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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아카데미 9개 부문 후보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과거의 영광은 재현될 것인가?
조현나 2023-03-09

아카데미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한 보고일 뿐이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지난 2월19일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작품상, 외국어영화상, 감독상 등 7개상을 거머쥐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으나 BAFTA 7관왕까진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 해외 평단의 반응이다. 그에 따라 작품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미국 아카데미 수상 예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원작을 세 번째로 영상화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과연 제3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동시 석권했던 루이스 마일스톤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왜 다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인가?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참혹한 전장과 독일-프랑스의 협정 과정을 그리는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원작의 사건들을 가져오되 사건의 순서를 재배치하고 일부 상황을 과감히 생략한 뒤 전쟁과 협상단의 상황 묘사에 살을 붙였다는 점에서 1930년, 1979년 버전과 차별화된다. 이러한 각색에선 반전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 또한 읽힌다. 파울 바우머(펠릭스 캄머러)가 참전하기 전, 하인리히 게르버라는 어린 병사가 전방에서 사망하는 상황이 먼저 그려진다. 시체는 매장됐으나 군복은 세탁과 수선을 거쳐 새 병사, 파울의 품에 주어진다. 전쟁 풍경을 본격적으로 마주하기 전부터 반복해 대체되어온 죽음의 빈자리를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 선생에게 설득된 파울은 적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맛볼 생각에 한껏 고양된 채 전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크기의 전차와 처음 보는 기관포, 화염방사기의 위력에 곧바로 움츠러들고 만다. 폭발과 동시에 쏟아지는 훼손된 신체들, 갑작스레 밀려드는 동료들의 죽음. 파울은 점차 생의 감각을 잃어간다.

이쯤에서 짚어보자. 집필된 지 94년에 이른 시점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왜 다시 영화화되어야 했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할리우드가 아니라 독일에서 이 독일 소설을 영화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데드라인> 등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다. 그의 말대로 지난해 공개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영화화된 세편의 작품 중 독일인의 관점에서, 독일에서 제작된 첫 사례다. 그렇기에 버거 감독은 레슬리 패터슨과 이언 스토클이 쓴 영어 대본을 독일식 스토리텔링으로 각색하는 것에 공을 기울였다고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 독일이 행한 일들에 책임감 있게 대처하고 그런 종류의 증오를 영속화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려는”(<인디와이어> 인터뷰) 감독의 노력 또한 담겼다. 원작 소설이 영화화된 1930년대, 1970년대를 돌이켜보면 당시 독일은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절, 그리고 동독, 서독이 나뉜 냉전 시대였다. 당시를 감안해볼 때 상대적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자본 및 영화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졌다는 현재의 상황 또한 자국에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영화화를 시도할 발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은 재난이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관객이 전장에 깊숙이 발을 들일 수 있도록 한다. 참호 속에서 뛰쳐나와 폭격 속으로 뛰어드는 병사들의 뒤를 카메라가 곧바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 프랑스와 독일의 협상 과정 등 부분적으로 전지적 시점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으나 전장은 대체로 파울의 시점에서 그려진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파울 역에 다니엘 브륄, 알브레히트 슈흐 등 경험 많은 배우가 아니라 펠릭스 캄머러라는 신인을 앉힌다. 펠릭스 캄머러는 오디션 진행 당시 24살로 18살이라는 소설 속 파울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집을 막 떠난 소년의 순수함과 세월이 흘러 노쇠하고 감정이 사라진 남자의 모습을 모두 연기하기에 딱 맞는 나이”였다고 전한다. 낯선 얼굴의 앳된 소년이 8kg에 육박하는 소총을 들고 철모에 의지한 채 진흙탕을 누비는 모습은 외려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는 데뷔작이지만 빈 부르크 극장에서 여러 연극 무대에 올랐던 경험이 그가 파울로 변모할 자양분이 되어줬다.

파울이 분화구에서 만난 프랑스 군인을 살해하는 신은 작품의 주요 장면 중 하나다. 장거리 사격이 아니라 눈앞에 실재하는 군인의 가슴에 칼을 꽂고, 그가 숨을 거두는 상황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0대 딸의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는 감상을 기억해뒀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장면을 단순화하면 어떻겠냐”는 조감독의 제안에도, 이 장면이 현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해 줄이지 않았다. 사망한 프랑스 군인의 가슴속에서 그의 가족사진을 발견하면서 파울은 처음으로 총구를 겨눈 상대 또한 자신과 다름없는 인간임을 깨닫는다.

파울을 비롯한 수많은 병사들은 휴전이 선포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부의 아집으로 인해 바스러져갔다. 최전선에선 개개인이 소모품처럼 끔찍하게 소비됨에도 상부의 서류엔 ‘서부 전선 이상 없음’으로 기록될 뿐이다. 영화는 전쟁엔 승자가 없고, 전쟁은 승리를 야기하는 재난의 연속이라는 명제들을 반복해 증명한다. 동시에 역사책을 통해 대전의 결과만 접했을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어린 병사들이 젊음과 순수함을 잃고 죽어갔다는 당시의 행간을 미화 없이 전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현세대에 당시 병사들에게 가해진 신체적, 정신적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참호와 군복, 진흙까지⋯ 전장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주요 촬영지는 체코였다.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은 추위 속에서 제작진은 체코의 버려진 주택가와 농장 건물을 재건축해 폐허가 된 프랑스 시골로 재구성했다. 영화의 절반 이상의 배경이 된 참호는 100여명의 엑스트라와 6명의 배우, 카메라까지 들어가야 했기에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았다. 크리스티안 골드베크 세트디자이너는 참호 디자인에만 두달 정도가 소요됐다고 회고한다. 전장이 펼쳐지는 롱테이크 신들을 촬영해야 했기에 여러 장면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250m 길이, 축구장 3개 크기의 전투지를 완성했다. 리지 크리스틀 의상디자이너는 800~900벌에 이르는 엑스트라 배우들의 군복을 제작했다. 배우들의 군복은 전부 따로 만들어야 했으며 특히 파울의 군복은 총상이 있는 것, 없는 것, 자상이 있는 것, 없는 것 등 종류별로 20벌을 만들었다. 군인들이 뒹구는 진흙 또한 군인들의 군복에 묻고, 흘러내리고, 굳는 점성 등을 고려해 세심하게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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