온갖 선진문물을 도입한 조선시대 최고의 얼리어답터였다고 한다.

<사도>

엄격한 식단

<사도>의 영조는 자기가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하지 않았다고 자꾸만 뻗대는데, 술은 마셨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덕일의 <조선 왕 독살사건>에 의하면 경종이 죽은 데는 영조와 그를 지원했던 대비가 올린 음식도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경종의 병과 상극인 게장과 생감, 인삼차를 올렸다고 한다. 감은 그냥 그렇고 인삼은 매우 싫지만 게장이라면… 아, 어느덧 가을, 꽃게철이로구나. 조선의 다른 왕들의 독살 의혹에도 종종 음식이 오르내린다. 문종은 수양대군과 친했던 의원이 먹으면 안 되는 꿩고기를 줬다고 하고, 선조는 광해군이 보낸 찹쌀 약밥을 먹고 죽었다고 하는데, 약밥은 싫지만 꿩고기 완자 올린 냉면이라면… 아, 내일은 우리 동네 꿩냉면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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