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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가라 가라 갇혀 확 갇혀
복길(칼럼니스트) 2023-12-14

나는 항상 ‘고즈넉’을 찾아 헤맨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쓰는 표현인지는 모른다. ‘고즈넉하다’는 것은 여행 다큐멘터리를 볼 때나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남의 기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한국어지만 이국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이 단어를 소리내 발음해보라. ‘고즈넉’(GOES-NUCK). 넋이 어딘가로 가버릴 만큼 고요하고 아늑한 상태. 이런 건 일상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기분이나 분위기가 아니다. 대체 어디를 가야 ‘고즈넉’을 찾을 수 있을까? 내게 ‘고즈넉’을 알려준 TV다큐멘터리는 그것이 모두 한옥에 있다고 말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구마를 먹고 아랫목 구들장에서 몸을 지진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재’나 ‘헌’으로 끝나는 ‘한옥 스테이’를 찾아봐.” 여행과 캠핑이 취미인 친구 A의 조언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외국어에 ‘재’와 ‘헌’을 결합한 이름의 숙소들이 근사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직접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집 곳곳의 컨디션을 살필 필요 없이 한옥의 ‘고즈넉함’만을 취할 수 있는 곳. 외관이 ‘한옥풍’일 뿐 화장실, 부엌, 침실, 침구 모든 것이 서양식 특급 호텔처럼 만들어진 곳. 그래 바로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다. 예약을 하려고 하니 ‘룸 타입’을 고르라고 했다. ‘안채’가 제일 좋은 방 같아서 고민 없이 눌렀다가 1박에 55만원이 결제될 뻔했다. 정말 좋은 곳이었지만 ‘고즈넉’이란 허상을 찾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순 없었다. 당장 뒤로 가기를 눌러 다시 옵션을 살폈다. ‘별채’, ‘특채’, ‘사랑채’. 왠지 특별하고 비싸 보이는 이름들이군…. 비천한 내게 어울리는 곳은 역시 이곳인가…? 실제 삶은 물론 전생까지 아우르는 계급적 모욕감을 느끼며 나는 ‘쪽방’(싱글)이라는 옵션을 눌렀다. 그런데 웬걸? 1박 8만원의 ‘쪽방’(싱글)은 나에게 무척 과분한 곳이었다. 작지만 따뜻한 온돌방엔 낮은 자개장도 있었고 비단을 기운 두툼한 전통 침구와 귀엽고 소박한 호롱불도 있었다. 더 볼 것도 없다며 예약을 누르려 하는 순간 빨간 글자로 적힌 유의사항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실내에 화장실이 없는 방입니다. (별채 뒤편 공용 화장실 이용.)’ 나는 안채와 사랑채와 별채 앞을 차례로 지나야 볼일을 보러 갈 수 있는 굴욕적인 구조를 보며 이것이 조선시대 신분제의 고증인지 현대 자본주의의 당연한 이치인지 괴로운 고민을 하다 사이트를 닫았다.

‘K-’라는 접두사가 한국의 특수성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공하는 기술에 붙여지는 것이라면, 내가 예약하려던 한옥 스테이는 모두 ‘K호텔’이라 부를 수 있었다. ‘K’가 의미하는 지역성은 아주 희미한 것이어서 ‘전통을 잘 지킨 것’보다 ‘전통을 잘 판 것’에 붙이는 인증 마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K호텔’은 ‘진짜 한옥’을 체험하려는 사람이 아닌, 좀더 특별한 호텔 서비스를 찾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K호텔’을 ‘가짜 한옥’이라 부른다면 업체도 투숙객도 모두 화를 낼 것이다. ‘K팝’도 마찬가지다. 한국 가요의 특수성을 ‘팝’이라는 보편적 장르로 가공한 ‘K팝’을 전통 민요나 국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가짜 한국 음악’이라 말한다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그 곡이 휘모리장단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국뽕’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짜’를 ‘가짜’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하지만… 왜지? 나는 평생 ‘가짜’로 지목된 것들과 더 가깝게 살아왔다. 전통을 추구하고 진정성을 찾기보다 그저 ‘빨리’, ‘많이’, ‘사고’, ‘파는’ 방식에 친숙하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피해를 입더라도 내 것을 많이 파는 게 중요하다’는 천박한 고민이 ‘가짜’를 만들고, 나는 그 ‘가짜’가 만든 세계에 열광하며 또 하나의 형편없는 ‘가짜’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2000년 발표된 ‘샤크라’의 <>은 내가 살아온 ‘가짜 세계’의 주제곡 같은 것이었다. 힌디어로 지어진 그룹 이름처럼 샤크라는 분명 한국에서 데뷔했으나 인도의 걸그룹이었다. 불상을 연상케 하는 금색 장식을 머리에 얹고, 이마엔 ‘빈디’를 붙인 채 등장한 그들은 ‘코브라’를 소환할 것 같은 민속악기 소리에 맞춰 목, 가슴, 팔이 따로 움직이는 전통 춤을 췄다. 정답! 인도! 그들은 마치 스피드 퀴즈에서 ‘인도’라는 답을 끌어내기 위해 인도의 대표적인 이미지들을 마구잡이로 조합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은 인도풍의 ‘고아 트랜스’ 장르를 표방하지만 곡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뽕’이 서린 한국의 90년대 댄스음악 장르다. 또 뮤직비디오엔 인도의 사원, 인도의 정글, 인도의 코끼리가 등장하지만 실제 촬영지는 태국이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랫말은 한국적 정서인 ‘한’에 기반해 쓰여졌다. 모든 것이 ‘가짜’ 같은 이 노래는 심지어 자신이 ‘가짜’라는 걸 알리듯 노래 내내 ‘가라 가라’라는 주술적인 읊조림까지 반복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연인이 미워서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정말 떠난다면 내 안에 갇히게 될 것이라는 미련과 저주의 메시지는 ‘가라 가라’라고 한 뒤 곧바로 ‘내 안에 갇혀 확 갇혀’라고 말하는 모순적인 주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 사람을 두고 인도라는 컨셉이 정해진 게 아닐까’ 생각을 들게 하던 스무살의 황보는 ‘가짜’ 같은 노래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그 무대를 보며 자란 결과 나는 20년째 ‘가라 가라’를 외치며 영원히 가짜로 남을 이 음악의 모욕을 기꺼이 즐기며 견디고 있다.

‘가짜’는 문화의 위계를 파악한다. 어떤 문화는 우러르며 따라가고, 어떤 문화는 하대하며 착취한다. ‘K-’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들은 대체로 이 위계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고, 다양한 사회의 문화가 개입하기 시작한 ‘K팝’은 그래서 늘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빌보드 차트에 ‘K팝’ 가수의 곡이 진입하는 것이 더이상 대단한 뉴스 거리도 아닌 때에, 나는 더이상 ‘K팝’의 세계적 위상 같은 것에 큰 관심이 없다. 다만 ‘K팝’이 이미 다양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문화의 위계에 순응하거나 그것을 강제해서 ‘빌보드적인’ 지위를 지키는 태도보다, 다른 사회와 만날 수 있는 좀더 크고 넓은 접점과 수용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한다. 음, 평생을 함께한 나의 ‘가짜 음악’으로 감히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의 꿈을 꾸다니…. 이것이 바로 내 안의 ‘국뽕’, 내 안의 휘모리장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