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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국의 자매들에게 경의의 마음을, 배우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정재현 2024-02-23

- 메리는 자신이 처한 상실의 비탄을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드러내되 매일의 삶을 성실히 산다. 특히 메리의 슬픔은 클로즈업숏에서 대사 없이도 도드라진다. 배우로서 메리의 슬픔에 어떻게 접근해갔나.

= 살면서 메리와 같은 상실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메리가 자신의 방에서 대사 없이 퍼즐을 맞추는 장면을 찍을 땐 머릿속으로 메리의 독백 대사를 상상하며 연기했다. 내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카메라에 외현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의 비탄은 ‘슬픔의 단계 이론’을 안내 삼아 구성해갔다. 나의 대사에서, 상대의 대사를 듣는 나의 리액션에서 슬픔의 다양한 층위가 드러나길 바랐다. 하지만 메리의 슬픔이 너무 극적이어선 안됐다. 그래서 감정의 다이얼을 끊임없이 조정하며 연기해갔다.

- 촬영 전 알렉산더 페인이 당신에게 시나리오 속 메리의 궤적이 여성으로서, 비백인으로서 납득이 가는지 수차례 질문했다고 들었다. 감독과의 대화가 메리의 캐릭터 조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나.

= 알렉산더는 메리가 어떤 여자인지 내게 주입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메리를 완성해갔다. 알렉산더는 메리가 대부분의 장면에서 머리에 헤어롤러를 말고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학교 주방은 메리에게 엄연한 일터인데 노동 중에 헤어롤러를 하고 있다는 건 잠옷을 입고 출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해 반대했다. 알렉산더와 나는 메리를 1970년에 사는 ‘진짜 여자’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 당신은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 <빌리 홀리데이> 등에서 여러 차례 1900년대 중반의 미국 여성을 연기했다. 시대상을 연기에 반영하기 위한 당신의 노력이 궁금하다.

= 나는 고전영화를 사랑하고 빈티지한 옷을 입길 즐긴다. 미국사 속의 여성들과 미디어산업 속 여성들 그리고 내 인생의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시대극에 임한다. 머리, 의상, 액세서리 등을 통해 미국의 자매들에게 샤라웃(shout out)을 건네는 것이다.

- 메리는 영화 후반 어떤 장면에서 말없이 앵거스(도미닉 세사)의 손을 꼭 잡아준다. 이 장면에서 메리와 앵거스가 어떤 마음을 나누었을지 상상해본 적 있나.

= 베트남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메리는 앵거스가 군사사관학교로 강제 전학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장면에서 메리의 조리복엔 음식 얼룩이 묻어 있고 손에 국자도 들고 있다. 메리는 하던 일을 내팽개칠 정도로 아연실색한 상태지만 앵거스를 위해 강해지려 애쓴다. 앵거스의 손을 잡아주는 메리 본인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떨고 있다.

- <바튼 아카데미>의 후기를 검색해보면 많은 관객들이 메리로부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 상실의 단계 이론을 의도적으로 연기에 접목한 이유가 위와 같은 후기 때문이다. 얼굴 생김이 어떻든 출신 문화권과 젠더가 어떻든 메리가 표현하는 모든 감정이 보편적 공감대에 호소하길 희망했다. 모두가 메리를 보며 ‘나 저 여자 안다’고 느끼길 바랐다. 우리가 삶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결국 혼자가 아니고, 다른 이들도 나와 유사한 고통 속에 있다는 진실을 깨우칠 때 아닌가. 그 마음에 모두가 감응해준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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