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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2003-03-07

솔직히 말해 직업의식이 앞섰다.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거의 확정된 뒤에 그와의 전화통화를 시도한 건. 우리가 심심하면 전화해서 안부 묻고 종종 술마시는 친구 사이는 아니니, 소감과 구상을 들어서 지면에 당장 써먹겠다는 계산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여보세요, 이창동인데요….”

“…….”

무거운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을 때, 포기했다. 모든 인터뷰는 거짓말일 것이다. 하나를 말하기 위해, 다른 수십 가지 아니면 수백 가지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인터뷰어는 가장 적절한 하나를 포착하는 사람일 테지만, 어느 경우든 인터뷰이는 말해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버려야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이창동 감독은 그 괴로움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첫 목소리의 무거움에서, 그가 장관 자리를 완강하게 고사했을 때, 그리고 결국 그걸 받아들인 지금, 그의 머리 속에 오갔고 오가고 있을 수백 가지 생각들의 충돌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뒤의 대화는 “음… 저…”가 대부분인, 그나마도 짧은 안부통화가 되고 말았다.

<박하사탕> 개봉 무렵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잊지 못하겠다. 그 말은, 좋음을 세상과 자기 속에서 평생 찾아 헤매었으나 결국 실패한, 하지만 좋음을 향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할 사람의 탄식으로 들렸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신을 괴롭힐 테지만 그 덕에 우리는 그의 징그럽지만 외면하기 힘든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영화들이, 우린 나쁜 놈들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좋아질 수 있을까? 라고 집요하게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불편한 질문을 당분간 듣지 않아도 되니 편하긴 하겠지만, 허전하다. 허전한 게 훨씬 더 크다.

(환영사를 말할 수 없어, 대신 우리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어느 네티즌의 글 일부를 아래 옮겼다. 제목은 ‘문화관광부 장관은 변태’이며, 첫 인용문은 <한겨레>에 실렸던 기사로 <오아시스>를 찍고 나서 설경구가 이창동 감독에 대해 말한 것이다.)

설: 그 성격은 누구 줘도 안 가져갈 거다. 무지하게 약은 사람이다. 현장에서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미안해한다. 모든 책임을 자기가 다 지려 한다. 그러면서도 (찍고 싶은 장면을) 절대 포기 안 한다. (시나리오를 보면) ‘야비한’ 지문이 무지 많다. (종두 엄마 생일잔치 장면에서) “웃는데 우는 듯 재미있게 꺽꺽꺽 운다.” 대체 어떻게 연기하라는 얘긴가. 글로는 뭘 못 쓰겠어. (종두가 출소한 뒤 두부 먹을 때) 가게의 비닐이 펄럭이는 게 ‘감정이 없다’며 반을 잘라냈다. 비닐 펄럭이는 데 무슨 감정! 그래서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변태죠?” 그러자 이 감독의 대답. (종두의 말투로) “그래∼, 나 변태다∼.”

이창동 감독은 이런 사람이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권위적으로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 일을 해내야 한다고 믿을 때까지 세뇌(?)시키는 스타일이다. 참으로 걱정된다. 문화관광부의 관료들, 이제 어찌 견디나. 변태 장관 밑에서 말이다. 국민은 그저 오아시스 즐기듯이 즐길 수밖에….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