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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소셜 미디어를 떠도는 한국 SF소설 3대 폭탄 버튼
이경희(SF 작가) 2022-05-05

소셜 미디어, 아니, 까놓고 말해 트위터 세상에는 SF와 관련해 수개월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논쟁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들을 뭉뚱그려 ‘한국 SF소설계의 3대 폭탄 버튼’이라 부르는데, 왜냐하면 특정 키워드가 등장할 때마다 업계의 모든 팬과 작가들이 번쩍하고 워프해 단시간에 와르르 폭탄을 쏟아놓고 홀연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싸움은 마치 발할라의 전사들과 같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싸움을 몇번이고 반복 중이라는 뜻이다.

사건은 대개 언론으로부터 촉발된다. 특정 기사에 등장한 표현이 누군가의 마음속 버튼을 누르면, 이내 소셜 미디어 한켠에 그 기사를 인용한 비판 글이 올라오고, 누군가 그 글에 추가로 비판을 덧붙이거나 혹은 비판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며 금세 분노의 파도가 들불처럼 한차례 타임라인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과거 가장 자주 눌러졌던 폭탄 버튼의 이름은 ‘불모지’였다. ‘SF의 불모지 한국에서 탄생한 불세출의 신예 000 작가, SF의 불모지에서 한국 최초 SF영화에 도전한다’ 같은 언론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업계의 팬들과 창작자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건 대체 뭔데?’ ‘우리는 털도 없어?’ 같은 부정한 생각이 끓어넘치며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후후. 하지만 다 옛날 얘기지. 요즘 누가 감히 한국 SF에 대고 불모지란 말을 쓸 수 있겠는가.

불모지 파동(?) 이후로 한동안 SF계에서 가장 격한 폭발을 일으키던 버튼은 바로 ‘공상과학’이었다. 후, 사실 지금도 많은 기사에서 ‘공상과학’이라는 용어가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화가 나는 케이스는 ‘SF’(공상과학) 형태로 병기하는 것인데, 이유를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악의적이고 꼼꼼하게 비효율적인 표현 방식은 이상하게 참기가 어렵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하면 아마 백만서른일곱 번째 같은 이야길 반복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살짝만 짚고 넘어가자면 ‘공상과학’이라는 용어는 오역이다. Science Fiction & Fantas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공상과학(空想科學)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그 단어가 와전되어 SF를 지칭하게 되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인 듯하다. SF와 판타지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는 해외의 장르 관습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중국은 과학환상을 줄여 ‘과환’(科幻)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 러시아 역시 과학과 환상을 합친 단어인 ‘научная фантастика’를 쓰고 있다. SF 관련 문학상으로 알려진 휴고상에서도 <해리 포터> 같은 판타지 작품들에 상을 수여한 바 있다.

물론 SF라는 영단어 대신 우리글로 풀어 표현하려는 이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SF를 딱히 번역할 만한 대체어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소설에 한정하자면 ‘과학소설’이라는 용어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과학영화’나 ‘과학게임’이라고 쓰면 왠지 이상하게 느껴진다. 결국 SF는 SF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고, 안타깝지만 “공상과학 쓰지 마세요!”라고 쏘아붙이는 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전부인 셈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표현들이 장르를 비하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그냥 특별한 의도 없이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점점 더 애매해지는 것 같다. 어쨌든 SF를 ‘공상과학’으로 번역하면 곤란하다. ‘통통 튀는 발칙한 상상력’ 같은 추임새를 덧붙이는 건 더더욱!

불모지와 공상과학의 암흑 시대를 지나, 최근 몇년간 주변 사람들의 가슴에 가장 큰 폭발을 일으키는 버튼은 ‘섹스돌 이야기 쓰지 마세요’인 것 같다. 사실 이 문장 앞에는 상황에 따라 몇 가지 단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대개는 이런 것들이다. 공모전에서. 웬만하면. 댁은.

잠깐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창작물은 때로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정제되지 않은 글은 독자에게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길 수도 있으며, 때로 그 상처는 평생 치유되지 않기도 한다. 특정 개인의 사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경우부터 글쓴이 내면의 악의 그 자체가 광범위한 독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경우까지 사건의 종류와 스케일도 다양하다. 많은 예비 창작자들이 합평 과정에서 좋지 않은 기억을 갖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기인하지 않나 싶다. 말이건 글이건 세심하게 컨트롤하지 못한 언어는 주위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 이건 비단 아마추어의 글뿐만 아니라 프로 작가들조차 종종 저지르는 실수이고, 때문에 여러 전문가들의 검증과 편집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중에서도 왜 콕 집어 ‘섹스돌’을 피하라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하는 걸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내 생각엔 이 소재가 함정으로 빠지기 쉬워서 그런 것 같다. 우리가 현실에서 섹스돌을 경계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 물체가 인간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모사하고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판적으로 활용하려 해도 누군가에겐 그것이 포르노로 읽히고, 나쁜 쾌락으로 오용될 여지가 있다. 성폭력 이야기나 성 노동자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만약 당신이 각고의 노력 끝에 모든 위험 요소를 치밀하게 잘라낸 작품을 쓰는 데 성공했다면? 아마 그 작품은 평범한 로봇 캐릭터를 넣어도 상관없는 내용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신이 천재라면, 세상이 찾지 못한 새로운 장르적 활용법을 발견한다면야 무슨 소재를 어떻게 쓰든 좋은 글이 탄생할 것이다. 나 역시 아슬아슬한 경계지대에서 논쟁적인 소재를 다루는 글들을 몇번 써보았다. 하지만 웬만하면 이런 소재들은 당신이 가진 아이디어 목록의 아래쪽에 배치해주었으면 한다. 당신은 분명 더 좋고 참신한 소재를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무조건 착한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 아니다. 짓궂은 이야기, 못된 이야기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못된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게 훨씬 어려운 길이라는 사실을 부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00 쓰지 마세요’라는 표현에는 어느 정도 밈적인 측면이 있다. 정말로 절대 해선 안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가능한 한 신중히, 심혈을 기울여 세심하게 다루어달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동료 작가, 합평 멤버, 멘토, 교수, 강사, 심사위원, 친구, 가족, 그외 누가 되었든 당신의 글을 읽게 될 모든 이들은 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이고, 언제든 당신이 쓴 문장 한줄, 단어 하나에 상처입고 아파할 가능성이 있다.

당신이 생각한 그 길은 어쩌면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이 아니고, 남들이 걸었다 후회하고 쓱쓱 발로 지워버린 길일지도 모른다. 혹은 지뢰를 밟고 발목이 날아갔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