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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영화가 좋다
2001-04-17

<친구> 사운드 디자인, 믹싱 최태영

1971년생·LA 레코딩 워크숍 졸업·UCLA 뮤직 비즈니스 레코딩, 엔지니어링 수학·<비트>(아태영화제 사운드이펙트상) <반칙왕>(한국영화축제

최우수녹음상) <오! 수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눈물>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

<파이란> 등 녹음. 라이브 톤 소속. 영상원 전문사 믹싱 강의

뻥튀기 영화가 좋다.

소위 리얼리티 영화는 할 일이 없다. 어떤 감독의 경우는 배경음에 애들 노는 소리를 넣어놨더니 현장음이 아니라며 빼달라고 했다. 애들 노는

소리가 리얼리티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리얼리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태영씨가 생각하는 리얼리티란 현실적 음이 한번

더 ‘리얼하게’ 가공될 때 생긴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더라. 가죽점퍼가 내는 소리가 졸라봤자 때만 나올 헤드락보다 더 리얼하고, 휴지에

물을 묻혀서 짜는 소리가 피를 흘리는 소리보다 더 리얼하다. 만들어진 소리는 믿음을 강화한다.

감정선을 조절하는 것은 음악이다. 눈물이

나올려고 할 때, 문득 정신을 차려 귀기울여보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극도로 절제된 그 순간에는 효과음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럴수록 음악이 조율하는 감정을 제 방향으로 가도록 한다. <친구>에서 동수가 칼을 열몇번 ‘먹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클래식이다. 비극적 죽음에 걸맞게 음악 또한 장중하다. 그런데 감독이 칼소리를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단서를 붙여서.

그는 일반 칼을 시멘트에 갈아서 낸 소리(이것이 뼈에 칼이 닿는 소리 대신이다)에 서브 우퍼에서 소리가 나도록 저음을 보강해 유한 느낌이 나도록

했다. 칼이 몸을 파고드는 소리는 클래식이 자아내는 비극적인 정조에 소스라치는 잔인함이 끼어들게 한다. 진짜 소리가 아니라 여러 가지로 고심한

소리가 영화의 감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역시 짜가가 한건했다.

<깊은 슬픔>으로 돌비디지털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할 때 미국에서 기술자가 왔다. 그는 미리 작업해놓은 소리를 보고 얼마 동안 작업했냐고 물었다. 2주간했다고 했더니,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6개월 동안 하라면 우리는 못한다”고 최태영씨는 농담을 하지만 벼락치기 일정은 불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못박은 개봉 날짜에

맞춰 후반작업 일정이 짜인다. 일단 기간이 지나면 미흡하다고 하더라도 “수고하셨습니다” 하고는 들고 가버린다. 할리우드 기술자도 놀라고 간

신속한 손놀림도 ‘딱 한달’은 필요하다고 한다. 덧붙이는 그의 바람. 소리를 감안한 그림을 찍어라. 할리우드영화의 경우에는 비행기가 지나가면

소리의 물결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런 소리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연결되지 않으면 난데없다. 그 전에 비행기가

등장하는 짧은 단독 신이 있다. 소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콘티를 짤 때 미리 고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그림 위주로만 콘티를

짜고 그렇게 찍어오기 때문에, 소리가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그림에 어울리는 소리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소름>의 예고편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6.1채널로 녹음을 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부터 사용한 6.1채널은 우리나라에서 지금 상용되는 5.1채널에 백서라운드를

하나 더 첨가한 것이다. 그는 보물섬이라는 팀 활동을 했다. 세명이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었는데 그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미디연주와 편곡 등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음반 제작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 미국으로 갔고 과거와 그 당시의 인연이 공작해서 현재의 그를 만들어냈다. 노래방 가면 그가

소리에 입문했을 당시의 노래를 선곡할 수 있다. 제목은 “꿈의 세계로”.

글 구둘래/ 객원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