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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영화비평] 그리고 요시코는 영화가 되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영화 만들기를 은유하는 방법

<한여름의 판타지아>

1.

<한여름의 판타지아> 1부에서 감독인 태훈(임형국)은 조감독 미정(김새벽)과 함께 영화 촬영을 염두에 두고 고조시를 이틀간 답사한다. 첫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취재원은 공무원 유스케(이와세 료)다. 고조시의 현황에 대해 말해주고 도시 곳곳을 안내해준다. 둘쨋날 그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겐지다. 요시노강과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고 시노하라 마을까지 데려가 취재할 수 있게 해준다.

따지고 보면 둘 중 겐지가 더 큰 도움을 주었다. 타지 출신인 유스케와 달리 겐지는 고조 사람이라서 더 상세히 일러줄 수 있었다. 심지어 겐지에겐 첫사랑 추억담을 포함해 영화에 넣을 개인적 이야깃거리가 더 많았다.

유스케와 겐지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온 여성과 과거에 만났던 일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스케는 태훈과 미정을 만났듯 공무원으로서 이전에도 고조에 온 한국 여성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겐지는 오사카에서 일했을 무렵 술집에서 마주쳤던 한국 유학생 여성을 마음에 둔 적이 있었다. 두 기억 중 로맨스영화로 볼 수 있는 2부 내용에 좀더 정서적으로 근접한 것은 겐지의 추억이다. 그때 혹시 로맨스가 있었냐는 질문에 유스케는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없었다”고 말하지만, 겐지는 질문을 받지 않았는데도 그 한국 여성이 맘에 들어 말도 걸고 만나기도 했지만 오사카를 떠나면서 헤어졌다고 술회하니까. 그러니 궁금해질 수 있다. 왜 태훈은 겐지가 아니라 유스케를 영화화했을까.

2.

그런데 태훈이 나중에 영화를 만들 때 유스케를 선택한 판단은 옳은 것일까. 일단은 그렇게 보인다. 2부에 등장하는 유스케라는 캐릭터는 1부의 배우 이와세 료가 다시금 연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극중 이름도 1부에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하다. 2부가 혜정이란 캐릭터를 통해 거의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좀 불투명한 인물이다. 고조로 흘러들어오기 전의 일이나 한국에 두고 온 현재 상황이 친구나 애인과의 두 차례 통화 장면으로 어느 정도 암시되지만 이 대화들은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없도록 처리되어 있어서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로맨스 감정에 있어서도 혜정은 유스케에 비해 좀더 불확실해 보인다. 심지어 혜정이란 이름은 2부에서만 쓰인다. 1부와 2부의 유스케가 인물 설정에서의 몇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데 비해 2부의 혜정은 1부의 미정과 느슨하게만 연결되어 있다.

혜정을 미정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두 인물을 배우 김새벽이 모두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정은 미정과 이력이나 성격에서 이렇다 할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극중 감독인 태훈이 이후에 만들 영화에 미정을 넣어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취재 과정에서 “(이전에 만났던 한국 여성이) 미정씨와 닮았어요”라는 유스케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2부는 1부의 유스케가 초대한 상상의 인물 혜정의 이야기이지 태훈과 함께 유스케의 사연을 들었던 동료 미정의 이야기가 아니다. 2부의 혜정이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1부의 유스케가 과거에 배우 꿈을 갖고 있었다고 태훈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즉 혜정은 미정의 정체성을 이어받기보다는 오히려 유스케의 잊혀진 꿈을 형상화하거나 유스케의 특성을 분유하고 있는 존재에 가깝다. 그게 유스케와 달리 2부의 주인공으로 미정이란 이름을 쓰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1부에서 부분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졌던 유스케는 그 연장선상에서 2부에선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경계가 흐릿한 혜정과 달리 관객에게 유스케는 감정적으로나 이력으로나 훨씬 더 명확해 보인다. 그렇게 보면 태훈이 창작 과정에서 단단하게 쥐고 갈 수 있다고 여겼던 건 바로 유스케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태훈은 영화를 만들면서 겐지는 정말 잊었던 걸까.

3.

1부의 제목은 ‘첫사랑, 요시코’다. 요시코는 중년인 겐지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여자아이다. 1부의 제목 자막을 제외하면 <한여름의 판타지아>에는 요시코가 모두 다섯 차례 언급된다.

첫 번째는 고조에서의 첫날 취재를 마치고 밤에 마을을 산책하던 태훈이 길을 잃었을 때다. 골목 저편에서 나타난 한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광경을 태훈이 유심히 쳐다본다. 하지만 태훈은 그 소녀를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요시코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다음 날 시노하라에 갔을 때다. 인터뷰 도중 겐지가 불쑥 오사카 추억담을 꺼낸다. 한국 유학생 여성을 보고 반했는데 초등학생 때 첫사랑과 빼닮았기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이때 겐지는 첫사랑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태훈은 이번엔 겐지의 첫사랑에 대해 들으면서도 그게 요시코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한다.

