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기획] ‘알카라스의 여름’①, 미리보기: 그해 여름의 끝에 우리에게 남은 것들
임수연 2022-11-03

상실은 아이들에게 먼저 찾아왔다. 알카라스의 어린이들에게 외계인과 조우하는 우주 로켓이 되어줬던 낡은 에메랄드 자동차는 기중기에 들려 홀연 사라진다. 그리고 기계가 노리는 다음 타깃은 3대째 솔레 가문이 대물림해온 복숭아 농장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의 주인공이 된 카를라 시몬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은 현대화의 물살이 전통을 무너뜨릴 때 무모하게 저항하거나 혹은 무력하게 관망하는 대가족의 시선을 패치워크처럼 엮어가는 찬란한 비가다.

복숭아 농장의 위기는 계약서에서 시작됐다. 솔레 가족의 수장, 어느덧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된 로헬리오(요셉 아바드)의 부모는 피뇰 가족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그들의 땅 일부를 경작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문제는 이 협의가 구두로 이루어졌다는 것. 부모 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 피뇰의 아들(제이콥 디아르테)은 계약 무효를 주장한다. 다만 태양전지판을 설치하고 이를 맡아줄 경우 솔레 가족은 땅을 지킬 수 있다. 소규모 가족 농장보다는 몸도 편하고 수익성도 높다는 점에서 유혹적인 제안이지만, 로헬리오의 맏아들 키메트(조르디 푸홀 돌체트)는 스페인 내전 때부터 지켜온 농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갑작스런 재정 위기로 예전만큼 이주 노동자 인력을 고용할 수 없게 된 그는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복숭아 수확에 온 힘을 쏟는다.

자연이 변화하듯, 가족의 관계도 변화한다

카를라 시몬 감독의 개인적인 기억을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후속작과 같은 위치를 점하는 <알카라스의 여름>은 감독의 친척이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카탈루냐 지역 마을 이름으로부터 제목을 따왔다(카를라 시몬 감독이 준비 중인 <로메리아>는 <프리다의 그해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에 이어 그의 실제 기억에서 기인한 가족 드라마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예정이다. 자신의 가족사를 탐구하기 위해 스페인 비고로 향한 프리다의 행적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았다). 전작의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한 카를라 시몬 감독은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 삼촌들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알카라스의 농장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지만, 이미 농장을 버려야 하는 처지에 있는 이들도 있다. 소규모 가족 집단이 농사를 짓는 방식은 더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살롱>의 카를라 시몬 감독 인터뷰) 전작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어린이 입양이나 죽음에 대한 책을 읽으며 유년 시기 기억과 감정의 공백을 채워나갔던 카를라 시몬은 삼촌의 농가에 머물면서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했고, 알카라스 인근 마을 벨비스 출신의 공동 시나리오작가 아르나우 비라로 역시 농사 짓는 친척들의 모습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카탈루냐의 농장을 둘러싼 다수의 증언을 재료로 창조된 복숭아 농장은 복수의 주인공을 통해 완성된다. 6살 프리다의 눈을 따라갔던 전작과 달리 메인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 <알카라스의 여름>은 무려 12명의 다른 시점을 병치시킨다(아마 <알카라스의 여름>을 감상할 때 관객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장벽은 이들의 가족 관계도를 파악하고 얼굴과 이름을 매칭하는 일이 될 것이다). 관객은 알카라스의 뜨거운 농장을 헤집고 다니는 이리스(아이네트 주누)처럼 분방하게 병치된 시점을 좇으며 농장의 여름을 감각한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확실한 내러티브를 위해서는 키메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했겠지만, 나는 45살의 남자 농부가 아니다. 하지만 대가족의 일원이기 때문에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고 이를 영화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좋아한다”(<살롱>)고 말했다. 더불어 대가족은 보다 복잡다단한 가족 역학을 엮어내는 구조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키메트의 딸 마리오나(세니아 로제트)와 아들 로제르(알베르트 보쉬)는 회색지대의 캐릭터로서 시점을 다양화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12살이 됐을 때쯤 자신의 눈으로 가족을 보기 시작한다. 때문에 관객은 마리오나의 눈을 통해 다른 캐릭터를 보고 이해할 수 있다. 알카라스를 떠나고 싶어 하는 그는 가족이면서 외부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로제르는 농촌을 떠나기를 갈망하는 다른 젊은 세대와 달리 여전히 농부가 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키메트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그가 다른 일을 택하거나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살롱>) 가족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기가 닥칠 때 더 불가항력적이다. 키메트의 고집이 다른 가족에게 미치는 여파를 비롯해 열두 구성원의 욕망과 관계는 생동하는 자연처럼 변모한다. 불시의 불화와 느닷없는 평화가 산재한 가운데, 인물들이 갈등을 극복하고 힘을 합쳐 신념을 지키는 순진한 전개로 영화가 나아가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들은 위기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보다 각자 경험한다. 솔레 가족과 흑인 노동자들, 심지어 솔레 가족 사이에도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내밀한 소통이 뒤따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적어도 내가 아는 대가족은 그렇다.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또한 농부들이 1년 중 가장 바쁜 수확 시기에는 긴 대화를 나눌 만한 여유가 더더욱 없다.”(<시네유로파>)

