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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다섯 번째 흉추’, 그로테스크한 사랑의 아름다움
정재현 2023-08-10

<다섯 번째 흉추>를 연출한 박세영 감독의 작품 세계는 ‘물건의 로드무비’로 요약할 수 있다. 한 남자의 중고물품 거래기를 그린 <캐쉬백>과 알 수 없는 자들이 알 수 없는 수취인에게 성한 물건을 배달해야 하는 <갓스피드>까지, 박세영 감독은 줄곧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물건이 전해지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다섯 번째 흉추>또한 곰팡이 핀 매트리스가 끝없이 이동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선 두 단편과 <다섯 번째 흉추>가 갖는 차이가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엔 물건뿐 아니라 정념이 오가고, 운동 중인 물건은 그 감정을 먹고 자라며 상태 변화까지 겪는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 흉추>를 장악하는 감정은 사랑이다.

<다섯 번째 흉추>는 ‘신체 강탈균의 침입’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다. 매트리스에 핀 곰팡이가 자신의 위로 등을 맞댄 인간의 신체에 침투해 그의 등뼈를 갈취하고 크리처의 형체를 갖춰가는 내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 곰팡이가 외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간의 등뼈가 필요하지만, 곰팡이가 생명을 얻기 위해 숙주로 삼는 것은 인간의 사랑이다. 영화 속 사랑지상주의균인 곰팡이는 주로 헤테로섹슈얼 커플의 등뼈를 탐한다. 영화 중반 등장해 서로를 감질나게 원하는 루(정지현)와 린(허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곰팡이가 원하는 ‘사랑 중인 인간들’은, 사랑(혹은 연애)이 그러하듯 향긋하고 달콤한 마음만 나누지 않는다. 이는 영화 초반 등장하는 두 커플에게서 드러난다. 윤(함석영)은 결(문혜인)이 지루해져 둘 사이엔 형체 없는 권태만 가득하다. 준(정수민)은 율(온정연)의 어긋난 마음을 복구하려 애쓰지만 율에게 남은 건 쿰쿰하고 음험한 호르몬의 잔여물뿐이다.

좁은 방일지라도 따로 살기보다는 동거를 택하고, 쏟아지는 비를 기꺼이 함께 맞을 수 있는 열렬한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곰팡이가 침입해 흉추를 강탈해간다. 사랑의 초입에 놓인 이들도 사랑의 끝자락에 다다른 이들도 곰팡이의 공격을 받으면 너나 없이 통증을 호소한다. 추측건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게 고통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의 일부를 훼손하길 감행하는 마음을 내포하기 때문일 터다.

한편 곰팡이가 먹는 사랑은 에로스적 사랑 속에서만 배양되지 않는다. 곰팡이는 이루지 못한 가족의 사랑도 제 것으로 흡수한다. 어느 허름한 병원에 입원한 병자 솔(김예나)은 매트리스 아래 곰팡이와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 사랑하는 딸에게 전할 편지 한장을 남기며 죽어간다. 곰팡이는 끝없이 유기되고 폐기될 위기에 처해도 천년이 넘도록 살아남아 아주 먼 미래에 대자연 아래서 군집을 이루어 끝내 솔의 편지를 세상에 외친다. 완성할 수 없었던 사랑의 끝을 수취인도 슬퍼해주면 좋겠는 마음과 여전히 사랑하는 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절절한 고백이 곰팡이의 여행기 끝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다섯 번째 흉추>에 팽배한 감정은 분명 사랑이지만 영화는 사랑의 정의보다 사랑의 상태를 닮은 듯한 인상이다. 사랑이 교란하는 마음의 상태는 기괴한 음악과 미술로 드러나고 사랑이 야기하는 인지 체계의 착란은 독특한 방식의 편집으로 선보인다. 균이 인간 신체를 탐한다는 영화의 기본 설정부터 영화 전반의 시청각 요소까지, 영화를 이루는 모든 게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째 흉추>는 아름다운 영화다. 사랑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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