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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호러와 코미디의 조합이 어떻게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나
송경원 2022-05-14

샘 레이미적 마블의 대혼란

멀티버스는 독이 든 성배다. 또 다른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모험은 무한대의 가능성을 안겨준다. 동시에 멀티버스는 하나의 선 위에 존재하는 이야기 세계를 파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드디어 공개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 정도 난장판을 벌인 것치고는 꽤 준수하게, (‘광기’라는 제목과 달리 이성적으로) 정리해냈다. 무엇보다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제까지 나온 마블 유니버스와는 확실히 다른 색깔을 선보인다. 대부분은 감독인 샘 레이미의 영향이다. 샘 레이미는 호러와 코믹을 섞는 자신의 장기를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했고, 마블의 운명을 쥔 거대 프로젝트에 의도된 엉성함과 농담 같은 상황들을 부여했다. 이 대담한 능청 덕분에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하향 평준화의 길을 걷던 마블 유니버스 영화 사이에서 확실한 개성을 획득한다.

얼핏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복잡한 설정에 골치가 아플 것 같지만 뼈대는 몇 가지 설정 아래 움직이는 상당히 단순한 구성이다. 첫 번째 설정, 멀티버스는 존재하지만 (몇몇 절대자나 예외적인 기술을 제외하곤) 서로 간섭할 수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다른 세계의 자신이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를 구하고 죽는 꿈을 꾸는데, 영화는 모든 꿈이 멀티버스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설명한다. 두 번째 설정,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설정을 파괴하고 멀티버스를 넘나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아메리카가 나타난다. 아메리카는 멀티버스마다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모든 멀티버스를 통틀어 오직 한 사람뿐이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악마가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아메리카로부터 능력을 빼앗으려 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마블 유니버스의 세계로 우연히 넘어온 아메리카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악마들을 조종해 아메리카의 힘을 빼앗고자 하는 흑막은 다름 아닌 완다(엘리자베스 올슨), 아니 다크홀드의 흑마법에 매료된 스칼렛 위치다. 마블 세계관 최강자 중 한 사람인 스칼렛 위치가 이번에는 빌런으로 등장하여 닥터 스트레인지와 대결을 벌인다.

대결이라고 하지만 힘의 차이가 현격하여 사실상 대결조차 되지 않는다. 스칼렛 위치는 간단하게 카마르타지를 폐허로 만들고 수호자들을 학살한다. 여기서 세 번째 설정이 작동한다.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히어로와 빌런의 팽팽한 대결을 그리는 액션영화가 아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스칼렛 위치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호러 스릴러에 가깝다. 샘 레이미는 어딘지 기괴하고 섬뜩한 면이 있는 스칼렛 위치의 캐릭터성을 강화하여 장르의 뼈대로 삼는다. 스칼렛 위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완다의 고통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디즈니+ 시리즈 <완다비전>에서 현실 조작 능력을 활용해 존재하지 않는 두 아들을 창조했던 완다는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 뒤 흑마법서 다크홀드를 통해 두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세계로 넘어가서 행복해지기 위해 기꺼이 미쳐버린다. ‘어디가 지옥인가’를 묻는다는 측면에서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마치 샘 레이미의 전작 <드래그 미 투 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사랑하는 크리스틴(레이첼 맥애덤스)과 맺어지지 못한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행복하지 않다. 불행과 고통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결국 히어로와 빌런의 갈림길인 셈이다.

물론 샘 레이미의 호러에는 늘 그렇듯 유머 한 스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블 데드>를 연상시키는 유쾌, 기괴, 천연덕스러운 액션은 호러와 유머의 앙상블이라는 기묘한 호흡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더해 ‘만약에’의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섞일 수 없는 것들을 마구 뒤섞는다. 그리하여 독특하고 난잡하며 꽤 어지럽다가 종종 유치하기까지 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여러 작품과 캐릭터들을 한 무대 위에 올려 마블 세계관과 틀을 다 깨부수는 대혼돈의 퍼포먼스, 거대한 농담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다고 이게 상상력의 지평을 넓힐 정도로 혁신적이냐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미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상상하고 목격한 것들을 ‘실사’로 안착시켰다는 것 정도가 인정할 만하다. 여기서 드디어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정리 정돈해줄 마지막 설정이 보태진다.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모험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영화는 수많은 멀티버스를 통합하지 않는다. 이건 스칼렛 위치가 목표로 하는 아이들이 있는 우주와 우리가 아는 우주, 단 두 세계 사이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생각보다 단선적으로 정리된 이야기이며 이를 위해 너무 많은 공교로움, 즉 우연을 개입시킨다. 중반 이후 영화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크고 작은 구멍과 소비되는 캐릭터, (아마도 의도된 것이라 믿고 싶은 몇 가지) 조악함에도 불구하고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충분히 흥미롭다. 멀티버스를 표현하는 각양각색의 이미지들은 그야말로 극한의 시각적 쾌감(이라고 쓰면 맛이 살지 않으니 ‘눈뽕’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말초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샘 레이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거대한 프랜차이즈에 굴복하는 대신 마블 유니버스라는 우주를 자신의 우주와 기어이 연결시켰다. 다만 이것이 아메리카의 능력처럼 통로를 제대로 열어젖힌 것인지, 아니면 그저 ‘드림 워킹’에 불과한 것인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어느 쪽이든 기꺼이 망가지는 컴버배치의 진기명기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CG로 범벅이 된 영화를 스크린에 안착시키는 건 결국 언제나 배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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