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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복길이 말하는 오은영의 방송: 오은영이 대신하는 목소리
복길(칼럼니스트) 2022-05-12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글을 쓸 때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일상의 경험을 풍부한 언어로 다루고 적재적소에 비범한 시각을 드러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써야지.’ 쓰기 전엔 항상 이런 결심을 하는데 정신 차려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라는 문장이 첫줄에 있다. 한동안 과거를 들먹이지 않고 글을 써보는 연습도 했는데 꼭 인터넷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어색한 문장들이 알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이들은 아마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작가로서 성장하겠지만 나는 그냥 거기서 멈춘다. 내 말과 글은 언제나 해결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머물고 그 궤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자취를 감춘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힘을 컨트롤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들의 애교와 엉뚱함이 수만개의 클립으로 가공되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동안 시청자 게시판엔 ‘아이들이 우는 소리는 제발 편집해주시길 바란다’는 건의가 쇄도한다. 작고, 연약하고, 순수한 어린이는 어른들이 지켜줘야 할 아름다운 존재지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하고, 큰소리로 노래 부르고, 몸을 흔들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자신의 생각마저 표현한다는 걸 알면 사회는 그들을 어린이가 아니라고 간주한 뒤 공공장소에서 몰아낸다. 순응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어린이는 더이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 그저 미성숙한 사회 구성원일 뿐이다.

사회로부터 차별당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렇게 아이를 사회 밖으로 내모는 과정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장애인이 쉽게 불쾌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약자는 자신을 통제하는 전형성을 벗고 원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된다. 바깥에서 배회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이 밖에 있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별과 배제가 점점 강도를 높여가고,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지쳐 표류한다. 오은영이라는 부표는 바로 그때 등장해 사람들을 한곳에서 만나게 한다. 오은영의 세계는 수평이 현저하게 기울어져 있다. 많은 언론에서 평가내린 것처럼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는 아이가 아닌 부모 솔루션 프로그램이다. 오은영은 사람들에게 어른과 아이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낙차를 인식시킨 뒤 양육자에게 힘을 컨트롤하는 법을 가르치고, 어린이에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이는 통제돼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방송에 임한 보호자들이 자신의 전능한 조력자인 줄 알았던 오은영의 날카로운 지적과 비난에 눈물을 보이는 이유다.

“이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입니다.” 오랜 관찰 끝에 나온 답변에 보호자는 눈물을 터뜨린다. 감정을 조심스레 다독이던 오은영은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의 밈처럼 “다 울었니? 자 이제 할 일을 하자”라며 조금의 감정 동요 없이 양육에 필요한 것들을 조언해나간다. 아이를 양육해야 할 부모의 손을 잡고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피는 살뜰한 위로와 미소는 장애를 돌이킬 수 없는 불운처럼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죄송하지만 어머님의 성장 배경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공격성을 띠는 여자아이를 관찰하던 오은영이 스튜디오에 있는 보호자에게 질문한다. 더이상 ‘금쪽이 엄마’가 아닌, 그저 또 하나의 ‘금쪽이’가 된 보호자는 담담히 말한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이른 나이에 노동을 했고 결혼 후 남편의 계속된 폭력에 시달린 과거가 눈물로 쏟아진다. 약한 존재들이 미처 내지 못한 목소리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로 확장되는 배경이 되었다. 아이의 문제를 보호자의 문제로 전환해낸 오은영의 성공은 힘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모두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만든 것이다.

<오은영의 버킷리스트>

상대를 위로하고 다음을 제시하는

오은영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간단히 항목으로 만들어본다.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으로 대할 것’, ‘아이는 참아주는 대상으로 인식하지 말 것’, ‘아이가 싫다고 말하는 사인을 무시하지 말 것’,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이유로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서로를 ‘인정’하는 어른들간에는 당연하게 합의된 약속이지만 힘의 차이를 확인한 상대 앞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다. 그의 솔루션은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약자들이 사회에 의해 어떤 방식의 억압을 받는지를 보여준다. 불공정한 판 위에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이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오은영은 자신의 권위를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다.

패널로 참여한 것까지 포함해 오은영 박사는 지난해 12개의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곳저곳에서 만능 해결사처럼 부르는 탓에 ‘TV만 틀면 오은영’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불만을 표하진 않는다. 한올도 흔들리지 않는 풍성한 머리카락처럼 그는 한순간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백명이면 백명, 천명이면 천명 모두 다른 사연과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상대를 위로하고 다음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비인간적인 스케줄에 인간적인 걱정이 앞서다가도, 아직 내 미래에 펼쳐질 수많은 난제와 삶에서 겪을 상처들을 생각하면 그가 마치 처음부터 저 모습으로 태어난 불사의 존재이기를 바라는 나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의 강인함을 빌려 튼튼해진 나라는 사람이 언젠가 그의 나약함을 위로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딩동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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