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1일 금요일. 한국 현대사에 남을 두 가지 장면이 연출됐다. 하나는 구치소로 실려가던 초췌한 얼굴의 박근혜 전 대통령, 다른 하나는 1080일 만에 육지로 돌아온 상처투성이의 세월호.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고, 그가 구속되니 세월호가 바닷속 유폐에서 풀려났다. 수인번호 503번이 3.2평 독방 앞에서 울었다는 소문이 돌던 그 시각, 미수습 유가족들은 귀환하는 세월호를 향해 오열을 터뜨렸다. 하나의 추락이 하나의 상승에 길항하는, 하나의 구속이 다른 것의 해방으로 도약하는 이 운명의 엇갈림을 두고 사람들은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한때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의 소유자라고 찬양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인번호 503번으로 전락한 채 눈물을 쏟아냈다며 TV조선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타전하더라도, 시민들의 눈은 귀환하는 세월호를 향해 있었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금요일에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3년 전 살려달라는 유가족의 오열을 외면한 채 국회 레드카펫을 걸어갔던 그 매정한 사람이 이제는 파면의 길을 걷게 된 탓이다. 마치 세월호의 억울한 넋들이 부패한 권력자를 끌어내리고 스스로 바닷길을 열어 육지에 도착한 것만 같은, 만사가 필히 정리(正理)로 돌아가는 사필귀정의 어떤 반듯한 세계를 목도하는 듯싶었던 것이다.
과연,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원혼은 언제든 다시 귀환하기 마련이다.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반복적으로 회귀한다. 세상의 어긋남을 교정하기 위한 유령의 몸부림이다. 가당찮게도, 어쩌면 박근혜는 자신을 햄릿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유령을 통해 아버지가 살해됐다는 것을 알게 된 덴마크 왕자는 복수를 맹세하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온통 어긋나 있어. 오, 저주받은 운명이여. 그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태어난 것이 바로 나였다니.”
복수를 다짐하며 아버지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박근혜와 박정희 유령을 소환해 잘살아보겠다는 속물적 욕망이 만들어낸 이 타락한 소동극은 감옥으로 끌려간 마지막 페이지까지 <햄릿>의 풍경을 모방하지만, 올바름과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는 가짜 모방 서사에 불과하다. 올바름은 몫을 뺏긴 사람들, 목소리가 지워진 존재들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햄릿이 존재한다면, 바로 광장에 선 촛불시민들일 것이다. 유령의 설움에 공명하고 온전히 그 부채를 떠안아야 할 사람들. 저 비통한 몰골로 육지에 귀환한 세월호야말로 이 시대의 유령일 터다.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이 어긋난 세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막 이승에 당도한 세월호 유령. 우리 안의 적폐를 낱낱이 도려내라는 준엄한 명령, 끝이 아니라 비로소 이제 시작이라는 다그침을 타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바로, 햄릿의 이 충고를 새겨야 할 때다. “그러니까, 이 유령을 귀한 손님으로 환영해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