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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호의 영화비평] <본 투 비 블루>에서 기능적으로 소비된 쳇 베이커와 재즈

<본 투 비 블루>

로버트 버드로 감독의 <본 투 비 블루>는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생애를 다룬 영화다. 20년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늘 소문으로만 돌던 쳇 베이커의 영화가 드디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전기영화 혹은 음악영화라는, 두 가지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이 얼마나 사실과 부합하느냐로 전기영화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전기영화란 전기문학과 마찬가지로 기록, 구술 등과 같은 일차 사료를 바탕으로 많은 부분 꾸며낸 이야기다. 자료가 없는 부분은 상상으로 메우고, 사실을 놓고서도 주관적인 해석을 첨가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전기(傳記)이고 전기영화다.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 쳇 베이커의 삶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삶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1966년 마약 소지 혐의로 이탈리아에 수감되어 있는 쳇 베이커(에단 호크)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는 그의 전기영화를 찍으려는 할리우드 영화사의 도움으로 곧 석방된다. 그는 영화와 함께 재기를 꿈꾸던 와중에 마약 판매상이 고용한 괴한들에게 촬영 도중 폭행을 당해 앞니가 전부 부러지게 되고, 모든 것을 잃은 채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영화 촬영으로 만난 여배우 제인(카르멘 에조고)이 있었다. 제인의 보살핌으로 약물을 끊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깨워 결국 재즈의 중심지인 뉴욕의 명소 버드랜드 클럽에서 복귀 무대를 갖는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다. 영화상으로 정확히 표현되지는 않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대략 1~2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전개된다.

이 줄거리는 먼저 연도에서 사실과 다르다. 쳇 베이커가 이탈리아에서 수감되었던 것은 1960년이었고 1년 반의 복역 이후에도 독일, 스위스, 프랑스, 영국에서 약물 문제로 구속되거나 추방되어 그가 다시 미국에 돌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쳇의 수많은 마약 사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에서의 구속을 1966년으로 감독이 의도적으로 늦춘 것은 아마도 그해에 벌어진, 쳇 베이커의 삶에서 가장 긴 암흑기를 만들었던 마약상 폭력배의 구타 사건과 곧바로 연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입술이 찢어지고 앞니가 모두 부러진 그는 실제로 1년 동안 그 어떤 작은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이후 긴 암흑기를 거쳐 그가 다시 뉴욕 무대에 선 것(이는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에 해당한다)은 7년 뒤인 1973년이었고 본격적으로 녹음을 재개한 것은 이듬해인 1974년부터였다(이전 8년 동안 그는 단 두장의 앨범만을 녹음했고 두 앨범 모두 다 수준 미달의 연주 때문에 현재는 완전히 잊혀진 앨범이 되었다).

당시 쳇의 곁에 제인이라는 새로운 여인이 나타났다는 영화상의 내용도 사실과 다른 허구다. 쳇과 제인이 쳇 베이커 전기영화 촬영현장에서 만난 것에 대해 버드로 감독은 쳇의 이탈리아 체류 시절 페데리코 펠리니가 쳇 베이커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어 그러한 설정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그 시기 쳇 베이커에게는 세 번째 부인인 캐럴 잭슨과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녀가 있었다. 버드로 감독은 제인이라는 여성이 쳇 베이커 생애의 많은 여성들을 혼합한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했는데, 특히 아프리카계인 제인의 외모는 50년대 쳇 베이커와 함께 살았던 두 번째 부인 헬레마에서 빌려온 것이 분명하다(심지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짧게 삽입된 쳇과 제인의 흑백 화면은 실제 쳇 베이커와 헬레마를 찍었던 사진작가 윌리엄 클랙스턴의 흑백사진을 재현한 일종의 오마주다).

재기와 로맨스라는 상투적인 틀

이러한 허구적 설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도했냐는 점이다. 방종으로 파멸한 한 천재적 예술가가 우연히 만난 여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과거의 모습을 되찾는 재기의 과정을 로맨스와 함께 그리는 것, 아마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스포츠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너무도 상투적인 이야기다. 사실을 훼손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만든 허구의 장치가 말한 것치고는 너무 평범하고 보잘것없다.

1966년 폭행 사건 이후 쳇 베이커의 삶은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그는 여전히 헤로인의 악습을 끊지 못해 절도와 사기를 밥 먹듯이 반복했고 그의 옆에는 구원의 여성이 있기는커녕 부인 캐럴 잭슨 역시 심각한 헤로인 중독자였다. 그는 극빈자 생활지원금을 받을 만큼 빈곤에 허덕였지만 아내와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중독자인 다른 여성들을 만나며 헤로인을 구하러 다니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영화에서 그려진 것만큼 그의 삶은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오랜 친구이자 프로듀서인 딕 복도 당시 그의 곁에는 없었고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의 도움으로 뉴욕 무대에 복귀하기까지(영화에서는 클럽 버드랜드로 이야기되지만 1973년 당시 ‘버드랜드’는 문을 닫았고 대신 쳇 베이커가 복귀한 클럽은 명소 ‘하프노트’였다), 영화에서 그린 것보다 훨씬 긴, 7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은 지옥과도 같은 삶이었다.

