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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아오이가든>
진영인 2023-04-18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편혜영 작가의 단편집 <아오이가든>이 18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아오이가든>을 읽은 독자라면 그 강렬한 이미지를 쉽게 잊지 못했을 것이다. 단편집 속 이야기들은 문명이 붕괴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누군가가 실종되고, 어디선가 시체가 발견된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사회라면 어떻게든 사라진 사람을 찾거나 범인을 찾아낼 텐데, <아오이가든>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뭔가 찾으려고 해도 쓰레기만 계속 나올 뿐이고, 아이들은 단속반을 피해 더러운 맨홀에서 살아가며, 역병이 돌아 사회 시스템 자체가 망가지기도 한다. 집은 부서져가고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며 이불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돈을 벌어 돌아오겠다던 엄마는 오지 않고 아이들은 괴물을 꿈꾸며 다친 상처를 긁어댄다. 이처럼 퇴행한 세계 속에서 사람과 동물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그래서 <아오이가든>에서처럼 개구리가 되기도 하고, <마술 피리>에서처럼 실험용 쥐가 되는가 하면, <맨홀>에서처럼 실험실의 해부대에 올려지기도 한다.

책이 나왔던 당시에 음산하고 불길한 세계를 압축적이면서도 힘 있게 그려낸 작품 세계에 놀랐다면, 2023년에는 인상이 사뭇 다르다. 아마 코로나19의 시간을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감염병으로 세상이 한순간 멈춘 듯하고 모두가 불안에 떨며 버틴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오이가든> 속 세상이 단순히 강렬한 상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지구온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진달래와 벚꽃과 라일락이 한꺼번에 피는 아름다운 풍경도 그저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없는 시절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기상 센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비가 내렸다는 ‘폭우’ 속 풍경은, 지난해 여름 갑자기 비가 쏟아져 온갖 곳이 침수된 기상이변을 떠올리게 한다. 도시의 많은 사람이 천식과 통증을 호소한다는 <서쪽 숲> 이야기를 보며 환경오염이나 일상을 파고든 화학물질을 떠올리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수백명이 갇혀 죽었다는 역사가 전해지는 관광용 동굴과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가 사라져버린 남편, 죽음을 맛보기라도 한 듯 빨간 혀를 내미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문득>은 지금 이 시대의 풍경에도 잘 어울린다.

66쪽

“나는 마디가 달라붙은 두손을 펴고 나뭇가지처럼 가벼운 다리를 벌린 채 비강을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