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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의 세계를 밀고 나갈 때, ‘이두나!’ 하영
이유채 2023-12-28

<이두나!> 대본에 ‘진주, 뒤로 넘어갈 듯 크게 웃으며’와 같은 지문이 없다는 게 하영 배우를 만나 확인됐다. 실제로 그렇게 웃어 보이던 그는 공감할 땐 손뼉을 연거푸 치고 생각할 땐 관자놀이에 검지를 갖다 대는 리액션으로 현장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흘러내린 웨딩드레스 신부로 얼굴을 확실히 알린 뒤 올해 <이두나!>에서 원준(양세종)의 솔메이트인 진주를 연기했다. 여러 시리즈를 거쳐 하영은 밝은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세심하게 포착해 인물의 속마음까지도 표현해내는 배우로 성장했다. 무채색 세상에서 뛰쳐나와 자기 색을 찾아나가는 진주와 함께 울고 웃었다는 하영에게 진한 우정 이야기를 들었다.

- <이두나!>를 찍었던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 비와 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촬영이 한여름에 시작해서 한겨울에 끝났다. ‘비두나!’로 부를 만큼 촬영할 때 비가 많이 와 다 같이 비가 그치길 기다렸던 순간들, 갑작스레 눈이 와 화면에 예쁘게 담긴 장면도 생각난다.

-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나.

= 그렇다. 3차까지 있었는데 진주 캐릭터 하나만 분석해서 2차 미팅에 와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준비하는 동안 몇번을 엉엉 울었다.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고 원준에게 거절당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진주의 모습이 가슴 아팠고 공감도 많이 갔다.

- 진주와 자신이 닮았다고 느꼈나보다.

= 내면적인 부분은 비슷한 점이 많은데 드러내는 방식이 정반대다. 진주가 뭐든 부드럽고 차분하게 표현한다면 나는 즉각적이고 직설적인 편이다. 현실에서 내가 진주처럼 행동하면 친구들이 내숭 떨지 말라며 질색할 거다. (웃음)

- 진주는 아무 문제 없는 사람처럼 지내온 시간이 너무 길어진 탓에 자기 감정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 정확하다. 아버지로부터 가정 폭력의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진주는 평생 자신을 모범적인 아이로 포장하면서 자랐을 거다. 그래서 진주는 밝아 ‘보이게끔’ 연기해야 했다. 그가 억압적인 현 상황과 자신이 보여줘야 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다가 원준이를 두나에게 빼앗기는 상황에 놓이면서 더는 가면을 유지할 수 없는 위기를 겪고 결국 그 위기는 기회가 돼 진주가 홀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진주 입장에서 보면 <이두나!>는 그녀의 성장기인 것이다.

- 진주의 이야기가 조각조각 나뉘어 있다 보니 그 사이를 메우는 작업이 필요했을 듯하다.

= 안 그래도 이정효 감독님과 장유하 작가님께서 진주가 중간중간 출연해 연기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며 대화의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셨다. 그때마다 진주의 가정환경은 어땠을지, 원준이와 진주는 고등학생 때 어떤 추억을 쌓았을지, 진주가 매 순간 어떤 감정 상태일지를 적극적으로 말씀드렸다. 디테일이 더해질수록 진주가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 내게 다가와 뭉클했다.

- 결국 진주는 큰 용기를 내어 집에서 독립한다. 하영 배우도 오래 해온 미술에서 연기로 진로를 바꿀 때 그만큼 큰 용기를 냈을 것 같은데.

= 그때가 미술 전공으로 들어간 미국 대학원 1학년 시절이었다. 여름방학에 한국에 들어와 시나리오 작법 학원과 연기 학원을 같이 다녔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이 시켜서 시작한 미술이 다행히 적성에 맞아 쭉 해왔지만 스스로 탐색해온 영화나 문학과 같은 이야기 장르에 대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 실제로 해보니 연기가 특히 재밌었다. 용감하게, 어쩌면 충동적으로 휴학한 뒤 진지하게 연기를 배웠고 광고 모델을 시작으로 여기까지 왔다. 결국 대학원을 그만두었지만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 후회하지 않는다.

- 진주가 두나에게 “익숙한 것에는 큰 힘이 있다”라고 말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직업으로 선택하진 않았지만 익숙한 미술이 큰 힘이 되어주나.

= 물론이다. 싫어서 그만둔 게 아니니까. 옛날만큼 본격적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개인 작업실에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여전히 전시회 다니는 걸 좋아한다.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흡수하는 시간이 연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막내 사원 소영은 대표 아들의 구애에도 자기 커리어를 쌓아가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화영은 내 인생이라며 소 취하를 외친 뒤 동성 연인의 손을 잡고 재판장을 빠져나간다. 진주 역시 자기 삶을 독자적으로 꾸린다는 점에서 하영의 캐릭터들은 자신이 선택한 세계를 밀고 나가는 동력이 있는 여성들이다. 감독들이 하영 배우에게서 이 동력을 발견했기에 이런 역을 맡기지 않았을까.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리면서) 맞는 것 같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결혼 얘기를 일절 안 하는 분이고, 언니는 일이 먼저인 사람인 걸로 보아 진취적인 성격은 유전인 듯하다. (웃음) 내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걸 즐기는 편이고 그 과정이 힘들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달래는 시간을 가져가면서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촬영이 끝났다고. 앞으로의 계획은.

= 남은 12월은 푹 쉬고 새해가 되면 배우로서 다시 씨앗을 심고 밭을 일구려 한다. <발레리나>의 옥주(전종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몬스터>의 리(샬리즈 세런)처럼 몸을 많이 쓰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일단 부딪혀보고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가보지 않는 영역으로 나아가고 싶다.

배우 하영의 휴식법

한 가지 감각에만 집중하기. 내일 뭐 해야지, 앞으로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데 그럴 때마다 단순해지려고 노력한다. 맛있는 걸 먹은 순간, 편안한 상태에 들어섰을 때의 그 느낌에 몰입하다 보면 저절로 릴랙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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