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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에서 여인으로, <비밀> 배우 히로스에 료코

죽은 엄마의 영혼이 딸에게 깃든 ‘빙의’를 다룬 영화, <비밀> 속의 모나미는 어떻게 보면 완벽한 여자다. 20대의 딸이 가질 수 있는 젊은 에너지와 싱싱한 육체, 그리고 40대의 엄마가 가질 수 있는 현명함과 자애로움을 동시에 가진 여자가 어디 그리 흔하랴.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 히로스에 료코는 빙의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거치지 않고도 그 모든 장점들이 속속 배어들어가 있는 소녀다.

말간 얼굴에 풍부한 감정을 전하는 눈. 쓸쓸한 아버지를 위해 한겨울 눈처럼 반갑게 찾아왔던 <철도원>의 속깊은 딸 유키코만 떠올려본다 해도 <비밀>의 그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80년 7월18일 요코하마, 겨우 2Kg밖에 안 되는 미숙아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히로스에 료코는 아빠를 향해 늘 “TV에 나오고 싶어”를 외쳤다. 그렇게 14살 되던 1994년, ‘P&G 뉴페이스 콘테스트’에 입상하면서 어릴 적 꿈을 향해 첫발을 들여놓았고 이듬해에는 TV드라마 <하트에S’>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TV드라마 <비치보이즈> <립스틱>을 거쳐 97년 첫 주연 영화 로 일본 아카데미상과 요코하마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보였던 그는 99년 <철도원>과 <비밀>을 동시에 내놓으며 아이돌 스타에서 벗어나 한명의 든든한 배우로서의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늘 히로스에에게 따라붙었던 ‘예쁜 모범생 같은…’이란 수식어를 떼어버리게 한 건 바로 프랑스영화 <와사비>였다. 12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뤽 베송 감독의 제의로 장 르노와 출연하게 된 이 영화에서 그는 염색한 머리를 하고 내털리 포트먼을 연상시키는 강하고 자유분방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고정된 틀을 스스로 깨어나갔다.

최근엔 <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 <고>의 유키사다 이사오, 시노하라 데쓰오 등 일본영화를 선도해나가는 감독 7인이 만든 7편의 단편 <잼 필름즈>(이 영화는 올해 부산영화제에 선보일 예정이다) 중 1편인 이와이 순지의 에 출연했는데 “원래 이와이 순지의 대단한 팬”임을 밝힌 히로스에는 감독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모놀로그로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여자아이 역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또한 한국에서 활동 중인 SMAP의 멤버 초난강이 한국, 일본 남자를 1인2역으로 출연했던 <후지TV> 특별드라마 <사랑해요 사랑의 극장, 사랑의 노래>에서 그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귀는 여자 역을 소화해내기 위해 테이프를 외워가며 한국어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와세다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재원이며, 대부분의 일본 아이돌 스타가 그러하듯, 97년의 첫 앨범 <아리가토!> 이후 7장의 싱글과 7장의 정규앨범을 내놓을 만큼 가수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고 수영, 육상, 허들 등 스포츠에도 아마추어 이상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히로스에 료코. 혹시 이 소녀의 내부에도 재주많은 여러 영혼들이 동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비밀은 그만이 알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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