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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어른은 많고 어린이는 적은, 외롭고 무서운 밤, <웡카> 원작 소설 쓴 로알드 달의 작품 세계
김지은 2024-02-09

계몽적 근면함을 찬양하며 각종 미덕을 하사하는 시혜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어린이의 눈으로 인간과 세상을 직관하는 것이 현대 아동문학이다. 여기 크게 공헌한 두 작가가 있다. 한 사람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다. 그는 투명하고 단단한 삐삐 롱스타킹의 음성을 통해 반성 없는 연령의 권력을 허물어뜨렸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어린이와 다른 약자의 연대로 선의지의 존재를 증명한다. 또한 그는 어린이의 슬픔을 연민 없이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슬픈 어린이는 어른에게 불길하기 때문에 그들의 슬픔은 한번도 정확히 공개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린드그렌이 그 간절한 비애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어른들에게 도덕적 기회를 줄 때만 전시될 수 있었던 말랑말랑한 유사 슬픔들을 가차 없이 쳐냈다.

그러나 린드그렌이 평생의 작업으로도 건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다. 어린이를 절망하게 만드는 씁쓸함과 천박함과 악랄함의 영역이다. 어른들의 위선은 더 집요하게 폭로되었어야 했다. 로알드 달이 그것을 해냈다. 어린 사람 특유의 선천적 낭만을 이용하는 기름진 파괴자들은 더 교묘하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응징되었어야 했다. 로알드 달이 한 일이다. 끝끝내 사랑이 등장하기 위해서라도 희망에 대한 모호한 기대는 당분간 절멸되는 것이 옳았다. 로알드 달이 그렇게 했다. 현대 아동문학에서 빛의 영역을 담당한 린드그렌이 있었더라도, 퀴퀴한 웃음을 타고난 유능한 해결사 로알드 달이 없었더라면 아동문학은 영원히 공포와 어둠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마틸다의 하늘을 찌르는 패기가 없었던들 동화는 어른의 손아귀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현대의 문턱에서 물러났을 수도 있다.

로알드 달은 공포가 안겨주는 재미를 즐겼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공포와 연결해 설명하곤 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여러 명의 어른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한명의 고립된 어린이가 자주 등장한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에서 제임스는 첫 장면부터 부모를 잃는다. 혼자 된 제임스의 긴 모험에 어린이 동료는 보이지 않는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주인공 찰리는 어른 여섯과 함께 사는, 이 집의 유일한 어린이로 나온다. 이 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치약 공장에서 튜브에 뚜껑 끼우는 일을 하는 찰리의 아빠 한 사람이며 찰리의 엄마는 아흔이 넘은 찰리의 조부모와 외조부모, 네 사람의 노인을 보살피고 있다. 여기도 찰리의 또래 친구나 형제자매는 없다. 궁핍한 가운데 홀로 자라나는 어린이 인물은 아동문학에서 ‘고립아’, ‘박탈아’라는 개념으로 정의될 만큼 하나의 익숙한 유형이다. 그러나 로알드 달의 작품에서는 좀 특이한 점이 있다. 혼자 된 아이 곁에 문제적 어른들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기이한 어른들만 가득한 세계에 오직 혼자서 미래를 짊어진 아이의 막막함, 이것은 로알드 달이 공포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구도다. 이곳은 무게만 있고 그 무게를 덜어줄 우정은 없는, 역삼각형의 세계다. 모두가 어린이 한 사람을 보면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런데 그가 작품을 쓰던 시절보다 지금은 더더욱 그 역삼각형의 현실이 증폭되었다. 로알드 달이 60년 전에 제시한 공포는 지금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들의 현실이다. 미래의 어마어마한 연금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어린이들 앞에서 그가 창출한 공포는 설득력을 더한다.