세 번째는 태훈이 시노하라 초등학교에 가서 오래된 사진을 보았을 때다. 운동장 조회 장면이 담긴 그 사진에서 어린 겐지가 어딘가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고 태훈이 지적하자 겐지는 “요시코”라고 짧게 일러준다. 그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던 태훈은 몇 시간 전 겐지가 말한 첫사랑 이야기를 뒤늦게 떠올리곤 “아, 첫사랑 요시코”라고 말을 받는다. 그러곤 다시 사진을 골똘히 쳐다보는데 스크린에 가득 인서트된 사진에선 요시코가 없다. 그저 어린 겐지가 누군가를 쳐다보는 모습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 번째에 이르러 태훈은 요시코가 누군지 알게 됐고 언급되는 맥락도 파악하게 됐다. 그러나 정작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 사진에서 요시코는 프레임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태훈이 그날 밤 꾸는 꿈속에서다. 태훈이 교실로 들어설 때 혼자 실로폰을 치던 소녀가 돌아보며 “겐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계속 기다렸잖아”라고 말을 건넨다. 그 말에 태훈은 “요시코?”라고 탄식하듯 내뱉는다. 이번엔 얼굴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대화까지 나누었다. 하지만 그건 꿈이었다.

한 차례 더 있다. 그런데 그건 흥미롭게도, 겐지가 배제된 채 만들어진 것 같았던 2부에서다. 1부에 등장했던 시노하라 초등학교 교실이 다시 나오는데, 혜정이 실로폰을 치고 있을 때 유스케가 프레임 속으로 들어와 합주를 한다.

어쩌면 이 숏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이면서 이야기들을 중단시켰던 매듭이 동시에 풀리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2부에서 유스케는 겐지의 아들일 수 있다는 게 암시된다. 그리고 혜정은 요시코와 닮았다는 이유로 겐지가 반했던 ‘한국에서 온 여자’다. 실로폰을 연주하고 있던 혜정에게 유스케가 다가와 연주법을 배워가며 합주하기 시작할 때, (익사자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처음 이 영화에 등장했던) 겐지는 자신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물에 젖은) 요시코 곁으로 돌아와 마침내 합류한다.

시노하라로 돌아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냐는 질문에 겐지는 요시코를 닮은 오사카의 한국 여자 얘길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더이상 요시코가 존재하지 않는 시노하라에 돌아와 살고 있는 겐지의 마음속 오랜 미련은 오사카엔 요시코(를 닮은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태훈은 영화를 만들며 혜정을 통해 시노하라에 요시코를 불러들임으로써 겐지의 오랜 회한을 없애주고 공간과 인물을 화해시킨다. 유스케의 과거 꿈을 현재의 직업으로 갖고 있는 혜정과의 합주를 통해 유스케의 과거와 현재 혹은 꿈과 현실도 포개놓는다. 태훈이 꿈속에서 요시코에 의해 겐지로 불렸다는 사실과 2부의 끝에서 유스케가 담배를 피우려다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던 모습이 1부의 끝에서 태훈에 의해 고스란히 선행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합주 장면에서 영화는 결국 창작의 주체와 대상까지 겹쳐놓는다(이전에 태훈은 무연고자들이 나란히 묻힌 묘지를 보며 “그래도 같이 모여 있어서 쓸쓸하진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창작에 대한 고민과 모색의 플롯을 갖고 있는 영화다. 첫날 일정을 정리하며 미정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태훈은 자신이 만들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결국 누구냐는 거지. 고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룰 텐데 누구냐는 게 중요한 거지.” 그렇다면 결국 누구였을까.

4.

할 말이 아직 남았다. 사실 태훈은 요시코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극중 요시코는 두 차례 직접 나오지만, 그건 태훈 머릿속에서 이뤄진 조합의 반영이다. 첫날 자전거를 탔던 소녀가 요시코일 리가 없다. 다만 길을 잃고 헤매던(다시 말해 아직 영화를 어찌 만들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태훈에게 그 이미지가 선득하게 남았을 뿐이다. 다음날 요시코라는 소녀에 대해 인상적으로 듣고 나서 잠들었을 때 태훈이 꿈속에서 요시코를 전날 마주쳤던 자전거 탄 소녀로 상상했을 뿐이다. 깨어난 후 만들게 된 영화에 요시코를 강력한 배음으로 넣었을 뿐이다. 그리고 요시코는 영화가 되었다. 한번도 요시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자에 의해서.

보았지만 알지 못했던 것, 들었지만 알지 못했던 것, 알았지만 확인하지 못했던 것, 확인하고 소통까지 했지만 상상에 불과했던 것을 감독은 창작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곱씹고 불능의 언덕을 숱하게 넘어가며 마침내, 간신히, 영화를 완성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작품 자체가 영화 만들기에 대한 겸허한 배움의 결과물로 다가온다. 상상으로 떠올린 이야기든,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든 그것을 대체 어떻게 영화로 만들 것인가. 장건재는 그렇게 물었고 이렇게 답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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