재기를 향한 삶과 로맨스라는 상투적인 틀을 벗어던졌다면 영화는 이 시기 쳇 베이커의 보다 다면적이고 심도 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이 그는 영화에서처럼 여성에게 순종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기적이었고 마흔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무책임했다. 7년의 시간 동안 쳇 베이커가 헤로인을 끊은 것은 뉴욕 무대에 복귀하기 전 대략 1년 동안 메타돈 치료(아편 농축액을 복용함으로써 헤로인 금단현상을 이겨내면서 아편 복용량도 서서히 줄여가는 치료법)를 받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뉴욕으로 진출한 후로 쳇 베이커는 별로 극적인 이유도 없이 다시 헤로인에 슬그머니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동시에 그의 예술적 열정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독하게도 살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기량이 예전으로 빨리 돌아가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초조해했으며 여전히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한 열등감을 떨치지 못했고 특히 데이비스가 몰고 온 60년대 말 재즈-록 스타일을 경멸하면서도 불안하게 지켜봐야 했다. 1970년, 오랜만에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있었던 공연을 두고 평론가 랠프 글리즌이 지역신문에 신랄한 악평을 기고했을 때 쳇 베이커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머지 어머니 집 유리창을 주먹으로 모두 박살내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복합적으로 다뤘다면 쳇 베이커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매력적인 음악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그의 독한 열정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매혹적인 음악으로부터 나온다.

1970년대 쳇 베이커 밴드의 피아니스트였으며 그 이전부터 그를 지켜봤던 피아니스트 해럴드 댄코는 1966년 폭행 사건 직후의 쳇 베이커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쳇 베이커는 앞니가 몽땅 없음에도 불구하고 퇴원하자마자 트럼펫을 들고 연습실을 매일 찾아왔다고 한다. 마우스피스를 받쳐 줄 앞니가 없으니 소리가 날 리 없었다. 댄코는 안쓰러워 쳇의 모습을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트럼펫에서는 계속 ‘쉭쉭’ 바람 새는 소리만이 흘러나왔고, 쳇은 피가 섞인 자신의 침을 연신 닦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잇몸에 기대어 불던 트럼펫에서 조금씩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한달이 지났을 때 그 소리는 무척 부드러워져 있었다. 댄코는 트럼펫을 불고 있는 쳇 베이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쳇 베이커에 관한 영화는 없다

단련된 육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포츠 선수와 연주가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버드로 감독이 설정한 ‘재기의 스토리’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재기 과정을 다루는 데 너무 소홀했다는 점이다. 쳇 베이커가 자신의 실력을 회복하는 훈련 과정을 영화는 너무 건성으로 처리했다. 트럼펫이라는 금관악기는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소리를 냄에 있어서 입술과 이가 왜 중요한지를 다루었다면 쳇 베이커의 고통과 부활은 더욱 생생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소리를 다시 내고 음색을 만들며, 결국에는 원활하게 스케일을 연주하는 과정까지가 영화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졌어야 했다. 연주가는 본질적으로 스포츠 선수이기에 쳇 베이커의 부활은 한쪽 팔을 잃었지만 한손으로 철사장을 계속 연마하는 무인의 모습에 더욱 근접했어야 했다.

결국 <본 투 비 블루>는 그 안에 담긴 음악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쳇 베이커가 다시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된 과정이 생략되었고 그 세월마저 대폭 축소되었기에 그 음악은 관객에게 절실하게 들리지 않는다. 더욱이, 중요한 장면에서 쳇 베이커가 들려주는 연주는 실제로 그리 훌륭하지 않고, 게다가 재즈팬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어색한 연주 형식은 도무지 영화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보통 재즈 연주는 곡의 주제를 먼저 연주한 뒤에 그 주제를 바탕으로 즉흥연주를 펼친다. 그리고 그 즉흥연주는 대개 앞에 등장한 주제보다 몇배나 더 길게 연주되고 최소한 주제의 길이와 같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영화 서두에서 쳇 베이커가 전성기에 연주했던 <사라져버리자>(Let’s Get Lost)나 음악계 사람들을 스튜디오에서 초대해 재기의 감동을 준 <나의 귀여운 밸런타인>(My Funny Valentine) 모두 즉흥연주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냥 주제보다 짧게 끝내버린다. 재즈팬의 한 사람으로서 난 이 대목에서 아연실색해버렸다.

이 영화를 처음 국내에 소개했던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버드로 감독을 만났을 때 필자는, 왜 쳇 베이커의 오리지널 녹음들을 영화에 쓰지 않았냐고 그에게 물어봤다. 버드로 감독이 대답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이 영화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쳇 베이커가 재기하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에 그가 음반에서 남긴 녹음들은 내용이 요구하는 것보다 너무 훌륭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음반에 담긴 그의 연주는 그대로 영화에 쓰기엔 즉흥연주가 너무 길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나에겐 두 가지 이유 모두가 이상했다. 우선 쳇 베이커의 녹음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재기가 명백히 드러나는 어느 한순간에서는 반드시 써야 했다. 적어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만이라도 쳇 베이커의 녹음이 쓰였다면 우린 실존했던 쳇 베이커를 만났다는 느낌을 보다 선명하게 느꼈을 것이다. 더욱이 쳇 베이커의 연주가 너무 길기 때문에 영화에 쓸 수 없었다는 해명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재즈 연주가 왜 이리 엉성하게 들리는지를 그대로 설명해준다. 즉 감독은 재즈의 즉흥연주가 부담스러웠고, 즉흥연주가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음악영화를 만들려면 적어도 음악이 찬란하게 빛나는 한순간을 포착해야 하며 특히 재즈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즉흥연주가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흘러넘치는 한 대목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쳇 베이커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재즈란 음악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어떤 전설적인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아 로맨스가 곁들여진 재기와 좌절의 매끈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20년 전부터 영화계를 늘 떠돌던 쳇 베이커에 관한 영화는 아직도 나오지 않은 셈이다. 나는 영화 속에 담긴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아름다운 음악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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