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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닭강정’ 안재홍, 전성기의 기세!
김소미 2024-03-21

이병헌 감독이 자꾸만 내게서 음악적 재능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수줍게 말끝을 흐리는 안재홍은 <닭강정>을 위해 댄서 아이키에게 몸 쓰는 법을 배우고 <멜로가 체질>에서도 호흡 맞췄던 박상우 음악감독을 찾아가 기타 레슨을 재개했다. 그가 연기한 고백중은 기계 회사 출근길에 악상을 흥얼거리는 아마추어 작곡가이자 사시사철 핑크 셔츠와 노란 바지를 벗지 않는 남자로, 명실상부 <닭강정>의 아이콘이다. 3월15일 작품 공개를 앞두고 “요새 주 3회 닭강정을 사먹는다”는 안재홍 역시 요즘 변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다. <마스크걸>의 주오남과 <LTNS>의 사무엘로 잇따라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전작의 잔상에 머물러있지 않는 이 배우는 닭강정으로 변해버린 썸녀 민아(김유정)를 위해 순정을 바치는 고백중에게 조금 특별한 애정도 느끼고 있다. “문득 나오는 표정, 작은 행동들이 지금껏 연기한 인물들 중 나와 가장 닮은 것 같다.” 닮음을 재료삼아 종종 우주 밖까지 나가버리는 코미디를 소화하기. 이 어려운 미션 앞에서 안재홍은 전보다 더 단단해지기를, 엄격해지기를 택했다.

- 얼마 전 제22회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마스크 걸>로 시리즈 부문 올해의 남자배우상을 받았다. 감독들이 지지를 표명하는 상인만큼 뜻깊었겠다.

= 아주 기뻤다, 솔직히. 이런 상이 내게 필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로 삼았다.

- <마스크걸>은 농담 삼아 은퇴설까지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오타쿠 연기를 선보인 작품이었는데, <닭강정>의 인턴 사원 고백중도 일단 외적으로 만만찮다.

= 놀랍게도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에는 원작 웹툰에는 나오지 않는 고백중의 샛노란 바지에 관한 비밀이 나온다.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코스튬을 완성시켰는지, 그리고 늘 회사 로고송을 흥얼거리는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에는 어떤 의미와 의지가 있는지 공개된다. 고백중 캐릭터는 물론이고 변신 기계의 작동 방식에 얽힌 역사와 논리까지 각색 과정에서 깨알같은 디테일들로 꽉 채운 작품이다. 한동안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노트에 마인드맵 형식으로 내용을 촘촘히 정리해볼 정도였다. 웃긴 작품이지만 내적 논리는 치밀하다.

- 고백중은 약간의 슬랩스틱도 구사하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준비했나.

= 원작을 볼 때 네이버 웹툰 쿠키(유료 결제 코인)를 계속 조금씩 새로 구워가면서 무척 재밌게 봤다. 평소에 작품의 원작을 살필 일이 있으면 그것을 반드시 그대로 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운 편인데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이토록 작지만 단단한 세계를, 마성의 새로움을 어느 정도는 정확히 구현해야겠더라. 의도적으로 백중의 몇몇 포즈는 웹툰에 그려진 모습을 오마주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저혈당으로 쓰러져 있을 때의 모습 같은 건 만화의 컷을 그대로 가져오는 식으로 해봤다. 그래서 안무까진 아니어도 캐릭터를 좀더 잘 표현해줄 재밌는 동작을 안무가 아이키에게 요청한 것이다.

- 안재홍이 아이키와의 수업에서 배운 것은.

= 자신감? (웃음) 간단한 동작부터 재미있는 동작까지 디테일하게 봐가면서 계속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곤 했다. 처음 백중의 등장 장면을 찍을 때도 현장에 아이키 선생님이 와서 카메라 뒤편에서 계속 잘한다, 잘한다 격려해줬다.

- <멜로가 체질>에 이어 이번에도 기타를 든다.

= <멜로가 체질> 이후에 기타 학원을 다니다가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조금 손을 놓고 있었는데 <닭강정> 작업을 통해서 이병헌 감독님이 다시 기타를 손에 쥐어주셨으니 이제 또 꾸준히 해보고 싶다. 공개일인 3월15일에는 음원도 나온다.

- 만화보다 더 만화적인 콩트 구간, 연기 스타일이 눈에 띈다. 비교하자면 <LTNS>의 사무엘도 일면 웃긴 캐릭터지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 이게 참 상대적인데, <닭강정>을 할 땐 ‘자연스럽다’는 가치를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흔히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말하고, 나 역시 대체로 동의하지만, <닭강정>은 일상의 레벨보다 몇 단계는 더 위로 띄운 톤이 이 세계의 실제였다. 기술적으로는 이른바 ‘쪼’가 요구된다. 역시 보통은 쪼를 빼야 한다고 하고 시나리오에 쓰인 문장을 배우의 입에 맞게 바꾸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번엔 모두 반대였다. 우리만의 쪼가 곧 시청자들을 이 세계로 유인하는 손짓이었다.

