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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맛과 요리 섹션: 인터뷰 취재

1. 기획이 정해지면 취재가 시작된다. 취재를 한 후에 데스크에서 정리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계간지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서, 월간지는 한달의 시기에 따라서. 지금 일하는 부서는 월간지라 대부분 월초에 치열하게 기획 회의를 마치고 중순까지 취재를 마치고 남은 기간 마감을 치는 형태로 한달의 업무 스케줄이 짜인다. 그나마 주간지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하나.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잡지를 만드는 사람에게 야근은 대부분 필연적이다. 나 역시 그렇다. 심지어 옮긴 팀에서 첫 취재였고, 첫 인터뷰였다. 어떤 형태로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녹취를 풀기 전에 저장해둔 좋아하는 인터뷰 기사를 다시 찾아 읽었다. <씨네21>이 금정연, 오한기, 이상우와, 정지돈 작가와 나눈 대화, 인터뷰에서 브래드 피트가 앤서니 홉킨스를 인터뷰한 기사, <뉴요커>에서 마이클 슐먼과 프랜 리보위츠의 인터뷰. 각각 톤과 방식은 다르지만, 좋은 인터뷰의 요건은 모두 충족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호감,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인터뷰. 나는 그날 이런 인터뷰를 했는가. 이 정도로 준비했을까. 스스로에게 얼마나 떳떳한지 질문하면서 녹취를 풀었다. 밤 10시가 훌쩍 지났지만, 풀어낸 녹취를 몇번이고 돌려 들으며 그날의 장면과 분위기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2. “준비한 질문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 뚝배기에 담긴 순두부를 수저로 휘저으며 선배가 말했다. “중요한 건 대화의 흐름이야.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 준비된 것만 해내는 건 본전이라고.”

내가 미덥지 않았는지 선배는 굳이 같이 취재 일정을 잡아 서로 취재하러 가기 전 근처에서 조금 일찍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간 곳은 마포구에 있는 콩청대라는 오래된 두부 요리 전문점이다. 선배는 콩비지 찌개를, 나는 콩국수를 시키고 모두부도 같이 주문했다. 빠르게 밑반찬이 나온다. “밑반찬이 맛있는 집이 맛집일 확률이 높아.” 선배는 열무김치를 성큼 집어 어석어석 씹으며 말했다. “이런 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기본적인 신뢰를 주잖아.”

선배가 생각하는 좋은 인터뷰는 뭔가요.

그런 건 알려주는 게 아니야. 기자가 치열하게 고민해야지.

그럼, 선배가 고민한 좋은 인터뷰라도 알려주세요.

대화가 이어지기 전에 주문한 음식들이 속속 나오고 선배는 익숙하게 공깃밥을 흔든다. “모두부를 시키면 나오는 김치가 끝내줘.” 선배는 수저통에서 새 젓가락을 꺼내 모두부와 김치를 집어 그릇 위에 올려둔다. 비지찌개가 선배 자리 앞에 놓인다. 담백해 보이는 흰색 비지찌개다. “일단 인터뷰이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좋은 기사가 나오는 것 같아.” 선배는 비지를 휘휘 저어서 공깃밥 위에 올려서 비비며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인터뷰이를 아무나 뽑는 게 아니잖아. 아주 유명한 사람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획에 어울려야 하지만 꼭 그 주제가 아니어도 할 이야기가 좀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필터링하다 보면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 없어. 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거쳐 뽑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지.”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인터뷰이의 몫이기도 하지. 편집부가 고심해서 고른 사람이라도 매번 성공적일 수는 없잖아. 그럴 때는 기자가 아무리 좋은 질문을 준비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인터뷰이에 대한 신뢰와 애정, 인터뷰이의 좋은 태도, 그리고 준비와 자연스러운 흐름. 이러면 좋은 인터뷰가 완성되는 건가요?

아니지. 그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좋은 인터뷰가 될 수 있는 시작선에 서게 되는 거지.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활자로 옮겨야 하는 사람이잖아. 영상으로 올린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어떤 형태로든 편집을 거쳐야 한다고. 에디터란 직업은 기본적으로 좋은 재료를 어떤 언어로든 잘 편집할 줄 아는 사람이야.

선배는 먹으면서 들으라는 듯 모두부와 김치를 내 그릇에도 옮겨준다. 콩국수를 콩물에 잘 저어서 한입 크게 먹었다. 콩국수로 유명한 진주회관처럼 부드러운 느낌과는 조금 다른 찐득한 콩물의 느낌이 강한 콩국수다. 소금이나 설탕을 굳이 더 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담백한 콩물의 맛이 입안에 맴돈다. 콩 특유의 비릿한 냄새 때문에 콩국수를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맛있게 먹을 맛이다. 어느새 매장 안은 본격적으로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꽉 차 기다리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로 붐비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선배는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인터뷰 잘하고 와.” 이 말을 마치고 선배는 다음 취재를 가야 한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3. 그날의 녹취를 다시 돌려 들으며 장면과 분위기를 떠올려보았다. 이제 이 인터뷰를 어떻게 쓸 것인지, 어떤 말을 헤드라인으로 뽑을 것인지, 무슨 답변을 강조할 것인지는 온전히 인터뷰를 진행한 나의 몫이 되었다. 언젠가 선배가 내게 해준 편집장의 말을 떠올려봤다. 모든 취재는 데스크가 아닌 현장에 있다. 하지만 모든 취재의 완성은 데스크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쓰고 싶은 인터뷰는 어떤 인터뷰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콩청대에서 먹은 점심 식사 같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에도 음식처럼 영양 성분이 표기되어야 한다면 당과 나트륨은 낮고 단백질 성분은 높으면 좋겠다. 그것이 맵고 짜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읽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읽고 나면 든든한 포만감이 드는 글. 언젠가 너무 바람이 차고 혹한이 이어지는 날이면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만든 뜨끈한 두부로 찌개를 끓여 먹거나, 팬에 갓 부친 두부를 먹으며 부쩍 따뜻해진 몸의 온기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거창한 목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까지는 이제 하루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목표가 거창해도 마감을 지키지 않으면 편집장이 어떤 난리를 피울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시간 내에 어떻게든 좋은 인터뷰를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