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기획]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멀티버스를 완성하는 방식
송경원 2023-06-23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무한 확장을 거듭하는 멀티버스의 혼돈을 정리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새롭게 탄생한 주문은 아니다. 시간여행, 타임 패러독스를 다루는 숱한 이야기들이 반복해온 유명한 명제 중 하나다. 다만 이 마법의 주문을 언제, 어떤 타이밍에 사용하는지에 따라 세계가 빤한 도돌이표에 갇힐 수도, 아름답게 가치를 뻗어나갈 수도 있다. 2018년 장편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이하 <뉴 유니버스>)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세계를 열었다. 인기 있는 이야기 소재가 그런 것처럼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소위 샘스파, 어스파, 톰스파 등 주인공이 교체되며 계속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 왔다. 성공한 프랜차이즈의 숙명, 자본의 욕망은 코믹스에서 출발한 ‘다중우주’라는 개념으로 스파이더맨을 계속 소환해왔다. 다른 우주에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무한히 찍어낼 수 있는 요술 방망이 같은 설정이다.

마스터피스, 그 너머를 엿보다

더이상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던 스파이더맨 세계관을 뒤집으며 게임 체인저로 등장한 건 마일스 모랄레스(샤메익 무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 <뉴 유니버스>였다. <뉴 유니버스>는 차원을 연결하여 사물을 이동시킬 수 있는 알케맥스 가속기를 통해 온갖 다중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흑백 세계의 스파이더맨 누아르, 로봇을 조종하는 일본 여학생 페니 파커, 방사능에 물린 돼지 스파이더 햄까지 다양한 스파이더맨들이 벌이는 소동은 즐거운 혼란 그 자체였다. 다중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상상 자체는 재밌지만 그럴 법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한자리에 초대한 무대를 꾸민 표현 방식은 그야말로 혁신적이라 할 만했다. 본래 자극은 예측 가능한 범주 바깥에서부터 발생하는 법이다.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은 프레임과 상상력의 틀을 부수며 우주가 뒤섞이는 행복한 혼돈을 선사했다.

이제껏 나온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들이 그랬듯 무릇 이야기는 적어도 3부작은 돼야만 안심이 된다. <뉴 유니버스> 역시 말미의 쿠키 영상을 통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쿠키 영상에선 스파이더맨 2099=미겔 오하라(오스카 아이작)가 등장해 홀로그램 라일라와 대화를 한다. 그는 멀티버스가 아직 닫히지 않았다며 모든 것이 시작된 지구-67로 향한다. 왜 67인가. 그곳은 1967년 방영된 스파이더맨 TV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이다. 67년판 스파이더맨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면서 삿대질을 하는 스파이더맨 2099. 누가 먼저 삿대질을 했는지를 두고 싸우는 장면을 끝으로 쿠키는 마무리된다. (해당 시리즈 19화 <더블 아이덴티티>라는 에피소드로 두명의 스파이더맨이 서로 삿대질하는 걸로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장면이지만) 단지 잔재미만을 위한 쿠키는 아니다. <뉴 유니버스>의 쿠키는 적어도 두 가지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멀티버스가 미처 닫히지 않아서 이를 수습하고 다니는 존재가 있다는 스토리의 목표점, 다른 하나는 스파이더맨들끼리 서로 싸우는 장면이 주는 난장판의 즐거움이다. 속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이 두 갈래의 미션을 성실히, 그리고 성대하게 수행한다.

