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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원과 발굴 등 영화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제 관계자 3인 대담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3-09-22

9월 국회에 제출된 2024년도 문체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영진위 사업 중 ‘국내외 영화제 육성 지원사업’ 예산은 50% 삭감되었으며 국내·국제영화제를 나눠 지원하던 이전과 달리 국내·국제영화제로 통합하고, 지원하는 영화제의 수도 기존의 40개에서 20여개로 축소된다. 이와 같이 편성된 예산으로 인해 영화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9월13일, 총 50개 영화제가 (가칭)국내개최영화제연대의 이름으로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 철회 촉구 공동성명서를 발표한 상황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2024년 영진위 영화제 지원예산 50% 삭감을 철회’하고 ‘지원예산을 복원하고 영화제와 영화문화 발전을 위한 논의 테이블을 즉각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성명서가 발표되기 하루 전,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집행위원장, 김조광수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이하 프라이드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이하 무주영화제) 프로그래머에게 대화를 청했다. 이들은 영화제의 목적과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은 예산안 편성에 우려와 절망감을 표하며 고려 중인 방안을 들려주었다.

- 영화제 예산 삭감과 관련해 영화제별로 우려하는 바가 크겠다.

김조광수 영화제 예산 중 영진위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 아마 규모가 작은 영화제일수록 더 그럴 것이고 프라이드영화제도 30% 정도 된다. 그런데 지원하는 영화제 수를 줄이는 동시에 예산의 50%를 삭감하겠다고 하는 상황이지 않나. 소위 말하는 7대 영화제에 속하는 국제영화제들보다 프라이드영화제처럼 작은 규모의 영화제들이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영진위 예산이 줄어든 것을 근거로 서울시에서도 예산을 줄이겠다고 할 것으로 예상돼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

조지훈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영화제들은 국가지원금(영진위 지원 예산)이 지자체의 돈을 끌어내는 마중물로 쓰인다. 이를테면 국가에서 이만큼 받았으니 좀더 지원해주면 어떻겠냐고 설득할 요건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국가 지원이 줄거나 사라지면 지자체도 예산을 책정할 때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김동현 그간의 결과만 놓고 보면 영화제들의 성과가 좋다. 지난해 서독제 같은 경우도 무료 관객, 유료 관객 다 합쳤을 때의 관객수가 거의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김조광수 프라이드영화제도 지난해 관객수가 최고치였다.

조지훈 무주영화제도 2019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김동현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예산 삭감 결정은 상황을 면밀하게 살핀 후 판단한 정책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 말고도 지역 영화 지원이나 독립영화 제작, 배급 지원 등도 전부 삭감됐다. 영화발전기금은 전국의 관객이 마련해주는 거라 그만큼 지역에도 지원이 가는 게 맞는데, 실상 그런 사업이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까지 줄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조지훈 매년 22~26개 국내영화제가 열리는데, 약 6억원의 국내영화제 예산을 이 20여개 영화제가 나눠 갖는다. 중앙 예산이 줄었을 때 국제영화제는 규모가 있어 다른 방법을 찾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국내영화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간 국제영화제와 국내영화제를 분리해 지원하고 다양한 영화제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정책들이 이어져왔었는데, 국내·국제영화제를 묶은 뒤 예산을 반으로 줄인다는 이 정책은 그 방향성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

김조광수 프라이드영화제가 처음 지원받은 금액은 600만원이었다. 초반 몇년간은 계속 수익이 마이너스라 이걸 메우는 게 우선이었지만, 600만원이 1천만원이 되고, 1천만원이 1500만원이 되면서 한해에 100편이 넘는 영화를 상영하는 지금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처음의 그 600만원이 그만큼 소중한 발판이 된 셈이다. 그런데 예산도, 지원하는 영화제 수도 줄이면 13년 전 우리 영화제와 같은 소규모 영화제는 시작도 못할 것이다. 영화제가 많긴 하지만 각각 추구하는 목적이나 방향성 등이 전부 다르지 않나. 그런 걸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이같은 판단을 내리는 데 강력히 반대한다.

조지훈 실제로 영진위가 4년간에 걸쳐서 영화제를 지원하기 위한 조건들을 만들어왔다. 예산을 잘 쓰기 위한 여러 제약을 정교하게 다듬어왔고, 영화제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기준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예산이 줄면 다년간 영화제를 잘 만들어가려는 정책적인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

김조광수

| 영화제 성과를 배제한 결정 |

- 영화제 예산이 삭감된 배경에는 행사의 목적이나 성과에 대한 판단보다는 시민단체 예산,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의 성격을 갖고 있는 예산을 줄인다는 맥락과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정부의 판단은 어떻게 바라보나.

김조광수 세금으로 왜 시민단체를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면서, 영화제 예산 삭감도 그런 판단 안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영화제의 필요성에 대해서 좀더 알려야겠다 싶었다. 전국의 영화제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알면 지금과는 다르게 바라봐주지 않을까.

김동현 시민단체나 비영리 민간단체의 예산을 줄이는 것에 대한 정부 방침과 기조를 평가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영화제는 큰 의미에서 비영리단체다. 산업 바깥의 영화들을 주목하는 굉장히 문화적이고 예술의 극단에 있는 축제로서의 성격을 띤다. 영화를 발굴해내는 게 목적이지 수익을 내는 건 애초 영화제의 목적이 아니다.

조지훈 사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영화제를 할 이유가 없다. 돈이 안되니까. 그럼 이걸 왜 하냐, 영화에 애정이 큰 분들이 영화제를 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바뀌지 않는다. 그럼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게 문제라고 말하기보다 돈을 잘 쓰고 있는가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 목적에 따라 예산을 잘 집행한다면 행사를 잘하고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 게 아닐까.

