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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국부론(國父論)
김수민 2023-08-10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었으니 무척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어머니는 어린이용 인명사전 ‘이승만’ 편에 적힌 ‘부정부패’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심각하게 설명하셨다. 마침 드라마 <제2공화국>이 MBC에서 한창 방영 중이었다. ‘최불암이 이승만 역인데 설마 악역일까’ 싶었다. 그러다 4·19가 일어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2년 뒤 러시아에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을 때 나는 한국사를 자랑스러워했다.

지난 7월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의 동상이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과 함께 세워졌다. 파고다공원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된 지 63년3개월 만의 일이다. 대통령 윤석열도 화환을 보냈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김영삼은 임기 말 경제 환란을 맞았기에 마냥 떠받들기 어렵다. 박근혜가 탄핵당하자 박정희 찬양도 상당히 힘을 잃었다. 결국 자신의 역사적 콤플렉스를 치유할 목적으로 이승만을 들고 내세우는 것이다.

그가 농지 개혁과 한미 동맹의 공로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일찍이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에 밝았으며 민주주의 시대를 읽어낸 선각자였다. 다만, 이에 대한 치하와 보상은 진작에 끝났다. 그는 라이벌들이 암살당하는 동안 안전하게 살아남았다. 12년 동안 장기집권했고 한국전쟁을 독재의 발판으로 썼다. 그러고도 후임자 여럿이 경험한 암살, 처벌, 탄핵 등의 사태를 모두 피해갔다. 한국민은 그에게 미국 망명을 허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헌법에 ‘4·19’를 명시함으로써 이승만에 대한 국가적 기념이 불가함을 확약했던 것은 전혀 야박하지 않다.

2008년경부터 해마다 8월을 맞아 ‘건국 시점 논란‘이 일어난다. 이승만 찬양자들이 1948년설을 밀면서 이승만 비판자 상당수는 반사적으로 1919년설을 미는 경향이 생겼다. 그럴 필요 없다. 예컨대 김대중과 노무현도 1948년 건국론을 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에 건국 50주년 사업을 전개했으며, 김대중은 자서전에서 1948년 8월15일 “마침내 대한민국이 탄생했다”고 썼다. 노무현은 2003년과 2007년 발표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8월15일을 두고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나라를 건설’이라고 표현했다.

1948년 건국설을 이승만 지지와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이승만 프레임’이다. 이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 “건국 이념보다 당시 대통령이 더 중요한가” 따져 물어야 한다. 제헌국회만 봐도 다수 의원은 이승만 휘하에서 벗어나 있었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레닌, 마오쩌둥, 김일성 같은 유아독존적 영도자를 거부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초대 대통령이라고 봐주는 법 없이 독재자를 축출했다. 이 나라 역사는 ‘우상 파괴’의 역사다. 그 우상을 다시 세우려는 것이 바로 ‘자학 사관’이다. ‘건국의 아버지’는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