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감사,변명
이다혜 2003-02-28

1. 1월 말에 <씨네21> 기자 공채공고를 냈고, 1600명가량이 지원을 했다. 서류전형, 필기시험, 1차 면접, 2차 면접을 거쳐 4명을 뽑았다.

아마도 지원한 사람들이 열배는 더했겠지만, 뽑는 사람 마음도 많이 불편했다. 몇장 안 되는 문서, 두어 시간의 필기시험, 10분 남짓한 면접으로 한 사람의 자질과 성품, 그리고 잠재력까지 알기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그렇게 한다. 선발과정을 훨씬 더 복잡하게 하더라도, 응시자의 불편만 늘어날 뿐 객관성이 썩 커지진 못할 것이라는 게 그나마 어쭙잖은 변명이 된다.

어설픈 방식이나마 우리의 선발과정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과 함께 깊은 송구스러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내 진가를 모르는군” 하고 웃어넘기시기를, 그리고 자기 안의 보석을 여전히 믿으시길….

2.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언론은 그걸 ‘인재’라고 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유용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유용함에 이르기 위해 너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예방될 재난보다, 여전히 예방되지 않고 있거나 혹은 예방이 불가능한 재난이 훨씬 더 많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버스나 택시를 탈 때 가끔, 운전기사가 혹시 미친 사람이어서 강물로 뛰어들면 어떡하나, 혹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뒷사람이 분노에 눈멀어 내 목을 칼로 쑤시지 않을까, 따위의 밑도 끝도 없는 짧은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지금껏 용케도 재난을 비켜가며 수십년 목숨을 부지했으나 그런 행운이 이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예감 같은 것. 어떤 사람들은 결국 그걸 피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 관한 어두운 소식을 들으며 며칠이 지나갔다.

우리는 취향이 명분만큼 존중되는 세상을 원했으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재난 앞에서 우리의 희망은 자꾸 초라해지거나 사치스러워진다. 차라리 ‘전쟁을 선동하는 미국’처럼 정체가 선명한 존재 앞에선 생각의 실마리라도 잡겠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광란과 무책의 재난 앞에선 그저 멍해진다. 우리는 끝내 취향을 지킬 수 있을까.

3.

우리는 여전히 사소하다. 이번호엔 <매트릭스> 속편에 대한 궁금증을 가능한 대로 풀었고, 우리를 감동케 한 영화 <디 아워스> <무간도>에 대한 세 사람의 에세이를 실었다. 그리고 배우라는 말 외엔 수식어가 필요없는 윤여정씨를 지면에 초대했으며 53회 베를린영화제 뒤안을 들춰보았다. 아마 이 모두는 사소할 것이다. 세상이 무서워도 사소한 취향의 끈을 놓지 마시기를, 적어도 이 사소한 수다들에 작은 위안이라도 얻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