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뽀로뽀로미와 강백호 사이, 번역의 딜레마
주성철 2016-03-04

‘뽀로뽀로미’와 ‘반야바라밀’의 차이는 뭘까.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 연작에서 시간 이동을 하려는 주성치가 달빛 아래 월광보합을 들고 외치는 주문이 바로 뽀로뽀로미다. 실제 대사인 반야바라밀의 광둥어 발음을 보다 더 귀엽고 ‘주성치스럽게’ 풀어낸 것이다. 이를 풀자면, 불교에서는 반야(지혜)를 최고의 바라밀(보살이 부처가 되는 과정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자 열반으로 가는 최상의 길로 설파하고 있다. 말하자면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보살이 수행을 하는 중 진리를 인식하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팩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주성치의 팬들이라면 오래전 VHS 비디오로 출시됐던 <서유기> 연작의 자막이었던 뽀로뽀로미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다.

그런데 일부 애호가들이 번역은 무조건 가감 없이 실제와 가까워야 한다는 이유로, 뽀로뽀로미를 정확하게 반야바라밀로 바꿔달라고 출시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뽀로뽀로미가 실제 발음과 딱히 크게 다르지도 않을뿐더러 영화에서 이형환영대법으로 저팔계(오맹달)와 자하선자(주인)의 몸이 바뀌고, 우마왕의 여동생과 사오정의 몸이 뒤바뀌면서, 주성치는 오맹달에게 뽀뽀를 하려다 그만 구역질을 하고 만다. 그처럼 뽀뽀가 남발되는 영화에서 뽀로뽀로미라는 주문은 괜히 잘 어울린다. 번역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주성치의 팬이었기에 가능한 재치 넘치는 번역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랜 홍콩영화 팬들이라면 주윤발을 저우룬파라 불러서 왠지 최불암의 웃음소리가 떠오르고, 장국영을 장궈룽이라 불러서 왠지 4월1일에 서오릉에 가야만 할 것 같은 서글픈 요즘, 사람들이 너무 빡빡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편, 마틴 스코시즈는 <황야의 무법자>로 시작된 세르지오 레오네의 일련의 ‘스파게티 웨스턴’ 혹은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을 ‘이탈리안 웨스턴’이라 부르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탈리안 웨스턴이라고 하면 뭔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느낌이지만,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하면 어딘가 변종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또한 모르는 바 아니지만, 특정 용어가 빈번히 사용되고 각인되면서 얻게 된 독창적인 무드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왠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러야 총을 잘 쏠 것 같다. 이탈리안 웨스턴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학구적이어서 싸움을 못할 것만 같은 것이다.

또한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아니라 원래 원작 이름 그대로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왼손은 거들 뿐”이라고 말하면 뭔가 허전해서 왠지 오른손도 거들어야 할 것 같고, 북산고도 원작 그대로 쇼호쿠 고등학교라고 하면 왠지 다니던 학교가 통폐합되어 사라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같은 텍스트를 두고 새로운 독자와 관객이 계속 등장하는데, 언제까지 ‘카나가와현의 북산고 1학년 강백호’라는 90년대식 표현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북산고의 경우 비디오 버전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우리말 독음으로 읽어 ‘상북고’로 나왔고, S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버전에서는 ‘신성고’로 나왔다. 별 기준 없이 학교 이름이 세번이나 바뀐 것이다. 말하자면 번역에 있어 흔들림 없는 ‘원칙’과 유연한 ‘균형’ 모두 중요하다. 그래서 어려울뿐더러 상상 이상으로 창조적인 작업이다. 이번 특집이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