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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삼체’ 쇼러너 데이비드, 베니오프 D. B. 와이스, 알렉산더 우, 과학적 표현을 더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박수용 2024-03-21

과학이 붕괴됐다. 전세계의 입자가속기가 해석 불가능한 결과를 토해내고, 밤하늘은 전구처럼 깜빡이며, 저명한 과학자들이 하나둘씩 사망한다. 혼란에 빠진 다섯 과학자에게 던져진 것은 다름 아닌 게임용 헤드셋. 현존하는 기술 이상으로 생생한 가상현실 속 우주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사이 현실 세계의 우주도 그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베스트셀러 SF 소설 <삼체> 3부작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는 원작의 대담한 스케일과 정교한 상상력을 능히 감당해낸다. 정서적 극단을 오가는 과감한 연출과 적절한 VFX가 조성하는 서스펜스 가운데 마음이 머무르는 곳은 과학과 논리로 파해할 수 없는 시험에 든 과학자들의 연대다. <왕좌의 게임>의 공동 프로듀서였던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 B. 와이스, <트루 블러드>를 제작한 알렉산더 우 등 <삼체>를 창조한 3인의 쇼러너와 함께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운 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D. B. 와이스, 알렉산더 우, 데이비드 베니오프(왼쪽부터).

- 원작 소설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D. B. 와이스 문자 그대로 “와우”였다. 그간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들이 머물렀던 관습적 영역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완전히 독창적인 세계를 탐구한다.

데이비드 베니오프 이런 대규모 연작소설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삼체> 3부작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매력을 더해갔다.

알렉산더 우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다 보니 해를 더해갈수록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책을 만나는 경험이 귀해진다. <삼체> 3부작은 모처럼 깊은 충격과 영감을 안긴 책이다.

- 이야기의 공간, 인물의 국적과 배경, 서술 순서 등 적극적인 각색이 눈에 띈다. 방대하고 치밀한 원작을 각색하며 고려한 점은 무엇인가.

D. B. 와이스 비선형 서사구조는 원작의 큰 매력 중 하나지만 그로 인해 사건이 다소 산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아쉬움이 있다. 일례로 원작 1부에 등장하는 인물과 3부에 등장하는 인물은 같은 시간대에 살며 같은 목표를 공유하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각개전투한다. 이들에게 접점을 마련해주고 충분히 교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각색의 기본 원칙이었다.

데이비드 베니오프 판권 확보 당시부터 영어로 된 시리즈 제작이 전제 조건이었다. 더 다양한 시청자층에 다가가는 게 목표였다. <삼체>는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주의 비밀과 인간 문명간의 첫 접점을 담당하는 인물들이 전 지구를 대표하는 다양성을 가졌으면 했다.

- 주인공 다섯명의 모임인 ‘옥스퍼드 파이브’는 하나의 작은 과학계와도 같다. 논리적으로 현상을 규명하려는 이들의 대화 속에는 과학자 사회 특유의 문화와 소통 방식이 엿보인다.

알렉산더 우 자문을 담당한 과학자 중에는 저명한 입자물리학자이자 <왕좌의 게임> 촬영감독의 아들인 매튜 켄지, 미국항공우주국의 로켓공학자 보백 페르도시 등이 있었다. 물론 과학적 검증에도 이들의 조언이 주효했지만 등장인물들이 계속 과학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입체적인 인물을 설계하는 과정에 비하면 과학적 사실을 정확히 서술하는 건 차라리 쉬운 일이다. 흥미롭고 역동적인 과학자 커뮤니티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 실제 과학자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관찰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 고차원의 묘사, 이상기후, 미립자 반응 등 여러 과학적 요소의 시각화가 무척 독창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디자인되었다. 쉽고 친절한 표현과 과학적 엄밀성 사이의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데이비드 베니오프 자문 담당 과학자와 대화하며 미립자의 세계는 애초에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구현을 위해 적절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과학적 표현에 있어 우리의 목적은 시청자들이 더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묘사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VFX팀의 공이 컸다.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건 쉽지만 그들에게는 무척 소모적인 작업이다.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최선의 결과물을 구현하려 했다.

- 인물들이 던지는 냉소적인 영국식 유머의 타율이 높다. 주인공 윌(알렉스 샤프)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영국의 우중충한 해변에 대해 농담하고, 형사 다 시(베네딕트 웡)는 고향 맨체스터에 대한 선입견을 긍정하며 자조한다.

D. B. 와이스 영국에서 함께한 제작자들은 모두 열정적이고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이며 무엇보다 유쾌하다. 사실 그들의 유머 코드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확실히 데드팬(표정이나 동작의 변화 없이 유머를 제시하는 코미디 장르)의 요소가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극도로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천연덕스레 농담을 던지며 극복하려는 자세가 영국 문화의 미덕이라 생각한다. <삼체>도 다소 무거운 작품이기에 등장인물과 시청자에게 조금이나마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 쇼러너 세명의 조합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특히 알렉산더와 둘의 협업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다. 오래 함께 일한 제작진과는 다른 영감과 즐거움을 주었을 것 같다.

데이비드 베니오프 점심 메뉴에 있어서는 모두 진심이었다. 그 점이 좋았고. (웃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가까이 화상 회의를 통해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우리 모두 각자 집필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 오히려 잘 맞았다. 작품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과 인물 구성을 우선시한 후에 플롯을 구체화하는 작업 방식 또한 동일했다. 댄(D. B. 와이스)과 나는 27년 동안 함께해왔으니 새로운 제작자의 에너지를 청하기에 적절한 시점이었다.

D. B. 와이스 29년이다. 세월이 무섭네. (웃음)

알렉산더 우 그동안 팀에서 가장 어렸는데 여기서는 제일 연장자여서 신선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이 있지만 스토리텔링에 대해 비슷한 철학을 공유한다. 모두 하위권 축구팀을 응원한다는 공통점도 있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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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