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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16년 박스오피스 분석: 한국영화 러키의 해
김수영 2023-04-07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과 같다), 성난 물살이 배를 뒤집듯 백성이 임금을 끌어내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광화문광장에 쏟아져 나온 민심은 결국 12월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4월13일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심은 분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확보하며 16년 만에 여소야대 형국이 펼쳐졌다. 5월17일 강남역에서 불특정한 여성을 노리고 벌어진 살인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다. 수많은 여성들의 추모 운동이 이어졌고 성차별, 여성 혐오에 관한 논쟁이 촉발됐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이 세기의 대국을 펼친 2016년은 솔로의 시대였다. 1코노미, 혼행, 혼밥에 이어 ‘가성비’ 키워드가 득세했다. 2000년 이후 역대 최악의 청년실업률 속에서 청년들은 ‘금수저’, ‘흙수저’로 자신들의 계급을 자조했다. 한마음으로 정국을 뒤엎은 해지만, 개인의 삶에서는 행복도 불행도 각자도생해야 했다.

2011년 이후 2015년까지 증가세를 나타내던 관객수는 2016년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2억명대를 유지했다. 여전히 1인당 관람횟수는 연평균 4.2회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 시장이 “포화에 이른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멀티플렉스 3사는 연이어 좌석 차등제를 실시해 평균 관람료를 상승시켰고 3D, IMAX 등 고부가가치 상영관을 운영해 매출 상승을 꾀했다. 지난해 ‘국제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다 ‘베테랑’ 형사로 악당을 물리치고 ‘히말라야’에 올라 동료들을 구했던 황정민은 2016년에도 활약했다. <검사외전>의 다혈질 검사로 <곡성>의 무속인으로 <아수라> 속 안남시장으로 열연하며 ‘황정민의 해’를 장식했다. 한편 2016년의 개봉작에서 세월호가 남긴 잔상이 비쳐지기도 했다. <부산행>에 드러난 정부의 무능, <터널>에서 읽히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밀정> 속 친일 행위와 독립운동가의 모습은 시대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부산행>

<부산행>, 해외 박스오피스까지 섭렵하다

5월 칸영화제에 초청되어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던 <부산행>은 자타 공인 ‘올여름 1번 타자’였다. “한국에서 낯선 좀비 콘텐츠 대신 ‘전대미문’으로 키워드를 잡고 ‘이제껏 보지 못한 블록버스터’로 강조한 홍보사의 전략도 맞아떨어졌다. 개봉 첫주부터 5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은 2016년 첫 천만 영화가 됐다. 베트남,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이며 해외에서만 1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여름 성수기부터 추석 연휴까지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64.5%에 달했다.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뿐 아니라 8월 개봉한 <덕혜옹주>와 <터널>까지 여름 성수기를 노린 한국영화 대작 네편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박스오피스에 세편의 영화를 안착시킨 쇼박스는 극장을 소유하지 않은 배급사인 만큼 배급 일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울대학교 데이터마이닝 연구실과 산학협력을 맺어 배급 일정을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정교하게 잡으려고” 애썼다. 이러한 노력은 보통 대작영화보다 손익분기점이 150만, 200만인 영화에서 효과를 봤지만, 여름 성수기 끝물에 들어가 스크린 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던 <터널>도 날짜를 잘 선점해 성공한 배급 사례다.

쇼박스의 화양연화

쇼박스가 배급한 <검사외전> 역시 2월 경쟁작 없는 시기에 개봉해 1812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970만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 와이드 릴리즈로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개봉 초기 스크린을 싹쓸이해서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얘기였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제작 및 홍보 담당자는 “물론 최대한 많이 잡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스크린은 수요, 배급 원칙에 따라 극장에서 배정한다. 우리가 얼마만큼 잡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시장 논리에 따르는 게 일견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사 영화에 기회를 좀더 줄 수도 있겠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영화가 받쳐주지 못하면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극장에서 버틸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배급에 더불어 영화가 ‘잘 받쳐준’ 사례는 <럭키>다. 10월13일 추석을 노리고 개봉한 <럭키>는 제작비 40억원으로 564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앞서 개봉한 <아수라>가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고 10월26일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도 <럭키>의 흥행 운을 멈출 수 없었다. 홍보를 담당했던 호호호비치 이채현, 이나리 공동대표 말에 따르면 “영화의 원제는 ‘키 오브 라이프’였다. 모니터링 시사에서 영화를 보고 ‘럭키’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겠다는 한 관객의 말에 제목을 바꿨는데 제목 그대로 갔다. 홍보 전략은 심플함이었다. 딱 재미있는 장면 하나, 재미있는 카피 하나만 밀고 갔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입소문이 나기 때문에 간결한 카피로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해외 투자와 여성 서사

국민이 5천만인 나라에서 연이어 2억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산업은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실제 2016년 상업영화 투자 수익률은 8.8%였고 ‘핵심 상업영화군’의 수익률은 13.8%에 달했다. 할리우드 자본이 한국영화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는 <밀정>에, 이십세기폭스는 <곡성>에 제작 및 투자로 참여했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눈여겨본 이십세기폭스사는 2010년 <황해> 제작비를 20% 선투자했고, 제작비 100억원대의 <곡성>에 순제작비 80억원을 투자하며 메인 투자사로 이름을 올렸다. 추석부터 9월까지 흥행을 견인한 <밀정>은 750만명, <곡성>은 687만명을 기록했다. 같은 해 워너브러더스와 이십세기폭스사는 각각 이주영 감독의 <싱글라이더>와 정윤철 감독의 <대립군>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천만 영화가 네편씩 쏟아진 2014년, 2015년 그리고 2016년까지 흥행 순위 10위권 내에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겨울왕국> 엘사를 제외하고) <암살>과 <덕혜옹주> 단 두편에 불과했다. 대부분 남성, 아버지 혹은 아들의 서사였다. 그에 반해 2016년 여름 이후 박스오피스에는 눈에 띄는 여성 서사들이 보인다. 6월 개봉한 <아가씨>는 428만명, <굿바이 싱글>은 210만명이 관람했다. <아가씨>는 관객 팬덤을 형성해 <아가씨> 확장판이 상영되기도 했다. 흥행에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비밀은 없다>도 그해 좋은 평을 받으며 회자됐다. 2016년 관객 100만명 이상을 모은 한국영화 중 여성감독 연출작은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지영 감독 두명뿐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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