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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갈라 프레젠테이션 ‘녹야’ 한슈아이 감독, 폭발하는 호기심과 긴장감이 중요했다
이우빈 사진 최성열 2023-10-20

배우 판빙빙이주영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녹야>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선보인 후 부산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소개됐다. 인천항 보안검색대에서 일하는 진샤(판빙빙)는 마약 밀매에 몸담은 초록 머리 여자(이주영)를 우연히 만난다. 모종의 이유로 함께 위험을 겪게 된 둘은 사려 깊은 애정을 피운다. <녹야>는 한국을 영화의 배경지로 삼는다. 한국의 이질적 공간성과 색다른 밤의 정경이 펼쳐진다.

- 한국에서 촬영한 계기는.

= 국적, 나이, 상황이 모두 다르고 서로를 전혀 모르는 두 여자가 만나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던 게 우선이다. 그럴 만한 장소로 한국 공항이나 항구의 보안검색대를 떠올렸다. 한국은 내가 사는 산둥 지역과 바다 하나만 두고 있을 만큼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취화선>을 본 이래 중국 다음으로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영화적 장소이기도 하다.

- 왜 서로를 전혀 모르는 인물들이어야 했나.

= 서로 모를 뿐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점도 중요했다. 진샤는 갑갑한 현실에 묶인 폐쇄적인 인물이다. 새장에 갇혀 있다는 이미지를 계속 떠올리며 캐릭터를 구상했다. 반면에 초록 머리 여자는 무척 자유분방하고 본인의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다. 서로를 모르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폭발하는 호기심과 긴장감이 중요했다. 그렇게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면서 종국엔 온전한 하나가 되길 바랐다.

- 차갑고 기이한 색감의 밤 장면들이 두드러진다.

= 밤은 추상적이고 낮은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낮과 밤 장면의 비율은 비슷하다. 그러나 인물들의 심정적 변화는 주로 밤에 이뤄진다. 그래서 관객들의 심상에도 영화 속 밤의 시공간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밤 중에서도 초록색의 이미지를 강조한 이유는 초록색이 자연, 생명력, 자유를 상징하는 색깔이라고 생각해서다.

- 낮의 인물 진샤가 밤의 인물 초록 머리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 그렇다. 딱히 의식하고 만들지는 않았지만 결과를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런 흐름을 잡은 것 같더라. <녹야>를 찍으며 마치 자그마한 초록색 잉크가 컵 안의 물 전체를 물들이듯이 진샤가 초록 머리 여자와 초록색의 밤에 스며드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 초록 머리 여자를 무명으로 설정한 이유는.

= 처음엔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밤에 어울리는 더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진샤에게만 매력적인 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영감을 줄 수 있는 상징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그래서 이름을 없앴다.

- 진샤와 초록 머리 여자는 중국어, 한국어 심지어 수어로도 대화한다.

= 다른 언어의 사용으로 둘의 관계 변화를 짚고 싶었다. 서로를 굳게 믿을 땐 중국어를, 믿지 않을 땐 한국어를, 그리고 둘의 관계가 어떤 처지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긴장감을 유도하고 싶을 때는 수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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