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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디스토피아] 30년 후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가 “정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라고 말하며 뜻을 꺾자, 아들은 법과대학에 못 가겠다고 한 것이 막연한 반항임을 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아니,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소박한 부모님은 공부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이는 자식이 거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지 대단한 출세를 소망하지 않았다. 몇년 후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 바로 변호사로 나서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도 많은 친구들이 겪었던 가족의 반대나 실망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입학한 30년 전 법과대학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았다.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온 학생, 미달이었던 그해에 배짱 지원으로 합격한 학생, 대단한 노력 없이도 여러 시험을 유유히 통과한 기이한 수재, 인문대나 예술대에 갔어야 할 낭만파, 철학에 심취한 괴짜가 고루 있었다. 정치상황이 심각했던 만큼 사회파 학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주류는 대학 졸업 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는 학생들이었다. 최근 어느 동창에게서 듣자하니, 그중 한 학생은 “반드시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다”고 공언했었다 한다. 삼류 드라마에 나올 이야기라 씁쓸히 웃었지만, 내가 순진했는지도 모른다.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간 존경하는 교수님마저 장인될 분이 경찰이라는 말을 듣자, “어디 경찰청장이냐?”고 묻는 바람에 파출소장의 딸을 당황하게 하던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늦됐던 나는 주류와 사회파와 낭만파들 사이에서 겉돌았다.

30년이 흘렀다. 청와대에서 일하다 궁지에 몰린 검사 출신 동창생의 기사가 연일 신문에 오르내린다. 친분이 없어 겪은 바 없지만 동창들에게는 열렬히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지나침이 화를 일으킨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검사를 지망한 친구들 중 속된 말로 잘나가는 친구들은 이제 검찰을 비롯한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철이 덜 든 나는 여전히 주류와 사회파와 낭만파를 오가며 살고 있다.

돈과 권력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복음은 거짓이다. 가끔 불행을 초대하지만, 대개 불행을 막아준다. 행복 자체를 주지는 못하나 행복으로 가는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줄 수 있다. 주류적 삶의 뻔함과 지루함을 비웃기는 쉽지만, 그들도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그런데 돈과 권력은 불과 같아서 따뜻하지만 한순간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기도 한다. 살면선 돈과 권력의 무상함을 깨닫고 그것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현자들을 여럿 만났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는 자신도 추구하고 싶었지만 치러야 할 대가와 체면의 손상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슬쩍 비껴간 것이 아닐까.

대학 입학한 지 30년이 지나 경력의 정점에 들어선 우리 세대 또한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슬슬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 각자 무엇을 택했든 얼마나 지낼 만했든 마침내 모두 손을 털고 떠나야 한다. 사는 동안 어떤 크고 작은 숫자를 이루었건 마지막에는 0을 곱해야 한다. 삶과 달리 죽음은 공평하다. 젊어서는 인생이 결국 무로 돌아간다는 것이 괴로웠는데, 이제는 이상하게도 그것이 위안이 된다. 퍽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