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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타워즈: 비전스' 시즌2에 참여한 박형근 감독, 최고운 프로듀서, 정세랑 작가
김수영 사진 오계옥 2023-05-11

5월4일 ‘스타워즈 데이’를 기념해 <스타워즈: 비전스> 시즌2가 디즈니+에서 공개된다. <스타워즈: 비전스>는 <스타워즈> 세계관을 주제로 전세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선보이는 단편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시즌2에는 한국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등 9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참여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더해진 <스타워즈> 이야기는 실사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더한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포스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도 흥미롭다. 스튜디오 미르와 정세랑 작가가 합심해 완성한 에피소드 <어둠의 머리를 벨 수 있다면>은 돌가락 행성의 숨겨진 사원 출신의 아라와 제다이 토울의 모험담이다.

<코라의 전설>로 북미, 유럽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스튜디오 미르는 <더 위쳐: 늑대의 악몽> <외모지상주의> 등 웹툰과 게임 기반 애니메이션을 주로 제작해왔다. 제50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한 <피프티피플>이 10만부 이상 팔린 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정세랑 작가는 평단과 독자에게 고루 사랑받는 작가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제작한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이자 동명의 시리즈 각본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돌가락이라는 새로운 행성을 창조해 한국적 모티브를 기반으로 SF 세계를 완성한 정세랑 작가와 스튜디오 미르의 박형근 감독, 최고운 프로듀서를 화상으로 만났다.

- <스타워즈: 비전스>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최고운 루카스필름으로부터 메일로 제안을 받았다. 작가를 찾기 위해 작가 풀을 열어놓고 리스트업하고 있었는데 정세랑 작가님이 마침 그 무렵 신작을 냈다. 작가님이 <스타워즈> 팬이라는 얘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했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 정세랑 작가님의 팬들이 많아 팀원들이 꼭 “정세랑 작가님과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정세랑 어느 날 밤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이런 일은 평생에 한번 일어나는 일이라 어떻게든 일정을 맞춰 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승낙했다.

- <어둠의 머리를 벨 수 있다면>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데 얼마나 걸렸나. 초기 아이디어가 궁금하다.

정세랑 정말 빨랐다. 제안을 받고 이틀 만에 트리트먼트를 전달했다. 나에게도 신기한 경험이었던 게 이야기가 거의 완성형으로 떠올랐다. 그즈음 내가 문화재 관련 자료를 읽고 있을 때라 석굴암과 팔만대장경이 모티브가 된 것 같다. 석상이 먼저 떠올랐다. 스튜디오 미르에 전달할 때 “엄청 커다란 석상인데 석굴암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작가님, 유네스코 문화재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포착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라고 하셨지만(웃음) 디자인이 디벨롭될 때마다 더 근사해졌다. 산을 깎아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해도 산을 바로 깎아주시고…. 애니메이션 세계는 진짜 멋지구나! 했다. (좌중 웃음)

박형근 정세랑 작가님의 트리트먼트 작업을 가지고, 스튜디오 내 감독들과 피칭을 했고 그 후 참여하게 됐다. 작가님 원고를 보자마자 정말 좋았다. 내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주제이기도 했고, 석상이나 선악의 문제도 이전에 다뤄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이렇게 내 취향이 반영됐을까!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스타워즈> 세계관 속 어떤 시리즈나 캐릭터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정세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스타워즈>의 메인 스토리와는 독립된 듯 보이지만 주제가 깊이 닿아 있어 본래 <스타워즈> 서사를 더 빛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계속 반복되고 사람들은 지칠 수밖에 없다. ‘한번 이기면 끝나는 거 아니야? 한번 나아갔으니 뒤돌아가면 안되잖아?’ 싶지만 역사는 언제나 나아갔다가도 되돌아간다. 좋았던 것들이 다시 나빠지기도 한다. 이런 세계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이야기나 비주얼에 동양적이거나 한국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해 고민했을 텐데.

