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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과학자들의 인간 군상극으로, <삼체> 리뷰 - 원작과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박수용 2024-04-05

사실 <삼체>의 대결 구도는 다소 간접적이다. 지구로 날아오고 있다는 외계 생명체는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끝까지 등장하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논리적인 미립자 반응, 깜빡이는 밤하늘, 신묘한 VR 헤드셋. 미지의 적 대신 등장인물들이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사태는 ‘고장난 과학’이다. 이처럼 <삼체>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과학의 작동 방식, 그리고 과학을 고치는 과학자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같은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동기 ‘옥스퍼드 파이브’는 원작 소설의 인물인 왕먀오, 뤄지, 윈톈밍 등의 직업과 행적을 계승한다. 다만 인물들이 각기 전투하는 원작과 달리 <삼체>는 원작의 꼬인 서사 가닥들을 가다듬어 이들을 한데 모은다. 코스믹 호러(우주적 공포)에 가까운 원작의 한기를 현대 군상극을 펼치는 과학자들의 열기가 대신한다. 그렇게 <삼체>는 하드 SF의 필요조건인 정교한 지적 질료를 다소간 희생하는 대신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과학을 살필 우회적 조건을 갖춘다.

인물의 선택을 추동하는 것은 이해를 향한 단순한 욕망이 아닌 ‘어떻게’ 알고자 하는지에 관련한 방법론적 특성이다. 과학적 방법론은 거칠게 말해 가설을 세운 후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이다. 이때 검증 불가능성에 대처하는 과학자들의 방식을 눈여겨볼 만하다. 가설을 제시하는 이론물리학자인 진(제스 홍)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반면 실험물리학자인 사울(조반 아데포)은 물증이 없는 세계에서 헤맨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삶의 큰 방향성을 다잡지 못하는 성격과 닮아 있다. 공학자 오기(에이사 곤살레스)에게는 응용 또한 앎의 방법 중 하나다. 때문에 그녀를 멈춰 세우는 것은 과학적 비정합성보다는 카운트다운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이나 윤리적 딜레마 같은 현실의 요인이다. 지식 확장의 최전선에서 물러나 현재의 지식을 미래에 전달하는 직업인 물리교사 윌(알렉스 샤프)은 후반부에서도 현대 과학지식의 총람이자 백업본으로 작동한다. <삼체>는 이들 사이에 놓인 이야기의 무게추를 유연하게 조절하며 과학자의 다양한 행동 양식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삼체>에서는 과학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들조차 자연히 과학한다. 증거를 수집하고 짜맞춰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다 시(베네딕트 웡)의 방식은 실험에 기반한 추론을, 직관과 추진력이 강점인 토머스(리엄 커닝엄)는 이론물리학의 과감한 모델화를 닮았다. 무엇보다 5화의 충격적인 시퀀스는 사건의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실험처럼 보인다. 이처럼 비과학계의 인물들은 역설적으로 앎 자체에 천착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으로 기능한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삼체>가 들여다보는 대상은 과학과 탐구라는 인간적인 행위 그 자체다. 과학자들의 문화를 담은 웰메이드 직업극이자, 이공계 전체를 하나의 사회망으로 인식하는 과학기술사회학적 접근이 담긴 반가운 SF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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