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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더 문’ 조한철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3-08-25

조한철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 전문사 졸업 논문 주제는 ‘영화의 매체적 특성에 따른 영화연기 연구-아메리칸 메소드 액팅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중심으로’였다(참고로 한예종 연극원 전문사가 생긴 이래 나온 첫 번째 논문이다). 메소드 연기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치부하던 당시 연기 담론을 반박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안한 논문이었다. 실제 조한철은 카메라와 편집, 영화의 사진성을 고민하며 캐릭터의 실존을 믿게끔 만드는 본질이 무엇인지 지금까지도 고민하는 배우다.

- <더 문>의 과기부 장관은 대부분 우주센터에 있다. 우주에 고립된 황선우 대원(도경수)을 귀환시키는 프로젝트에서 리액션을 하는 분량이 대다수다.

= 프리 비주얼 작업을 한 영상을 주로 보면서 수십명이 반응해야 했다. 각각의 상황마다 어느 정도 강도로 연기해야 하는지 감독님이 얘기해주긴 했지만, 이게 결과적으로 잘 붙을까 걱정하면서 연기했다. 가장 걱정했던 건 그래도 명색이 장관인데 너무 덜떨어져 보여서 관객이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시나리오상에 문과 출신인데 과기부 장관이 됐다는 설명이 있어서 그를 토대로 최대한 잘 소화해보려고 했다. 장관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보니 남들보다 리액션이 더 크다. 화면보다는 우주센터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두리번거린다. 원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자칫 본인이 경질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오히려 리액션 수위 조절은 좀더 자유롭게 갔다.

-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판관 역을 대체할 배우로 캐스팅돼 추가 촬영을 했고,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도 원래 왕 역을 맡았던 배우가 하차하면서 긴급 투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끄러운 연기를 보여준 능력을 인정받아 이후 매체쪽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 그렇게 봐주셨다면 감사하다. 연극 경험이 있어야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 다만 연극을 하다 보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씩 연습 혹은 공연을 하면서 한 캐릭터만 파게 된다. 그러다보니 영화나 드라마에 갑자기 투입되어도 짧게나마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연기에 들어가는 훈련이 되지 않았나 싶다.

- 학부 때는 영화연출을 전공했더라.

= 중학생 때부터 매주 대학로 연극을 봤다. 오로지 연기만 생각하면서 배우가 될 거라고 확신하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큰 다음에 방황하는 시기가 왔다. 결국 졸업 후 다시 연기를 하게 됐을 때 카메라 연기를 공부하게 됐다. 그런데 연극 연기와 달리 영화 연기는 번역된 책도 얼마 없었고, 그나마 몇권의 책도 모두 아메리칸 메소드 액팅에 관한 내용이었다.

- 그래서 졸업 논문 주제로 카메라 연기를 다뤘나.

지도교수님이 예술전문사 학위 논문은 반드시 자기 경험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내 얘기를 많이 적었다. 영화의 특성상 메소드 연기가 맞을 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지점도 있다. 실제 현장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연기 말고 메이어홀드나 그로토프스키의 연기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 연출 전공을 한 경험이 매체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되기도 했겠다. 배우가 화면에 어떻게 찍히느냐를 다각도로 고민할 수 있으니까.

= 연극은 시간이 해결해줄 때가 많다. 몇 개월씩 연습하면서 쌓아가다 보면 장면이 완성된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는 리허설을 몇번만 하고 무조건 신을 만들어야 한다. 배우에게도 외부의 시각으로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 연극에서 주연을 맡을 땐 긴 연습 기간을 거쳐 장기간 무대에 서지만, 여러 편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출연할 땐 짧게 나오는 역할들을 동시에 찍기도 하지 않나. 후자의 경험이 연기력을 다지는 데 작동한다면 어떤 측면인가.

= 한 사람이 다양해봤자 얼마나 다양할 수 있을까. 배우를 칭찬할 때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들 하는데 사실 다 자기 것을 변주하는 것이다. 똑같은 피아노를 가지고 감미로운 곡도, 힘 있는 행진곡도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비슷한 톤의 역할을 계속 연기하다 보면 점점 완성에 가까워지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배우가 정신을 안 차리고 연기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기능적인 캐릭터밖에 안되고 연기하는 배우도 재미가 없다. 화면에 잠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진짜 저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다고 관객이 믿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 비슷한 시기에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오히려 너무 몰입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연기로 이어질 수도 있을 듯한데 어떤가.

= 매번 캐릭터에 들어가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해야만 하는 배우도 있고, 정말 뛰어난 배우들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연기를 잘한다. 그 사람의 능력과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어떤 캐릭터는 죽어라 연기하고 어떤 캐릭터는 힘 빼고 쉽게 간다. 그런데 죽어라 연기하는 게 티가 나면 재미가 없다. 힘 빼고 쉽게 간다고 해서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되고, 그냥 가볍게 보이게끔 해야 한다. 그래서 연기가 참 어렵다.

- 최근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 TV드라마, OTT 시리즈 등 다양한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아카데믹한 길을 걸어온 배우에게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준 기회는 어떤 의미인가.

= 내가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때 한국에 방송국은 MBC, KBS1, KBS2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평생 연극만 할 줄 알았다. TV 탤런트 공채 시험은 잘생기고 멋진 배우들만 붙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방송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매체가 늘어나고 다양한 캐릭터가 탄생하면서 나도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늘 하던 걸 했던 사람이다. 그게 시대의 변화와 맞닿은 지점이 있어서 덕을 본 것뿐이다. 앞으로 또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예상할 순 없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하던 연기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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