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카세트테이프 리코더
윤덕원(가수) 2022-11-03

주말에는 아이와 게임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다. 일본식 롤 플레잉 게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리즈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외전인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2>를 함께 플레이한 지도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간다. 엔딩은 진작에 보았고 눈물도 조금 흘렸지만 그 뒤에도 즐길 거리가 많아서 아직까지 플레이하고 있다.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시리즈인 만큼 게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게임은 주로 주말에만 하고 평일에는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집의 묵계다. 그런데 평소에도 게임 음악을 듣고 싶다는 아이의 요구가 있었다. 예전 내가 어릴 적엔 게임 음악을 게임 전문 잡지에서 CD 부록으로 제공한 적도 있었는데. 사용하고 있는 음원사이트를 뒤져봤지만 음원을 구매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있는데, 아이가 평소에 사용하는 아이패드로 음악을 녹음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가끔 음성녹음 기능을 이용해서 대화를 녹음한다거나 한 적은 있었는데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하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보통 파일을 복사하거나 실시간으로 스트리밍을 해서 음악을 전달하곤 하니까.

하지만 음악 제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질이 열화될 가능성이 많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피커로 게임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패드를 갖다대고 녹음을 했다. 다행히 음악 작업용 모니터 스피커로 재생하고 있어서 음질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에게 직접 녹음을 하게 했더니 꽤 진지한 표정으로 레코딩에 임하는 모습이 꽤 그럴듯했다. 다 끝난 뒤에는 파일 앞뒤의 자투리도 직접 잘라내고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 입력을 해서 제목을 적었다. 그 모습을 보니 기술적으로는 전혀 다르겠지만 예전에 라디오에서 나오던 음악을 카세트에 녹음하던 생각이 났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녹음 버튼을 누르고, 메모 스티커로 카세트에 곡명을 적던 것과 감성적으로는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이렇게 원초적인 방법으로 기록을 하는 경험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주게 될까.

나도 지금은 노래를 만들 때 주로 스마트폰의 메모장과 녹음 앱을 이용해서 기록과 정리를 하지만 처음 음악 작업을 하던 시기에 사용했던 수단은 카세트테이프였다. 집에서도 컴퓨터를 사용한 음악 제작이 가능했던 시기였지만 일종의 과도기로 아쉬움이 많던 시기였고, 운좋게 4트랙을 녹음할 수 있는 카세트리코더를 싸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년 뒤 컴퓨터로 어느 정도 작업을 안정적으로 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데모를 만들어보곤 했는데, 그때 만든 노래들이 나중에 밴드를 결성하면서 발표된 브로콜리너마저의 <편지> <봄이 오면> <꾸꾸꾸> 등이다. 드럼을 한 트랙에 녹음하고 기타와 베이스를 녹음하면 노래를 위한 트랙은 하나가 남는다. 혹시라도 건반이나 다른 멜로디를 넣고 싶다면 노래의 빈자리를 이용하거나 다른 트랙에 겹쳐 녹음하는 수밖에 없다. 연주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고. 그런 한계가 오히려 창작열에 불을 붙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컴퓨터로 수백 트랙을 녹음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조건이 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에도 음반 제작에 카세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선 작업 과정에서 카세트로 녹음할 때 생기는 음질의 열화를 음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음색이 따뜻해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해상도는 떨어지지만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 요소가 생긴다. 그리고 앨범을 카세트로 발매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 좀더 늘어난 것 같은 분위기로 나도 최근에 몇개를 구입했다. 청취 과정에서 추억의 아날로그 감성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는 듯하고, 불편한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되는 테이프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소량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서 희소성도 있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나만을 위한 음악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뮤지션이 선과영이라는 듀오다. 복태와 한군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활동한 이들은 이번에 첫 정규 앨범을 내면서 펀딩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리워드로 직접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선물했다. 멤버인 한군은 카세트리코더를 이용한 앰비언트 사운드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만들고 나누는 과정에 카세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작업 과정을 들여다보니 그들이 사용하는 레코더가 내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처음 음악을 만들 때부터 사용한 그 장비가 여전히 책상 바로 위의 눈에 보이는 곳에 있지만 막상 작업할 때는 컴퓨터를 이용한다. 편리함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은 시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돌아가도 괜찮을까 걱정해야 할 만큼 우리에게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일 뿐.

<밤과낮> - 선과영

새벽을 잃고 나는 쓰네

지나가기를 바라던 슬픔아

뜨거운 눈물과 시린 아픔들아

지난 겨울 차갑던 냉소들과 이별하네

마주한 웃음들과 사소한 농담

고요해진 시간 속의 그림자여

잘 있거라 거리를 헤매던 나의 사랑들아

검은 마음 위로 흰 눈 내리고 길을 떠나네

마주한 웃음들과 사소한 농담

고요해진 시간 속의 그림자여

잘 있거라 거리를 헤매던 나의 사랑들아

남겨진 그 자리

사랑은 없었네

남겨진 그 자리

사랑은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