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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전쟁영화의 설계사
2001-04-25

심산의 충무로작가열전 16 한우정(1930∼ )

탁월한 개인 혹은 한명의 영웅이 등장하여 전세를 뒤엎는 전쟁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인다. 그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희화화되어 한낱 만화에 불과한 허섭쓰레기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베트남전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람보> 시리즈가 꼭 그렇다. 리얼한 전쟁영화란 잔혹한 증언이다. 거기에는 전쟁의 참상과 광기 그리고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맥하게 스러져간 숱한 인간군상들의 가슴 치는 아우성이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반부가 그렇고,

인천상륙작전 및 중공군과의 교전을 다룬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그렇다. 이만희 감독의 이 걸작 스펙터클을 비디오를 통해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완성된 지 30년 가까이나 되는데도 최근까지 이 작품의 리메이크를 꿈꾸는 내 또래의 젊은 감독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한국 전쟁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칭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한우정은 돌아온 해병이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서울사범대학 재학중 한국전쟁을 맞아 해병대에 입대한 참전용사이자 이후 1963년까지

해병대의 정훈장교로 복무한 직업군인 출신이다. 그는 5·16쿠데타 이후 군관계 영화촬영 협조를 위해 정훈국에 드나들던 시나리오 작가 유한철과의

교분을 바탕으로 충무로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는데,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만희가 만든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고 대표작이다. 이 작품의 대대적인 흥행성공으로 한우정은 아예 군복을 벗고 충무로에 진입하여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한다. 이듬해 제작된

<협박자>는 북한군의 금괴를 훔쳐 월남하다가 친구의 배신으로 좌절한 인간의 복수극을 다뤘고, <추격자>는 좌파 친구의

모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난 다음 그 복수를 위해 9·28수복 즉시 북한까지 쫓아간다는 내용인데, 모두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상정될

수 없는 스토리라인으로 196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반공전쟁영화의 전형적인 플롯을 갖추고 있다.

반공전쟁영화의 전형이면서도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어이없는 경우를 당한 작품이 저 유명한 . 국군간호장교들을

호송하던 북한군 장교가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그들과 함께 남한에 귀순한다는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는데, 북한군 장교의 복장이 너무

근사하고 그 인품이 훌륭하게 묘사되었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걸려들었다. 이 작품은 결국 광신적인 매카시즘과 참혹한 여론재판 끝에 <돌아온

여군>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다. 이듬해 한우정-이만희 콤비는 인민군 동생이 반공유격대인 형의 설복으로 남한에 귀순한다는 내용의 <군번없는

용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결백(?)을 만천하에 증언한다. 선연한 흑백논리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냉전시대의 서글픈 풍경이다. <동대문시장

훈이엄마>는 줄곧 이들 콤비의 영화에서 촬영을 맡아 발군의 솜씨를 보여주었던 서정민이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 당시 사회문제화했던 전쟁미망인들을

다루고 있는데, 김지미의 훌륭한 연기에 힘입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포의 18일>은 1958년 2월에 발생한 KAL기 납북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적 터치의 반공영화다.

한우정은 영원한 해병이다. 다혈질의 호쾌한 성격인 데다가 두주불사로 알려진 그를 나는 지난해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강의하면서

먼 발치에서나마 몇번 뵐 기회가 있었다. 여전히 당당한 체격이었고 멋진 옷차림이었으며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한우정이 쓴 작품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시나리오인데 그의 마초적인 기질이 그대로 반영되어 전쟁물 아니면 액션물 내지 추리극이다. 70년대 이후 방송사로 옮겨가는 바람에

충무로에서의 작품활동이 뜸했던 그의 최신작은 역시 한국전쟁을 다룬 <해병묵시록>. 북한이 도모하던 세균전을 저지하기 위해 적진

깊숙이 침투된 남한 해병대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는 전형적인 반공전쟁영화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흥행에서는 참패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 한우정은

오래된 구호를 재확인시켰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심산|시나리오 작가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63년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

이만희의 <돌아보지 말라>

1964년

이만희의 <협박자>

이만희의 <추격자>

1965년

이만희의

1966년

서정민의 <동대문시장 훈이엄마>

이만희의 <군번없는 용사> ★

1967년

이만희의 <흙바람>

안영로의 <지명수배>

1968년

조해원의 <공포의 18일>

1969년

임원식의 <마인>

1995년

이병주의 <해병묵시록>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