- 중요한 지적이다. 주춤거리지 않는 기세가 필요한 작업이었을 듯싶다.

= 만약에 배우 자신이 조금이라도 혼란을 느껴버리면 목표한 효과를 낼 수 없게 된다. 모호함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있다면, <닭강정>은 아주 분명하고 선명한 세계인 거다. B급도 아니고 D급을 위한 시도를 중간에 힘 빠지지 않고 끝까지, 단단하게 밀어붙이는 게 목표였다. 제작 초기에 영화사 사무실에 모여서 간단히 리딩을 한 적 있었는데 (류)승룡 선배와 아직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서로가 연구해서 마음에 품고 온 것들이 그 자리에서 착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신이 술술 넘어갔고 그런 경우는 드물어서 짜릿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경험 덕분에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 그래서일까, 제작보고회에서 류승룡과의 연기를 탁구에 비유했다.

= 가장 빠르게 오고 가는 구기 종목이 탁구가 아닌가 싶어서. <닭강정>은 서로가 모은 에너지를 치고받는 아주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꾸려졌다. 약속된 동작을 하다가도 그 안에서 약간 새로운 액팅을 했을 때 선배님이 그걸 알아차리고 받아서 또 다른 액팅을 보여준다. 장면의 큰 그림은 여전히 같지만 그 안에 싹튼 생동감은 매번 달라진다.

- 배우가 느끼는 그런 차이가 화면의 결과물로도 연결된다고 보나.

=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그 차이가 항상 배우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 일상에서 친한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대화할 때 어떤 순간에 아주 별것 아닌 것으로 유쾌함이 피어오르지 않나.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와서 못 참겠는 그런 기류는 자연발생하는 것에 가깝다. 다만 배우는 그것을 어떻게든 자아내보려고 하는 사람들, 자연발생의 순간에 다가가려는 사람들 같다.

- 건국대 영화과 출신으로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작업하면서 앞서 말한 자연스러운 연기, 땅에 붙은 일상적 연기 스타일을 보여준 적이 많았다. 어쩌면 <닭강정>처럼 양식화된 연기를 할 시도가 희소했으니 더 신나게 놀 수 있는 기회이지 않았을까.

= 그래서 즐겁기도 했지만 더 엄격해지고 싶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우와! 하고 들떠버리는 순간 작품이 저기 우주까지 날아갈 것 같아서. 첫 촬영날에 약간 위협을 느꼈다. (웃음) 닭강정 탈을 쓴 민아 옆에 앉아서 내가 정성스럽게 물엿을 발라주는 장면이었다. 인간 닭강정을 향해 “벌레 꼬이는 거 계속 신경 쓰였어요. 받기만 해 줘요. 나한테 정말 기쁜 일이니까” 뭐 이런 식의 대사를 치는 신이었는데 아무래도 첫 촬영이어서 그랬는지 ‘내가 지금 뭘 찍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대본을 붙들었던 감독님조차 막상 눈앞에 구현된 풍경을 보면서 약간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마음을 아주 굳건히 먹어야 했다. (웃음)

- 안재홍에게 <닭강정>은 <응답하라 1988> 시리즈부터 이어지는 순정남 계보의 일환이기도 하다. <마스크걸>의 주오남을 연기할 때도 그의 감정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려 노력했다는 말을 했었고, <LTNS>에서 부부가 서로 바람을 피울 때도 이솜 배우가 연기한 그것이 잠깐의 육욕처럼 비친다면, 안재홍의 감정은 순정처럼 묘사된다.

= 이 엉뚱하고 황당한 시간 속에서도 이 사람의 뜨거움만큼은 가져가자는 것이 <닭강정> 작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우선은 감독님들이 나를 그렇게 해석해주시는 게 고맙고, 나 또한 인물이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동력으로 삼고 있어야 힘이 생긴다고 믿는 편이다.

- 요즘 한마디로 전성기다. 짐작건대 지금의 젊은 남자배우 지망생들에겐 배우 안재홍이 중요한 레퍼런스가 아닐까. 주연급 남성배우의 미덕이 반드시 누아르나 스릴러에서 말초적인 남성성을 보여주는 데만 있지 않다는 사실, 혹은 꼭 로맨스의 왕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니까. 달리 말하면 안재홍이 막 배우가 되려할 땐 더 막막함을 느꼈으리란 생각도 든다.

= <족구왕> VIP 시사회가 끝나고 윤성호 감독님이 추천 멘트를 남겨주셨는데 그때 그가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한다. 안재홍이란 배우가 앞으로 잘돼 한국영화의 새로운 캐릭터 폭을 넓혀주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였다. <족구왕> 시절의 내게는 그 코멘트가 엄청난 격려이고 위로였다. 배우 혼자 마음먹는다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와 캐릭터를 바라보는 감독님들의 관점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일수록 내게 들어온 요구들을 정말로 잘해내고 싶다. 요즘의 마음은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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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