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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O.S.T
2002-02-28

탄탄한 음악, `돈 되는` 힙합

TV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로 한 시대의 텔레비전 채널을 휘어잡았던 흥행의 명수 토머스 카터의 2001년작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는 마치 <더티 댄싱>을 <초대받지 않은 손님>류의, 흑인과 백인간의 사랑이라는 구도에 집어넣은 듯이 보이는 작품이다. 토머스 카터는 이 영화말고도 1993년작 <스윙 키즈>에서도 춤을 중심에 놓았다. 주로 춤의 사회적 성격에 관해 고찰하는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그는 대중문화의 스타일들을 사회적으로 음미하려고 하는 듯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흥행을 노린 작품들이다.

춤을 소재로 한 영화는 자연스럽게 ‘음악영화’가 된다. 발레리나를 지망하는 백인 소녀와 힙합에 일가견이 있는 흑인 소년간의 쉽지 않은 사랑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춤은 두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끈이다. 사실상 그 둘을 연결시키는 것은 ‘힙합’이다. 백인 소녀와 흑인 소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으로서의 힙합이라. 힙합의 ‘긍정적’ 사회적 영향력을 이렇게 부각시킨 영화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처음 힙합이 출현했을 때, 백인들은 그 적나라함이 가지고 있는 비교육성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 ‘리얼’한 까발림에 두려워했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힙합처럼 저질인 음악이 당장 사라지리라고 장담하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오늘날 뭐라고 할 것인가. 아마도 ‘말세다’라고 말하겠지. 그러나 그런 잘못된 취급에 아랑곳없이 오늘도 힙합은 천천히, 끈질기게, 그리고 힘있게 새로운 스타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같은 상업영화가 이렇게 힙합에 호의적인 것을 보면 이제 힙합은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즐기는,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문화가 된 것일까.

이 영화의 스코어는 마크 이샴이 맡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다. <타임캅> <숏컷> 등에서 인상적인 스코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이다. 그는 영화음악뿐 아니라 재즈, 뉴에이지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솔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특히 그가 1990년에 발표했던 <마크 이샴>은 그래미상을 타기도 했다. 그의 이력에 가장 빛나는 대목은 역시 <흐르는 강물처럼>의 감동적인 스코어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것. 영화의 감동과 더불어 이 영화의 스코어는 쉽사리 팬들의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스코어는 마크 이샴이지만 이 영화의 음악적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은 당연히 힙합이다. 영화의 사운드트랙 CD는 비교적 탄탄하게 만들어진 힙합, 리듬앤블루스로 채워져 있다. 흑인과 백인의 만남과 사랑을 그린 영화치고 사운드트랙은 철저하게 블랙이다. 물론 테마는 신디 로퍼의 노래에서 차용한 <Shining through>긴 해도 신디 로퍼로부터 암시받으려 했을지도 모를 반항적인 십대 소녀의 느낌이 이 노래에서 연상되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리듬앤블루스적으로 재편곡된 곡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메인 테마만 신디 로퍼의 것을 가져다 쓰고 중간에 나오는 랩은 신디 로퍼와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

사운드트랙 앨범에는 오랜만에 보는 뮤지션들도 들어 있어 힙합 팬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뮤지션은 역시 아이스 큐브. 힙합 역사상 가장 적나라한 갱 분위기를 연출했던 NWA의 핵심 멤버였던 그는 그 힙합집단에서 뛰쳐나와 욕설과 폭력이 가득한 라임으로 악명을 떨쳤다. 워낙 풍기는 분위기의 선이 확실하여 영화배우로도 몇번 캐스팅되었던 그는 갱스터 랩의 상징적 존재 중의 하나이다. 그런 그가 이 사운드트랙 앨범의 한 트랙을 장식하고 있다. 씹어 뱉는 듯한 그의 랩은 여전하다. 시비거는 듯한 그 톤이 나이를 먹어도 많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이미 한참 아래의 동생들이 힙합 신을 장악하고 있으나 그의 공격성은 예전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그의 팬들이 반가워할 것 같다.

그외에도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에서 활동하던 전설적인 큐 팁, 야비한 느낌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눕 도기 독, 정통 리듬앤블루스 보컬을 자랑하는 케 시아이 앤 조조 등 흑인음악 신의 내로라 하는 뮤지션들이 많이들 불려나왔다. 이만한 컴필레이션이 가능하게 하려면 꽤 돈도 많이 썼을 것 같다. 그래도 힙합은 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힙합은 속된 말로 짤없이 돈을 긁는다. 상업적? 돈밖에 몰라? 그런 평가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다. 메이저 레이블들은 그걸 잘도 이용한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