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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2
2003-03-22

정치는 거래라고 한다. 거래(去來)는 주고받기를 뜻한다. 그러니 최상의 정치라도 유리한 주고받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말은 맞을 것이다. 여기 훌륭한 사례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젯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 정상회담’을 했다. 노 대통령은 전화를 걸어온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공격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한편, 북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받았다.” “한 외교전문가는 ‘노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지지 발언은 어차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을, 나름대로 챙기며 내준 것’이라고 평가했다.”(<한겨레> 3월15일치)

신문을 뒤덮은 특검법이니, 검찰 개혁 방향이니 하는 문제는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거래는 알겠다. 이 거래는 이렇게 들린다. “우리 동네를 주름잡는 골목대장이 있다. 그가 어떤 이유로 화가 나 주먹을 휘두르려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일’이라고 말하는 대신, 그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걸 응원함으로써, 나를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영화와 아무 관련없는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이 지면에서 두달 반 전에 했던 말을 부인하기 위해서다. 정치는 거래이며 타협의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이 아니다. 개똥이다. 나도 개똥처럼 살았고, 정치도 개똥이므로, 탓할 일 없다. 서로 무관심하자. 그렇게 살았다. 그런 삶이 잘못됐음을 지금은 장관이 된 이창동 감독이 오래 전에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그리고 지난 석달을 보내며, 깨달았다. 원칙과 상식을 지킨 사람이 기적처럼 대통령이 됐고 광화문에선 촛불시위가 벌어졌으며 세계 곳곳에선 전쟁반대시위가 일어났다. 국적을 불문하고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세계인이 한목소리를 냈다. 전쟁을 몸으로 막겠다고 인간 방패들이 이라크에 날아갔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었고, 신경증적 개인의 시대가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지구촌의 슈퍼파워는 둘이다. 하나는 미국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여론이다”라는 외지의 기사를 보며 들떴다. 전자가 수직적 질서를 대변하는 개똥 중의 개똥이었고, 후자는 수평적 질서를 대변하는 새로운 힘, 희망의 증거였다. 그리고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이 땅의 새로운 힘이 후자의 힘과 어깨를 결었다. 그렇게 느꼈고 들떴다. 너무 들떠 참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게 이 지면에서도 그 희망을 떠들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거래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골목대장에게 두들겨 맞아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개똥이다. 9·11 테러로 피바다가 된 개똥왕국의 심장 뉴욕의 시의회조차 전쟁 반대 결의를 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거긴 신념의 표명으로 끝나지만,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다. 독일도 전쟁반대를 외치다 슬며시 미국의 영공 사용을 승인했다. 세상엔 정치적 미숙아들이 모르는 엄혹한 게임의 규칙이 있다… 그게 지혜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지혜에 이르는 길을 내 상식으로는 모르겠다. 다른 이를 때리는 걸 응원함으로써 내가 맞는 걸 피하는 건 나쁜 짓이며 추악한 거래다. 내가 기대고 있는 한겨레신문조차 그걸 개똥이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상식은 다시 쓰레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