<뉴 유니버스>를 봤을 때만 해도 이걸 뛰어넘는 속편이 나오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여러 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설정은 <뉴 유니버스>의 매력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 파격적인 애니메이션이 선사한 쾌감의 진가는 표현의 고정관념을 부수는 역동적인 연출에 있다. 코믹스의 질감을 베이스 삼아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만화를 옮겨놓은 <뉴 유니버스>는 기존에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다양한 작화, 디자인 컨셉을 과감히 시도한다. 이건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명제는 간단하다. 애니메이션에서 작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하나의 우주에 하나의 표현. 작화는 애니메이션의 존립 근거이기에 여러 우주가 겹친다면 당연히 표현 방식도 충돌해야 한다. <뉴 유니버스>는 실사영화가 시도하기 힘든 다채로운 표현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충돌시켜 빅뱅을 일으켰다. <뉴 유니버스>의 성취는 이런 새로운 에너지였는데 속편이 나올 땐 이게 고스란히 넘어서야 할 벽이 된다. 경험과 자극은 반비례하는 법이라 더 강한 자극을 위해선 새로운 걸 내놓아야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뉴 유니버스>의 연장선에 있어 새롭게 시도해볼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익숙해진 패턴에 자극에 무뎌졌으면 어쩌나 하는 건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넘쳐흐르는 표현과 정보량, 에너지에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출되는 걸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이 작품은 현대 애니메이션이 시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작법을 화면 위에 쏟아붓는다. 현대미술이라 해도 좋을 과감한 아트워크의 충돌은 한층 더 커지고 과감해졌다. 특정 구간의 경우 멈춰놓고 봐야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장면의 밀도가 높고 정보량이 많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속도감과 리듬도 한곡의 음악처럼 처지는 구간 없이 매끄럽다. 그야말로 스크린이라는 미술관에서 열린 코믹스아트 전시처럼 다가온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어려운 것도 없다. 본질은 어디까지나 재미난 코믹스이고, 긴 이야기 끝에 남는 교훈도 언제나 그렇듯 간단명료하다. 2024년 개봉할 3부작의 마지막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이하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까지 3부작으로 구성된 이야기인 만큼 3편을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이미 단독 작품으로도 전작을 가뿐히 뛰어넘은, 문자 그대로 비욘드 마스터피스라 할 만하다.

‘위대한 거미줄’의 구심력, 되짚어보면 보이는 것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시작점과 끝점은 전작의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가 아니라 그웬 스테이시(헤일리 스타인펠드)의 것이다. 전작에서 사건이 마무리되고 자신의 우주로 돌아간 그웬은 공허감에 시달린다. 자신의 우주에서 피터를 잃은 그웬에겐 진심을 털어놓을 친구가 한명도 없다. 유일하게 동질감을 느꼈던 마일스도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런 줄 알았는데 그웬의 우주에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벌처가 난입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멀티버스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활동하는 스파이더맨들의 비밀조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웬은 조직의 리더 미겔에게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사실 그웬의 선택은 새로운 모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피에 가깝다. 스파이더우먼이라는 비밀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아버지와 갈등을 빚던 그웬은 아버지에게 진실을 밝힌 후 자신의 우주를 떠나버린다. 그렇게 스파이더버스의 수호자 그룹에 합류한 그웬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일스를 만나러 간다.

한편 마일스도 그웬과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부모의 반응이 두려워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마일스는 크고 작은 갈등을 빚는 중이다. 사실 비밀로 인해 본래의 삶이 피곤해지는 건 스파이더맨들의 정해진 운명이기도 하다. 몸은 하나인데 히어로 활동을 병행하려니 시간도 없고 갈수록 힘이 든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우주로 다시 찾아온 그웬을 만난 마일스는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안심이 된다. 그웬을 통해 차원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스파이더맨들의 존재를 깨달은 마일스는 본인도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지만 단번에 거절당한다. 이에 투명화 능력을 사용해 몰래 그웬을 쫓던 마일스는 그웬이 자신의 차원으로 온 이유를 알게 된다. 자신이 하찮게 여겼던 빌런 스팟(제이슨 슈워츠먼)이 실은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위험한 존재였고 그웬은 이를 감시하기 위해 온 것이다. 스팟을 추격하던 그웬을 미행하던 마일스는 급기야 다른 차원까지 몰래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6개의 우주를 관통하며 모험을 펼친다. 단순 계산해도 여느 작품들에 비해 몇배의 물량과 작화, 아트워크가 필요한 작업이다. 이 정도의 물량을 한 사람이 컨트롤하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인 만큼 조아킹 두스 산투스, 켐프 파워, 저스틴 톰슨 세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는 게 납득이 된다. 게다가 <뉴 유니버스>에서 시작된 3부작은 서로 다른 우주를 충돌시킨다는 컨셉이라 톤이 다른 연출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뉴 유니버스>도 그랬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본격적인 팀 무비다. 어떤 스파이더맨이 오리지널인지를 두고 다투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스파이더맨들의 사연을 거미줄처럼 아름답게 엮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세명의 감독들은 280여명의 스파이더맨들과 함께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항상 그랬듯 비밀의 열쇠는 가까운 곳에 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뉴 유니버스>의 마지막 쿠키에서 제시한 두개의 힘, 구심력과 원심력을 따라간다.