- 최종적으로 영화제 예산이 줄었을 때 현재 집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인 사업 중 어떤 쪽이 크게 타격을 입을 거라고 보나.

조지훈 영화제마다 다르겠지만 소규모 영화제는 큰 프로그램 하나를 아예 취소하거나 상영 편수를 줄여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개최를 못할 수도 있다. 현재 예산과 지원하는 영화제 수를 줄이겠다는 가이드는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정책화될지 몰라서 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렵다.

김조광수 상영은 영화제의 중심이라 그건 최대한 유지하려 할 것이고, 제작지원이나 부대행사 부분이 감소할 것 같다.

김동현 그리고 영화제 인력들이 힘들어질 텐데, 노하우를 가진 전문 인력들이 빠져나가면 행사 차원에서도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창작자들이 동력을 잃을 것도 우려된다. 올해 서독제 출품작 중 단편 수가 많이 줄었다. 더 면밀히 분석해봐야겠지만 최근 2~3년 동안 단편영화제들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제작지원도 준 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영화제 예산을 삭감하면 영화제 차원에선 작품 상영을 포함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줄 수밖에 없다. 그럼 한국영화의 토대가 약화될 테고 이걸 회복하려면 지금보다 몇배의 노력과 시간과 돈이 들어갈 것이다.

김동현

| 작품을 발굴하고 관객을 개발하는 현장 |

- 한국 영화산업에서 영화제가 맡고 있는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조지훈 한국은 다양한 영화를 보여줄 루트가 매우 제한적이고 지방은 더욱더 그렇다. 그런데 영화제가 그 역할을 해준다. 독립예술영화관이 거의 없는 한국 영화산업 구조에서 영화제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김조광수 2011년에 처음으로 프라이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때는 한국 상영작 수가 정말 적었다. 한국에서 LGBT영화를 만들어도 상영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프라이드영화제가 생긴 뒤 한국에서 많은 LGBT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영화제 13년차가 된 지금은 한국 출품작 수가 거의 50배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해외 LGBT영화제들과의 연대체가 있어서 해외에 영화를 선보이기도 수월한 편이다. 더불어 제작지원도 하고 있는데 이런 선순환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시민단체, 비영리단체라 지원해주기 어렵다고 말하는 건 정말 답답한 결정이다.

조지훈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나서부터 대부분의 영화제들의 성과가 좋았다. 코로나 이전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커뮤니티 비프와 같은 시민관객 프로그램의 참여율도 높아졌다. 이러한 영화제의 시스템을 예술영화관이나 극장들이 도입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상업영화의 프로그램을 영화제가 소화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게 많다. 그리고 지자체들도 지원을 잘해줬고 새로운 영화제도 많이 생겨나는 추세여서 더더욱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김동현 창작자들의 첫 번째 목표는 대부분 영화제에서의 영화 상영이다. 특히 극장에서 개봉하기 힘든 단편영화의 경우 영화제만이 그 작품을 상영할 거의 유일한 플랫폼이 된다. 물론 유튜브라는 창구도 있지만 온라인 플랫폼에선 영화와 창작자와 관객이 제대로 만날 수 없다. 유튜브의 수많은 자극적인 콘텐츠들 사이에 놓인 독립 단편영화를 누가 택해서 보려 하겠나. 이러한 영화들을 발견하고 상영하는 것이 수십년간 영화제가 기울여온 노력이고, 그를 바탕으로 쌓인 노하우도 있다. 이를 신뢰하는 창작자가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행사를 찾는 것일 테고. 지역의 작은 영화제들도 제작지원을 하고 여러 산업과 조응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말하자면 정부나 영진위와 같은 기관의 손이 닿지 않는 제3의 섹터를 형성해주고 있는 거다.

조지훈

조지훈 매년 영화제에 온 관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처음 영화제를 찾은 관객의 비율이 늘 60~70%다. 이 비율은 거의 매년 유지된다. 관객은 계속해서 새롭게 바뀐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제가 창작 현장은 아닐지언정 영화를 상영하는 영역에선 진정한 현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인 동시에 관객을 개발한다는 측면에서도 영화제는 매우 중요하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영화제의 가치, 영화제가 왜 중요한지를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길 바란다. 무엇보다 영화제는 정치적 진영의 논리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영화제의 방향성과 더불어 더 발전적으로 논의할 부분이 있다면 영진위나 문체부에 역제안을 해볼 수도 있겠다.

김동현 그동안은 영화제 개최 시기가 각기 달라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모여서 정책적 담론을 나눌 기회가 없었다. 이번 기회로 영화제 문화를 활성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폭넓게 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성명서 발표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우선적으로 연대체를 만드는 건가.

김조광수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아니지만 영화제들간의 연대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가는 것 같다.

김동현 연대체가 만들어지고 네트워크가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예산과는 무관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영화제 지원 예산 증액만을 목표로 하는 건 논의가 너무 단편적이 될 수 있다. 정책과 방향성에 관해 먼저 회의하다보면 예산 문제는 자연스레 뒤따라올 것이라고 본다.

김조광수 동의한다. 현 상황에서 영화제 연대체가 해야 할 일은 영화제간의 내실을 기하는 것, 그리고 정책을 만드는 이들과 시민들에게 영화제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 설명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김동현 앞서 말했듯이 영화발전기금 자체가 전국에서 걷히고 있기 때문에 예산이 골고루 분배되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지역 예산 삭감이라든가,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영화제 예산의 축소는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잘 논의해보겠다.

조지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영화산업의 변화가 크고, 영화제의 역할과 의미 또한 중요해지고 있는 시기다. 현재의 예산 삭감 결정이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혹여 바뀔 수 없다면 함께 의견을 모아 예산을 다시 증액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