가족의 문제에서 정치사회적 질문으로

사적인 기억을 보편의 그것으로 감각시키는 카를라 시몬의 묘수는 비전문 배우에 있다. 그는 전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 때의 캐스팅 원칙을 이어갔다. 제작진은 1여년간 카탈루냐의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시나리오 속 가상의 인물들과 가까운 영혼을 가진 비전문 배우들을 발굴했고, 이들은 긴 리허설을 거쳐 가족과 같은 유대감을 쌓았다(단, <프리다의 그해 여름>에서 프리다의 고모를 연기한 데 이어 이번 영화에서 글로리아를 연기한 베르타 피포는 직업 배우다. 감독과 자매 관계이기도 한 그는 영화의 재료가 되는 유년 시절 기억을 함께 채워나갔고, 캐스팅 과정에도 참여했다). 정확한 카탈루냐어로 말하는 진짜 카탈루냐인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만들어내는 리얼리즘은 전문 배우들보다 솔레 가족의 감정을 진짜처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감독이 고집해온 신념이다. 이는 “시나리오에 쓰여 있는 것을 찍는 게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그의 연출 철학과도 연결된다. 그에게는 스타일과 계산된 미학 이전에 인물과 공간의 사실성이 중요하다. 때문에 시나리오 리딩은 내러티브 이해를 위해 한번 정도 진행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즉흥성을 허용하며 정확한 대사보다는 각 단어의 내러티브 기능과 에너지에 집중”(<스크린 데일리>)하는 식으로 신들을 찍어나갔다. 촬영분량은 90여 시간으로, 35시간을 찍어 98분을 편집한 <프리다의 그해 여름>보다 2.5배 많았다. “이야기의 한 부분이 변동되면 배우들과의 호흡, 카메라 배치, 그리고 시나리오를 다시 쓰듯 편집 또한 바꾸어야 한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더 다양하게 만드는 작업이 됐다.”(<인사이드 미디어>) 한편 어린이들의 존재는 연기 학교에서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들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빨리 적응하고, 어른들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전에 스스로 새로운 놀이터를 찾는다. 그들이 촬영장에 있으면 성인 배우들이 각자에게 맞는 톤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어른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시네유로파>)

인물들의 삶이 있는 그대로 현실로부터 소환되면서 뻗어가는 공감각은 스페인 전체로 가닿는다. 알카라스의 거친 촉감과 수확기 농장의 단내, 가족 역학의 리듬이 만드는 공명은 <알카라스의 여름>이 품은 정치 드라마를 일깨워 교조적이지 않은 태도로 현재적 문제를 다룬다. 농업이든 신재생에너지든 대기업이 장악하는 신자유주의는 역사적 진보가 전통적 노동자 계급을 소외시키는 모순을 낳는다. 결국 복숭아 농장은 살아남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캐스팅을 위해 카탈루냐 지역 주민 인터뷰를 시작한 제작진이 접한 이야기는 영화의 결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시네유로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초 염두에 두었던 해피 엔딩은 실제 농부들의 삶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젊은 세대는 농사를 짓기 싫어서가 아니라 돈을 제대로 벌 수 없기 때문에 농촌을 떠난다. 대규모 농업은 소규모 농장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든다. 한없이 떨어지는 과일 가격에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농민들이 매년 시위를 벌이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과거의 농업이 아닌 오늘날의 농업이 무엇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농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시위에 함께 참여하며 한 시대의 끝을 목격했던 그는 엔딩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영화는 구시대의 몰락을 비통히 애도하기보다는, 사각대는 잎소리를 듣고 열매의 결실을 기다리며 전통의 존엄성을 부각시킨다. 결국 복숭아나무가 굴착기에 으스러질 때 이리스는 우주 로켓이 사라졌을 때 맞닥뜨린 변화가 단지 놀이터의 상실에 그치지 않을 것을 직감한다. 느긋하게 목가적인 유흥을 즐기던 이리스는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기억 저편에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프리다의 그해 여름>의 프리다가 죽음과 이별, 고독감을 이해한 것처럼 대가족 속의 어린이는 그렇게 현실을 배워간다. 어린이에서 대가족, 대가족에서 노동자 계급과 기술의 충돌로 주제를 확장한 영화는 다시 처음의 시선으로 돌아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장 순수한 존재가 비로소 깨닫게 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