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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월26일, 안중근, <하얼빈> 우민호 감독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4-01-12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현빈)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기까지 독립투사들의 긴 분투를 그린 첩보 드라마다.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그와 마음을 한데 모았던 독립군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우민호 감독은 “이전까지 내 영화가 악인들을 주로 다뤘다면 처음으로 선의를 가진 인물들을 다루게 됐다”고 이 영화를 설명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감정의 원천을 좇았던 여정에 대해 들었다.

- <하얼빈>은 최근 한국 근현대사를 영화로 다시 쓰고 있는 하이브미디어코프가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에 이어 선보이는 작품이다. 어떻게 연출을 제안받게 됐나.

=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 등 계속 작품을 함께해온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가 갖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사실 직접 연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 때문에 강남에 있는 병원에 갔다가 중간에 시간이 붕 떠 길 건너 교보문고에 들르게 됐다. 그곳에서 이문열 작가의 <불멸>을 읽었다. 문득 <하얼빈> 시나리오가 떠올라서 김원국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 감독을 못 구했다더라. 초고는 상당히 오락적인 케이퍼 무비였다. 그런데 김원국 대표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접근하지는 않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보자며 함께하게 됐다.

- 감독으로서 매력을 느낀 지점이 무엇이었나.

= 안중근 의사는 위대한 영웅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인간적인 면을 지녔고 그런 지점들 이 동시대와 맞닿은 부분이 있다. 내가 입봉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몇번 있었다. 안중근 의사도 분명 두려웠을 텐데 어떻게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긍지를 갖고 거사를 치를 수 있었을까, 그 마음이 궁금했다. 나라를 잃고 러시아와 중국을 떠돌아다니던 망국의 유랑민들의 심정을 이해해보자며 시작했는데 녹록지가 않았다. 그러다 아내가 추천해준 박경리의 <토지>를 읽게 됐다. 간도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와 그 시대의 공기가 잘 담겨 있었다. 당시 한국인의 한이 이런 것이구나. 그때부터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 안중근 의사 외에도 독립운동가가 등장하고 각자의 서사를 갖고 있다. 역사에 기록된 인물 중 어떤 이들을 골라내 재현할 것인가 고민이 있었을 텐데.

= 일단 안중근 의사가 있다. 끝까지 작전에 가담했던 우덕순 의사(박정민)와 그들을 도왔던 최재형 선생(유재명)은 실존 인물이다. 그외 김상현(조우진)과 이창섭(이동욱), 공부인(전여빈)은 모두 영화적 상상을 더한 허구의 인물이다.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일부 요소들을 가져와 캐릭터를 재구성했다. 공부인은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전 내 작품에 일대일 장면이 많았다면 <하얼빈>에는 동지들이 한 프레임에 모여 있는 그룹숏이 많을 것이다.

- <남산의 부장들>이 10·26 사태를 남자들의 치정극으로 재해석한 것처럼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첩보 드라마로 접근했다.

= <남산의 부장들>을 만들 때 10·26 사태를 단순한 권력 투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1인자를 차지하기 위한 치정극처럼 만들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0월26일은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쏜 날이기도 하다. 10월26일에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들을 연달아 영화로 만들게 됐다. (웃음) 하얼빈 거사는 안중근 의사 혼자 한 게 아니라 러시아, 중국을 함께 떠돌아다니며 서로 믿고 목숨을 의지했던 동지들과 함께한 것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미션 임파서블’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더하면 이를 첩보 드라마로 풀어낼 수 있겠더라. 그런데 첩보 드라마는 형식이자 외피일 뿐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른 곳에 있다. 정보가 새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의심은 두려움을 키우고 두려움은 큰일을 앞둔 사람을 비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얼빈역에서 총을 쏠 수 있었던 마음을 그려내고 싶었다.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안다.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얼마나 실제 인물과 닮았는지 검증하려는 관객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빈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 실제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과 그를 연기한 배우들의 얼굴이 닮진 않았다. 하지만 배우가 진심을 다해 표현하면 관객은 그 인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모의 유사성이 아닌 연기의 진정성이다. 현빈은 안중근의 마음을 진심을 다해 표현할 수 있는 배우다. 그리고 몽골과 라트비아 등 험지에서 많이 촬영했기 때문에 체력이 좋아야 했는데 그는 해병대 출신 아닌가. (웃음)

- 몽골과 라트비아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고집했는데.

= 실제 독립운동가들이 있던 곳은 중국과 러시아였지만 촬영이 불가능했다. 라트비아는 소련의 식민지로 오래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배우들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만 찍어도 세월의 질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광활한 대륙을 누비며 이곳저곳을 떠돌았던 안중근 의사와 독립투사들의 여정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몸도 고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주와 유사한 몽골 지역을 살펴봤다. 몽골에는 산이 없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서 있자니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더라. 신기하게도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다. 대륙을 떠돌던 안중근 의사와 독립투사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때문에 당시 일본 제국주의와 상대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거사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 코로나19 이후 영화인들은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의 본질을 고민하고 있다. 고전적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찍은 <하얼빈>은 그 답이 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닐지.

= 세트가 아닌 실제 로케이션에서 영화를 찍으면 일단 배우의 연기가 달라진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홉스굴까지 가는 데 3박4일이 걸린다. 얼음이 팽창하면서 깨지는 소리가 무척 공포스러운데 그 소리까지도 영화에 담기 위해 새벽부터 녹음기사가 1시간씩 차를 타고 현장에 나갔다. 관객이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다방면에 공을 들였다.

<하얼빈>의 이 장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순간이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그다음이 중요한 영화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영화로 직접 확인해 달라. (웃음)”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 감독 우민호 / 출연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그리고 이동욱 / 배급 CJ ENM / 개봉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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