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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이상 기류, 고개 숙인 투자자들
2002-07-23

수익률 하락으로 하반기 한국영화 투자위축 조짐, 철저한 제작관리 시스템 시급요즘 한국영화 투자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은 발언을 듣게 된다. “당분간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는 위축될 것이며, 최소한 이전보다는 보수화, 안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건 얼핏 납득이 되지 않는다. 통계에서 보이는 수치는 한국영화의 활황세를 보여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46.1%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의 38.3%와 비교할 때 크게 상승한 수치. 상반기 한국영화에 몰린 808만명의 관객 수(서울 기준)는 지난해 동기의 571만여명에 비해 41.5% 늘었다. 제작편수도 지난해 상반기 24편이던 게 올 상반기에는 38편을 기록하는 등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고의 호시절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투자 대비 수익 하향곡선투자자들이 꼽는 첫째 투자위축 요인은 올 상반기를 비롯해 최근 한국영화의 수익률이 겉보기와는 달리 그리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반기에 개봉한 장편영화 38편 중 국내 극장수익만으로 일정 규모의 흑자를 기록한 작품은 <집으로…> <공공의 적> <결혼은, 미친 짓이다> <나쁜 남자> 정도다. 손익분기점을 약간 넘거나 그것에 접근한 기록을 낸 작품도 <해적, 디스코왕 되다> <정글쥬스> <울랄라 씨스터즈> <재밌는 영화> 등으로, 결국 30편에 가까운 작품이 적지 않은 적자를 냈다는 얘기. 특히 흥행상위에 오른 10편이 동원한 관객 수는 613만여명으로 전체 한국영화 관객 808만여명 중 75.8%를 차지했다. 25% 남짓한 수익을 놓고 28편의 영화가 경쟁을 벌였다는 얘기. 여기에 최근 개봉한 <예스터데이>와 <아 유 레디?>가 참패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고,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던 <챔피언>마저 애초 예상에 못 미치는 수익을 기록했다는 점도 최근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사실 이같은 수익률 저하는 이미 지난해 후반기부터 지적돼왔던 문제다. 특히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20억원 이상으로 정착됐고, 제작비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마케팅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보니 투자 대비 수익은 점차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 게다가 40억∼5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이 흥행에서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던 탓에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져왔다. 한국영화 전체의 투자자금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영화계 주변에 모여 있는 자금은 대략 3천억원에서 3500억원 정도. 여기서 창투사 등이 결성한 영상펀드는 2천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중 올해 한국영화에 투자될 자금은 대략 2100억원(한 영화의 총제작비를 평균 35억원으로 잡고 1년에 60편 정도가 제작된다고 추정한 결과)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추정되는 수익은 투자금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올해 영화관을 찾는 총관객 수를 1억명, 한국영화 점유율이 50% 된다고 전제하고 관객 1명당 수익을 3천원이라고 다소 넉넉하게 잡더라도 한국영화의 극장 수익금은 1500억원이고, 여기에 해외판매와 TV판권액을 300억∼400억원이라고 해도 한국영화 전체가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1800억∼19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한해 200억∼300억원 정도의 투자금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한국영화 투자의 젖줄 역할을 해온 창투사들의 자금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또 하나의 투자위축 요인이다. 지난해부터 코스닥 등록 심사가 강화된 데 따라 정보통신업체의 상장이 예전보다 어려워졌고, 이러한 투자수익을 바탕으로 펼쳐지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투자 역시 소극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 우후죽순처럼 설립돼온 영상펀드가 올해 상반기에는 MVP창투엔터테인먼트 펀드 등 3개에 불과한 것도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다. 극장부율 문제도 다시 수면위로하지만 현재의 어려움은 투자자들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코리아픽처스의 김장욱 팀장은 “지난해부터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그 이전보다 철저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KTB엔터테인먼트의 권재륜 대표도 “한국영화끼리의 경쟁이 너무 심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철저한 준비없이 들어간 프로젝트에 투자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투자자들은 한국 영화산업의 시스템도 투자에 대한 메리트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CJ엔터테인먼트 최평호 상무는 “제작사는 1천개가 넘는데, 그중 망했다는 데는 찾기 힘들다. 손실이 나면 투자사가 모두 책임지고, 수익이 나면 제작사와 분배하는 구조이다보니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하반기 이후 투자, 배급사들의 투자전략은 변화의 기류를 탈 전망이다. 시네마서비스는 그동안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되 제작비의 거품을 잡기 위해 좀더 철저한 제작관리에 힘을 기울일 계획이며, CJ엔터테인먼트 역시 내년 개봉예정작 12∼15편에 투자한다는 원칙 아래서 시나리오 개발, 제작비 관리, 제작기일 관리 등에 고삐를 조일 예정이다. 코리아픽처스, KTB 등 또한 이전보다 축소된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반면 좀처럼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영상펀드들의 한국영화 투자는 더욱 소극적인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일부 제작사들은 제작비 규모를 줄이고, 투자처를 다각화하기 위해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처지. 이에 따라 흥행 가능성이 있는 영화에는 투자가 몰리지만, 흥행성을 장담하기 힘든 작품에는 전보다 훨씬 소극적인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김장욱 팀장은 “시나리오가 아주 뛰어나거나 감독의 지명도가 높거나 A급스타 배우가 기용된 영화가 아니면 투자받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당분간 배우의 몸값은 더욱 뛰어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소수 스타에 의존한 흥행 영화만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투자효율을 높이기 위해 제작사, 극장과의 관계에서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 투자사는 수익이 났을 때 투자사가 60%, 제작사가 40%를 갖는 현재의 구조를 좀더 유연화할 방침이다. 즉, 투자부담이 있는 성격의 작품이나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의 경우, 수익배분율은 7:3 또는 8:2로 조정해 투자 위험을 극복하거나, 투자사들에게 직접 지분참여를 요구해 좀더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다른 배급사는 마케팅 비용을 투자가 아니라 대여 형식으로 제공해, 투자효율을 높이고 수익금 정산 때 일어나는 시비를 없애려 하고 있다. 또 한국영화의 극장부율을 현재의 5:5에서 외화 수준인 6:4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도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 시스템을 위한 구조조정하지만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이러한 투자위축이라는 상황을 이제 막 본 궤도에 오른 한국영화의 기세를 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구조조정’으로 보고 있다. 최평호 상무는 “그동안 시나리오 개발이 100%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에 들어가면서 제작비와 제작기간이 동시에 크게 올라갔는데, 이제는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프리프로덕션을 강화할 것이므로 완성도는 높아지고 제작비는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이 궁극적으로 제작사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시네마서비스의 유석동 이사는 “제작사에 일방적으로 가혹한 조건으로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금조달력은 떨어지지만 창의성과 능력은 뛰어난 제작사가 커나가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성공의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투자위축이 장기적인 게 아니라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대다수 투자자들의 견해도 한국영화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아이픽처스의 최재원 대표는 “수익률이 낮더라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대박의 기회가 있고, 회전율이 빠르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투자자들이 들어올 것”이라면서 “자금은 있지만 투자처와 연결되지 않아 부유하고 있는 다수 영상펀드를 네트워크화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실장도 “영화산업은 결국 관심산업이기 때문에 지금의 투자자가 빠져나가더라도 새로운 투자자들이 꾸준히 들어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현재의 투자환경 변화는 한국영화가 산업화로 전진하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진정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가 되기 위해서는 투자-제작-배급-마케팅-매니지먼트 등 각 부문이 힘의 논리가 아닌, 합리적 논의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문석 ssoony@hani.co.kr▶ 최평호 CJ엔터테인먼트 상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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