성장과정부터 그에 가해진 비판까지

개인적으로 로알드 달은 불운을 왼손에 행운을 오른손에 쥔 사람이었다. 가난한 노르웨이계 이민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웨일스에서 석탄 사업으로 성공했으나 그가 어릴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기숙학교 렙튼에 진학해서는 신을 의심할 만큼 흠씬 두들겨 맞으며 지냈으나 그 학교를 다닌 덕분에 캐드버리사의 초콜릿들을 가장 먼저 시식할 수 있었다. 렙튼 학교는 캐드버리 초콜릿 공장과 가까웠고 초콜릿에 열광할 나이의 기숙사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회색 골판지 상자에 든 12개의 초콜릿과 한장의 평가지를 받았다. 12번째 초콜릿은 평가의 기준점이 되는 ‘컨트롤 바’였고 나머지 11개는 신제품이었는데 이 시식단 경험은 1964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렙튼 학교는 결국 캐드버리사에 인수돼 폐교되고 마는데 어린 로알드 달은 여기서 ‘거대한 초콜릿 공장의 힘’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는 비행기를 좋아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공군 조종사가 되었으나 리비아의 사막에서 추락하며 치명적인 중상을 입는다. 의사는 “머리 뒤쪽의 살을 당겨 코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 만큼” 대대적인 수술 끝에 그를 살려낸다. 로알드 달은 사경을 헤매면서도 의사에게 1920년대 최고 인기 무성영화 배우였던 루돌프 발렌티노와 똑같은 코를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사고 후 영국군의 첩보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쓴 모든 글을 윗선에 보고해야 했는데 그의 첫 작품 <그렘린>을 최초로 읽은 사람도 그의 상관이었다. 로알드 달은 좌우명으로 “내 초는 양쪽에서 타들어갑니다. 아마 오늘 밤도 못 넘길 겁니다. 그러나, 오, 나의 적, 나의 친구들이여! 지금 그 불빛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라는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시를 꼽았다.

그의 인생만큼이나 그의 작품과 인물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을 달렸다. 대표적인 문제는 인종주의자의 면모다. 2020년 로알드 달의 유족들은 “로알드 달이 과거에 남긴 말로 인해 계속 되는 상처를 이해하며 이에 대해 깊이 사죄한다”며 그의 인종주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생전의 로알드 달은 자신의 책에서 쉼표 하나도 바꾸지 말라고 강조했으나 그의 책을 출판하는 퍼핀북스는 2023년 2월 “이 책이 오늘의 어린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출판될 수 있도록 작품의 여러 부분을 창의적으로 편집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로알드 달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 <웡카>는 로알드 달에게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검토하고 부지런하게 안전지대로 들여보낸다. 1964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출간되고 60년이 지난 후에 창작된, 이 프리퀄에서 웡카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또 한명의 영웅으로 등장하는 ‘누들’은 유색인종 여성 어린이다. 누들의 존재는 로알드 달이 인종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한 적극적 응답이다.

외롭고 두려운 밤으로부터

로알드 달은 성 베드로 기숙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기숙사에서 잠자리에 들면서 가족을 등지고 잠든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침실이 바뀌어 다른 침대로 옮기면 항상 새로운 방향을 알아내 가족이 있는 쪽으로 누웠다. 그럴 때마다 브리스틀해협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혼자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 가족이 있는 집까지 상상의 선을 그었다. 집쪽으로 누워 있다는 사실이 살벌한 학교생활에서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한다.

필자로서 나는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40주년 되었던 해, 팀 버튼의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한 잡지에 로알드 달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리고 60주년이 된 올해, 영화 <웡카>가 개봉되는 시점에 다시 로알드 달에 대해 쓰게 되었다. 로알드 달의 어떤 시각은 그사이에 단호하게 재평가되었고 어떤 표현은 책에서 사라졌다. 80주년이 되는 해에는 로알드 달의 세계에 대한 어떤 평가가 중심에 남게 될까. 그것은 아마도 혼자 남겨진 어린이가 가족이 있는 방향을 향해 누워 잠드는 외롭고 두려운 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모두 그의 예언대로 박탈아, 고립아의 공포와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런 상상이 자꾸만,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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