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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생동하는 미니멀리즘의 연기, <사랑은 낙엽을 타고> 배우 알마 푀위스티
김소미 2023-12-28

“매우 분명한 방식으로 희망과 인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것이 너무나 희박한 시대이기에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분명함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 담담하게 빛나는 평가가 알마 푀위스티로부터 나왔다는 것, 떨어지는 고엽 사이로 소생하는 영혼의 달콤쌉쌀함을 전달했던 배우가 감독에게 전하는 존경의 전언이라는 점도 값지게 들린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무민의 창조자 토베 얀손을 연기한 경력(영화 <토베 얀손>)으로 곧잘 수식되어 왔던 핀란드 배우 알마 푀위스티는, 고대하던 아키 카우리스마키와의 첫 랑데부 이후 칸영화제, 세계 각국에서의 연이은 개봉 소식을 접하며 꽤나 시끌벅적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배우와의 인터뷰를 마친 직후에도 낭보는 쉬지 않고 날아들었으니, 그는 42살에 생애 첫 골든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여우주연상 후보로 선정되어 곧 제니퍼 로런스, 마고 로비, 엠마 스톤 등과 미국 시상식에서 색다른 경합도 벌일 예정이다.

- 아키 카우리스마키와는 첫 작업이다.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

=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과 점심 식사를 하겠냐는 프로듀서의 연락을 받았다. 놀랍도록 기뻤다! 그와 만난 적은 없었지만 평생 그의 영화를 보고 사랑해왔다. 그래서 그가 알려준 식사 장소에 갔는데, 그곳에 아키는 물론 이미 유시(바타넨)가 와 있었다. 영화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것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키가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 대해 살짝 이야기하면서 우리 두 사람이 함께하고 싶은지 물어보더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한다고 했다. 약속한 지 1년 후에 시나리오를 받았고, 두세달 후 촬영이 시작됐다.

-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삶을 사는 가난한 노동자 안사와 홀라파,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영화의 묘사를 어떻게 해석했나.

=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1980년대 프롤레타리아 영화와 변함없어 보이는 현실이 놀라울 뿐이다. 거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하나 추가되긴 했지만. 안사는 열심히 일하며 가난하고 수줍음이 많은 여자다. 그러나 보수가 적은 직업을 가졌대도 알마의 허리는 꼿꼿하고 자부심이 있다. 독립적이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안다. 그들의 사장이 못되게 굴 때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가 서로를 얼마간 지켜준다. 나는 아키가 바로 이 지점, 냉소와 착취에 대한 대항마로 배려와 공감을 제안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안사는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개들)의 장점을 볼 줄 안다. 이건 아름다운 능력 아닌가. 그리고 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라는 감독이 영화의 시간과 리듬을 가지고 놀면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의상, 음악, 그외 총체적인 미장센이 역사의 서로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미학을 만들어낸다. 한마디로 동화 같다.

- 배우의 연기에 대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디렉팅은 어떠했나. 미리 대본을 연습하지 말도록 요구하고 리허설을 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 맞다. 리허설을 원하지 않았고 모든 배우가 가능한 한 촬영장에 순수하고 정직한 상태로 당도하길 바랐다. 대본을 읽으면서부터 그가 아주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말수가 아주 적은 남자인데 대본도 마찬가지로 짧다. 하지만 거기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았고 감동적이면서도 웃겼다. 디렉팅 역시 간결하지만 정확한 방식이었다. 즉흥적인 것은 없었으나 경직됨 없이 여유가 있었다. 알맞은 리듬을 찾아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미니멀리즘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연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배우의 절제된 표정과 제스처로부터 데드팬 코미디, 나아가 비애감을 불러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스타일이 당신에게는 어렵지 않았나.

=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이전 작품들을 모두 따라왔기에 그의 우주를, 그 미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관객을 신뢰하기 때문에 관객이 자신의 관점을 등장인물에 투영할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해낸다. 캐릭터들은 감정이 풍부하고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지만 겉보기엔 내성적이다. 그래서 침묵의 순간 속에서 많은 일이 일어난다.

- 유시 바타넨과의 호흡에 있어 촬영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장면은 무엇인가.

= 함께 처음 저녁 식사하는 장면을 정말 즐겁게 찍었다. 둘의 조화가 아주 위태롭고 모든 뉘앙스들이 섬세해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장면이다. 배우로서는 그 순간의 침묵과 어색함 속에 놓인 것이 대단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 연극으로 데뷔했고 연극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무대에서의 경험이 아키 카우리스마키와의 작업과 연결되는 점도 있었을까.

= 나는 수년간 개발한 나만의 연기 메소드를 매작업 상황에 맞게 적용시킨다. 디테일은 매번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표현하는 인물에 대해 상상력 이상의 구체적인 앎으로써 깊이 꿰뚫고 있어야 한다. 영화는 무대와 달리 길고 치밀한 리허설이 필요하지 않으나 결국 연기의 본질은 같다. 인물에게 살아 있는 심장을 주고 모든 순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아버지인 에리크 푀위스티 등 핀란드에서 잘 알려진 배우 가족들로부터 일찍이 예술적 환경에서 자라난 당신 또한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인용하거나 오마주한 영화사의 작품들에 친밀감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 아키가 그의 영화계 친구들과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경우는 오히려 그 레퍼런스들을 전혀 몰라도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더 좋았다. 인용하되 전혀 엘리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이었다.

- 알마가 홀라파보다 더 자주, 또는 더 깊이 교감하는 존재는 그녀의 개가 아니었을까. 견공 배우와 어떻게 유대를 쌓았나.

= 알마(개)와 난 이름이 똑같다. 우린 아주 친하다. 알마는 아키의 개고, 그가 포르투갈에서 데려온 유기견이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알마의 데뷔 작품인데, 알마의 집중력과 리듬감, 존재감에 모두가 놀랐다. 우리는 아주 단순한 방식을 추구했다. 가능한 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 마지막 장면에서 세 주인공이 자신들 앞에 펼쳐진 길 위를 걸어간다. 엔딩 신을 찍던 순간의 소회를 들려준다면.

= 마침내 하나의 미래를 향해 다 함께 걸어가고 있다고, 우리의 관계 속에는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매우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개 알마에게 주어진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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