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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정직한 후보
김수민 2024-03-07

<길위에 김대중> 기획 기사(<씨네21> 1440호, ‘가장 미움받은 정치인,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에 올렸던 내 글에는 ‘샤이 김대중’이었던 소년 시절이 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내가 정당 차원에서 지지했던 쪽은 따로 있었다. 김대중의 소속 정당보다 훨씬 더 불리한 처지의 정당이었다. 발단은 1992년 총선 당시의 민중당이다(현 진보당의 전신인 민중당과는 다른 당이다). 하교하던 국민학생은 버스 안에서 민중당 선거운동원의 발언을 만난다. 민중당이라는 당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전년도 광역의원 선거 때, 비디오카메라 촬영 연습을 하던 아버지가 합동연설회를 찍어와 집에서 틀었다. 세 후보 중 민중당 C 후보가 마음에 들었다. ‘가난했던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가난한 급우 몇몇도 말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C를 찍었다.”

버스 안 운동원은 자기네 국회의원 후보 Y가 감옥에 갔다 왔음을 알렸다. 상대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지낸 여당 거물(나중에 알고 보니 안기부장도 역임한 하나회 인사)인데 난데없는 ‘범죄 신고’라니.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도 들렸다. 옳은 일을 하다가 옥고를 치렀다는 것이 대강의 내용이었다. 귀가한 나는 독립운동가들의 옥살이를 떠올렸다. 버스에서 나와 함께 내린 것은 불의가 여전히 횡행할지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을 본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나는 TV 다큐멘터리의 한 출연자가 그 운동원임을 알아봤다. 그는 구미공단에 위장취업한 노동운동가였다. 5년이 더 지나 지방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민중당 출신 이웃을 만났다. 나의 멘토가 된 그와 1991년의 후보 C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선배도 자네처럼 서울에서 공부하고 구미로 귀향했었지.”

Y는 1996년 총선에선 통합민주당 후보였다. 뒷날 알았지만, 민중당 활동가들은 당 재건에 실패한 이후, 김대중 총재를 따라가지 않은 민주당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이 만든 통합민주당에 섞여들었다. 그 당에는 스타가 꽤 있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3김 정치인의 힘이 강한 영남, 호남, 충청 지역 곳곳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다수가 낙선하며 그 당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자 중학생이던 나는 분을 못 이겨 정치를 저주했다. 다만 고난을 무릅쓰는 싸움에 가슴 뛴 기억은 내 미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어느 통합민주당 정치인은 변호사 업무 중 잘못했던 일을 자전에세이의 서두와 뒤표지에 실었다. 자랑이 아니라 반성을 앞세우는 그 정직함과 용기에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던가. 1997년 대선 직후 나는 “김대중 다음은 저 사람”이라 했고 5년 뒤 그대로 되었다.

바야흐로 사과 거부, 시선 돌리기, 위성괴뢰정당, 답정너 공천, 말만 많은 저격수, 공약 지름신 강림 등등 속 보이는 정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계절이다. 요즘 정치인들에게는 물이 들어오든 빠지든 절대 노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승부수인 것 같다. 하지만 정치는 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희생과 양보가 욕심과 독차지를 끝내 이긴다는 것을. 이게 어림없는 기대라면, 그 담지자가 멸종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도 확인하고 싶다. 오늘도 버스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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