이야기를 뭉치는 구심력은 스파이더버스다. <뉴 유니버스>가 새로운 우주의 문을 열었다면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스파이더맨들의 우주, 이른바 스파이더버스들을 가로지른다. 이번 작품에는 크게 보면 6개의 스파이더버스가 등장하는데 전작에서 마일스 모랄레스의 우주로 다른 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이 모였다면 이번에는 해결사들이 미션에 따라 새로운 스파이더버스로 모험을 떠난다. 대전제는 간단하다. 전작의 마지막에 등장한 스파이더맨 2099, 미겔 오하라는 여러 방식으로 연결되는 스파이더버스들이 서로 충돌하여 붕괴하지 않도록 관리 중이다. 여기서 이른바 ‘위대한 거미줄’이라 불리는 개념이 등장한다. 스파이더맨들의 세계는 다른 차원에 있음에도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연결지점에 존재하며 수정 불가능한 사건들을 ‘공식설정 사건’(Canon event)이라고 부른다.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일 수 있는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예를 들면 방사능 거미에 물리는 사건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사건 등이다.

히어로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명제로 움직여온 스파이더맨은 아픔을 극복하고 희생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영웅으로 거듭난다. 방사능 거미에 물리는 게 육체적인 능력을 얻는 조건이라면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건 영웅으로 각성하기 위한 시련이다. 스파이더버스의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이런 경험을 공유하면서 스파이더버스에 속할 자격을 얻는다. 거미줄은 얼핏 마구잡이로 뻗어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이런 수정되어선 안되는 공식설정 사건을 쐐기로 하여 아름다운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구성도 마찬가지다. 혼돈과 혼란은 다르다.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도 먼 시각에서 보면 일정한 규칙과 법칙하에 움직인다. 시공간을 소재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이미 쐐기로 삼았던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명제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다시 한번 거미줄을 완성하는 구심점으로 작동한다.

스파이더버스의 원심력, 21세기 캐논의 확장

한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우주를 확장하는 원심력은 한마디로 난장판의 미학이다. 스파이더버스의 혼란을 관리하는 위대한 둥지, 미겔 오하라의 본거지인 지구-928의 누에바요크에서는 온갖 우주에서 모인 스파이더맨들이 머문다. 이들이 스파이더버스의 이레귤러 같은 존재인 마일스를 추격하는 장면은 이번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하다. 280명의 스파이더맨이 모여 서로 삿대질하는 장면은 농담의 규모를 어디까지 늘릴 수 있는지 물리적인 한계치를 시험하는 듯하다. <뉴 유니버스>가 초신성의 탄생이었다면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우주가 팽창할 수 있는 한계점까지 상황을 밀어붙인다. 마일스, 그웬을 비롯하여 스파이더 펑크(대니얼 컬루야), 스파이더 인디아(카린 소니), 스파이더맨 2099 등 주요 스파이더맨들의 우주를 각기 다른 작화로 묘사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더 새로운, 더 기발한 세계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결국 스파이더버스의 확장을 위한 동력을 제공하는 셈이다. <뉴 유니버스> 쿠키에서 보여줬던 짧은 농담을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이라 해도 좋겠다. 스파이더 인디아가 속한 지구-50101 뭄바튼이 선보이는 극한의 2D풍 작화나 지구-928 누에바요크의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서 280명의 스파이더맨과 벌이는 추격전에서의 애니메이션은 가히 광기에 가까운 작화와 표현력을 자랑한다.

거미줄의 세계관은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서사 자체는 의외로 단순하다. 지도가 아무리 미로처럼 얽혀 있어도 결국 지나온 길은 하나라는 단순한 비결을 감독들은 잊지 않았다. 이야기의 시작점과 끝점을 매듭짓는 게 그웬이라면 히어로물의 핵심인 빌런과의 상관관계를 구축하는 건 역시 마일스다. 이번 작품의 빌런인 스팟은 전작에서 차원이동기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피해자다. 연구원이었던 그는 차원이동장치를 활용하여 스파이더맨의 거미를 다른 세계에서 옮겨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차원의 문을 자유자재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스팟은 능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하찮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다 스파이더맨이 자신을 무시하자 분노하며 일갈한다. “내가 널 만들었고, 네가 날 만들었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짝지어진 히어로와 빌런은 스파이더맨뿐 아니라 모든 히어로물의 또 다른 ‘공식설정’일지도 모르겠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웬과 마일스뿐 아니라 빌런 스팟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하찮기 이를 데 없어 보였던 스팟이 스파이더버스 전체를 위협할 빌런으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숨겨졌던 세계의 진실이 밝혀진다. 2024년 공개될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스팟과의 대결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것이 히어로물 전체가 짊어진 숙제와 같은 테마이기 때문이다. 빌런과 히어로가 한몸으로 엮여 창조한 우주.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폐허와 같던 히어로물이 다시금 꿈틀거린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사에 남을 3부작, 21세기 히어로영화 캐논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