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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지금 OTT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이유 - 포화상태에 이른 OTT 산업, 타개책은 있는가
임수연 2024-02-29

“TV가 영화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처럼 넷플릭스는 기존의 TV 콘텐츠와 영화를 보다 나은 방식으로 제공하는 연장의 의미가 될 것이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넷플릭스 See What’s Next: Asia’에서 리드 헤이스팅스 창립자 겸 CEO는 OTT의 성행을 영화에서 TV로, 지상파에서 케이블TV로 시청자층이 확산됐던 역사와 비교했다. 광고 없이 언제 어디서든 ‘몰아보기’가 가능하다는 OTT 매체의 특성이 각광받으면서 실제로 케이블TV 가입자 수와 시청률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전세계 구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TV드라마 모델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다양한 기획이 등장할 수 있는 것 또한 OTT의 강점이었다. 거대 공룡 미디어 그룹 디즈니, 아마존이 OTT 전쟁에 먼저 뛰어들고 워너미디어의 HBO 맥스(현 맥스), NBC유니버설의 피콕 등도 자사의 콘텐츠를 공개하는 플랫폼을 론칭했다. 그만큼 넷플릭스를 위시한 스트리밍서비스의 번성은 영상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 수혜를 누린 플랫폼들이 연이어 정체 혹은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OTT가 미디어산업의 주도권을 완전히 쥔 것처럼 보였던 시장 상황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위기론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22년부터다. 2022년 1분기 넷플릭스 역사상 처음으로 구독자 수가 감소하면서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게 아니냐는 우려가 흘려나왔다. 가격 인상, 계정 공유, 디즈니+ 등 경쟁사 및 커텍티드TV의 등장 등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결과적으로 넷플릭스는 구독료 인상이 가입자 감소의 여파를 상쇄해 총매출은 증가했지만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디즈니+는 훌루의 지분을 100% 인수했지만 구독료 인상 등의 이슈로 지난해 구독자 수는 줄어들었다. 파라마운트 글로벌은 파라마운트+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매각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작가 및 배우 조합의 파업으로 스트리밍서비스들의 신작 수급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미디어 그룹들은 전반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에 접어들었다. 무엇보다 성장세가 둔화됐다는 것은 더이상 확장성이 없다는 의미다. ‘케이블TV 대신 OTT’가 아닌 동반 침몰을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슈츠>

OTT 위기론은 수익모델의 한계부터 콘텐츠의 질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의 분석가 사라 헨셀은 현 스트리밍서비스들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지난 10년간 그들은 일종의 거친 서부 개척기를 거쳤다. 이제 돈을 벌어야 할 때가 됐다. 그들은 더이상 모든 콘텐츠를 5달러에 그냥 넘길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지나 이제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강구해야 할 때가 됐지만 킬러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투입된 막대한 비용을 아직 회수하지 못한 기업이 많다. 넷플릭스의 광고요금제 실험은 매출 증가로 이어지면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정책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소비자들도 있다. 디즈니+가 ESPN와 손을 잡았고 미국 CNN은 모회사 위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의 맥스를 통해 스트리밍 시장에 진출했다. 케이블TV가 하락세에 접어들고 대신 부상했던 OTT가 점점 TV를 닮아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존 모델의 한계를 느낀 OTT 플랫폼이 선택한 돌파구가 그들의 정체성을 약화하는 길이라면 지금의 케이블TV처럼 곧 하락세에 접어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국내 상황은 보다 비관적이다. 한국 콘텐츠 업계는 태생적으로 내수시장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곳이다. 해외 판매가 필수적인 이들에게 넷플릭스의 등장은 해외 수출의 진입장벽을 낮춘 동시에 성장 한계를 만들었다. 배우 출연료가 치솟고 스탭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콘텐츠 업계가 힘들어졌다는 주장 이전에 OTT 중심의 수익모델이 한국 제작자에게 적합한지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OTT의 공격적인 투자에 대항하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던 플랫폼은 적자 누적으로 생존을 위한 합병을 고려하거나 존폐 위기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소비자 입장에서 OTT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고 만족도는 떨어지는 현상은 결국 콘텐츠의 힘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미디어 업계가 직시해야 할 가장 큰 위기다. 넷플릭스 한국 진출 초기만 해도 가장 신선한 작품을 기획하는 돌파구처럼 보였던 이곳은 지난 몇년간 산업에 쏠린 자본에 필적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수치로 증명되는 흥행과 작품의 질 모두에 해당된다.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넷플릭스의 방침이 오히려 퀄리티 컨트롤 부재로 이어졌다거나, 시즌제 드라마에 익숙지 않은 한국 창작자들에게 제작비에 연동되는 이윤을 먼저 지급하는 모델은 국내 실정에 잘 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더군다나 지난해 미국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작품은 <슈츠>였고, 전세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한국 드라마 톱5는 <킹더랜드> <마이데몬> <일타스캔들> <힘쎈여자 강남순> <사냥개들>이다. 굳이 한편당 수백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드는 것보다 기성 TV드라마가 더 잘 팔린다면, OTT 입장에서도 콘텐츠 전략 수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2년 전 <버라이어티>의 수석 영화평론가 오언 글라이버먼은 ‘넷플릭스는 구독자를 잃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을 잃었다’는 칼럼을 통해 “넷플릭스의 신화에 구멍이 뚫렸다”고 일갈했다. 이후 다시 주가를 회복한 넷플릭스에 그의 자신만만한 진단이 얼마나 유효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집에서 보는 영화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만큼 가치 있다”는 플랫폼의 주장은 전염병 유행이 끝난 후 극장 영화가 다시 각광받으면서 점차 깨지고 있다는 그의 분석은 대중문화 산업의 복잡성과 빠른 진화를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 OTT에 도래한 갖가지 위기는 넷플릭스로 촉발된 스트리밍 혁명, 더 나아가 콘텐츠 산업이 향후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