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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인권은 잊었나 - 성 소수자 혐오로 얼룩진 총선
이송희일(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이은주(일러스트레이터) 2016-04-26

16년 만의 여소야대. 야당의 승리를 예측한 방송사의 출구조사 발표부터 SNS에는 실시간으로 안도의 한숨이 파도쳤다. 야당 지지자들은 드디어 박근혜 정권이 끝났다며 호외를 돌렸고, 박빙의 반전 속에서 탄식과 환호가 교차됐다.

그러나 그 요란한 개표 과정에서 소외된 채 공포에 잠식된 표정으로 계속 마우스를 클릭하며 선관위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밤 나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새로고침을 해야 했다. 기독자유당의 비례대표 2석 확보가 예상된다는 출구조사가 타전됐기 때문이다. 정말 원내정당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삽시간에 공습했다.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를 전면에 내세운 극우정당의 원내 진입. 검은 미래임에 틀림없다. 득표율이 2.7%를 넘나드는 동안, 그 정당 기독교인들 수백명은 두팔을 쳐든 채 광폭하게 통성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성 소수자들은 제발 3%를 안 넘기를 바라며 새벽까지 새로고침을 하는 이 기괴하고도 웃픈 광경. 이번 총선의 가장 통렬한 이면일 것이다.

결국 기독자유당의 원내진입은 실패했다. 하지만 성 소수자들도 패했다. 야권이 승리했을지 모르겠지만, 성 소수자들은 자명하게 패배했다. 원외에서 기독자유당이 위협했다면, 원내에선 여야가 한목소리로 동성애 혐오를 공언한 초유의 총선, 그야말로 성 소수자들이 선거용 제물로 공양된 ‘제삿날’이었다.

먼저 김무성과 박영선이 기독교 기도회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두당의 당론이 동성애와 이슬람 혐오임을 간증했다. 93년 동성애자들이 마침내 세상을 향해 벽장 문을 연 이래, 이렇게 여야가 공통되게 동성애 혐오를 공언한 건 처음이다. 뒤이어 박지원이 동성결혼을 비판했고, 평소 인권에 대해 소신발언을 했던 표창원마저 비난 확산을 피하기 위해 “동성애 확산”에 반대한다며 표정을 바꾸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임박한 선거 앞에서 차별을 선언하는 역사적 순간이 펼쳐진 것이다. 막강한 자금과 조직력을 갖춘 기독자유당이 사상 처음 TV 광고를 통해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사이, 여야 정치인들은 누가 더 성 소수자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는지 경쟁하듯 혐오의 사자후를 토해냈다. 설상가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진보정당들은 1% 득표에도 못 미치고 모두 미끄러졌다.

박근혜 정부를 따라 야권이 경쟁적으로 우클릭을 하면서 빚어진 정치의 급격한 보수화. 민주주의란 말이 무색하게 성 소수자들의 등을 떠밀어 광야로 추방한 배제의 정치. 야권이 승리해서 좋으신가들? 성 소수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는 정치권력에 이제 만족들 하시는가? 야권의 존재 이유를 덜어내니 가벼워 좋으신가?

나서지 말고 벽장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협박하는 이 난폭한 배제의 정치에 의해, 한국 성 소수자들은 23년이라는 가시화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당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을 걸어야 하는 계절이 도래했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