최고운 <스타워즈: 비전스> 자체가 전세계의 창작자들이 <스타워즈>를 재해석하는 컨셉이라 우리만의 색깔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을 어색하게 더하다 보면 자칫 결과물이 좋지 않아서 어떻게 근사하게 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박형근 우선 작가님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선명해서 그 부분에 집중했다. 작가님이 아이디어의 모티브를 디테일하게 설명해줘서 미술감독과 시각적으로 잘 구현해보려고 애썼다. 문화재라는 게 정말 아름답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해서 크게 감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석굴암을 보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하고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잖나.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전세계 사람들이 봤을 때 석상, 의상, 배경에 담긴 문화적 요소를 근사하면서도 고유하게 느낄 수 있도록 계속 개발해나갔다.

정세랑 애니메이션은 제작하는 팀의 스타일이 강하게 담기는 장르라고 느꼈다. 특히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나는 돌가락 행성을 떠올리면서 비 오는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실사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볼 때 훨씬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다. 행성의 이름도 한국어로 들었을 때 <스타워즈> 세계 속 단어들과도 어긋나지 않는 어감을 찾고 싶었다. 돌가락의 돌들은 부산 태종대의 몽돌을 떠올려 작은 돌 말고 타조알만 한 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형근 기본적으로 <스타워즈>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했고, 돌가락처럼 처음 만드는 행성을 구현하는 데에는 몽돌이나 타조알, 석좌상이 어떻게 마주보고 있고 행성의 기후는 어떻다는 작가님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했다. 한국에 있는 유적들, 수묵화 레퍼런스를 실제 참고했다. 어려웠다. (웃음)

- 그런 고민 덕분에 동양적인 이미지가 뻔하지 않게 반영됐다고 느꼈다. 디벨롭하는 과정에서 시나리오와 디자인이 계속 영향을 주고받았을 텐데 어떤 피드백을 주고받았나.

정세랑 회의할 때마다 좋은 자극을 받았다. 제시해준 디자인을 보고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스토리에서 강조했다. 원래는 인물들이 하늘에서 내려가는 동작을 떠올렸는데 액션이 상승 방향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줘서 그에 맞춰 이야기를 바꾸기도 했다. 루카스필름의 피드백도 많았다. 예를 들면 셔틀에서 점프하려면 기구를 개조하거나 제다이의 힘이 더 필요하다는 식으로 기존 <스타워즈> 세계관의 일관성을 해치지 않도록 가이드를 해줬다. 이런 과정이 신속하고 수월하게 진행됐다.

박형근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주로 디자인에 관해 루카스필름과 많이 소통했다.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가능한 디자인인지, 해당 액션의 구현이 가능한지 의견을 조율해나갔다. 감독으로서 어려웠던 부분은 메인 프로덕션 단계에서 러닝타임을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욕심이 나서 최대한 구현하려고 했다가 스케줄이나 현실적인 문제로 많이 덜어냈다. 처음에 작가님이 준 풀 스토리가 정말 재미있다. 완성된 이야기는 그보다 많이 함축된 버전이다.

최고운 초반 제다이들의 회의 장면을 줄이고 바로 사건으로 들어갈까 했는데 루카스필름에서 그 부분을 줄이지 말아달라고 했다. 제다이가 많이 나오는 장면이고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회의 장면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것 외에는 크게 제한 없이 자유롭게 작업했다.

- <스타워즈: 비전스>는 정세랑 작가 뿐 아니라 스튜디오 미르에게도 이전과 다른 방식의 작업이었다.

최고운 기존에는 스크립트까지 미국 제작사에서 전달받았지만 이번에는 작가님과 함께 시작부터 고민해나갔다. 실사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것은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타워즈>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야기라 재미있었고 작가님과 함께한 작업 과정도 의미 있었다.

박형근 이런 식의 작업은 처음이었다. 초반에는 회의도 3~4시간 탁상 토론하듯 해야지 생각했다가 차차 효율적으로 회의하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무엇보다 정세랑 작가님의 글에 담긴 긍정적인 에너지가 오래 남았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계속 나아가야 할 것 같은 힘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점을 작품에서 최대한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님, 또 같이하실 거죠? (웃음)

정세랑 이미 제 마음속엔 더 긴 시리즈가 있습니다. (웃음) 다음에는 좀더 시간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는 긴 프로젝트를 함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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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