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디스토피아로부터
언러키 인 라이프
이동은(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마이자 2018-06-06

김 작가는 노트북 PC에 지원서 양식을 띄워놓고 한숨을 쉬었다. 상반기 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 사업. 운영주체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정한 예술활동증명 기준을 충족하며,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인 저소득 예술인에게 조건에 부합하는 순서대로 일시금을 지급하는 복지 사업이다. 김 작가처럼 가난한 문화예술인을 위한 좋은 제도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충분히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번거로운 서류 준비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김 작가의 한숨의 이유. 그는 잠시 노트북 덮개를 닫고 TV를 켰다. “<언러키 인 라이프>, 마지막 회를 시작합니다!” 사회자가 외치자 TV 화면에 그야말로 불운했던 출연자들의 사연이 빠르게 편집돼 소개됐다. 온갖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한 가운데 모 방송사는 급기야 가장 운 나쁜 사람을 뽑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회 속 불운한 이를 구제하고 위로한다는 제법 그럴싸한 방송 예고편이 나가자 각지에서 속칭 운발 안 좋은 이들이 상금 1억원을 타기 위해 몰려들었다. 프로그램은 언러키한 출연자들과 사연으로 곧 화제를 모았고, 러키하게 시청률이 뛰어올랐다. 방송은 매회 시청자 투표를 통해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출연자를 탈락시켰다. 네티즌들은 그렇게 떨어지는 것이 운이 나쁜 방증 아니냐며 논쟁을 벌였고, 예선에서 탈락한 자신이야말로 가장 운 나쁜 사람이라고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 우여곡절과 치열한 경쟁 끝에 가장 운 나쁜 동시에 운 좋은 두명이 결승 무대에 올랐다. 사회자가 수상자 호명에 뜸을 들이는 순간, 김 작가는 TV를 껐다.

저게 뭐야. 지속해서 불운이 따른 사람이라도 결국 상금을 받으면 행운아인 건데. 그럼 마지막 관문에서 떨어진 사람은? 그야말로 진짜 운이 더럽게 나쁜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애초 의도에서 벗어나게 돼버리는 이상한 프로그램이잖아.

1등과 최고를 뽑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인지 모른다. 가장 잘한 사람을 뽑으면 되니까.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평가 기준에 따르면 된다. 때론 기준과 심사 결과에 공정성 시비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자기부정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역설이 발생한다. 경쟁 자체가 모순이다.

김 작가는 투덜거리며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쓰다 만 지원서 양식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가난의 여건을 지녔음을 이 서류들로 입증해야 한다. 제때에 제출하지 않거나,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거나, 혹은 운이 나쁘면 충분히 가난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불운과 가난을 인정받는 것이 운이며 노력이 따라야 하는 세상이라니. 이것도 결국 불운을 겨뤄 행운을 노리는 오디션이구나. 그는 생각했다.

서류 준비를 마무리할 때 즈음 김 작가는 적합한 지원서를 제때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옅은 죄책감을 느꼈다. 이 소박한 복지가 절실할 누군가는 정작 가난을 입증할 충분한 ‘능력’과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