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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선생님,어쩌다 개과천선 했게요?<선생 김봉두>

■ Story

촌지를 챙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초등학교 선생 김봉두(차승원)가 강원도 산골의 분교에 부임한다. 전교생이 달랑 5명에다 촌지와는 거리가 먼 이곳에서 우울증에 빠진 김봉두. 서울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학교가 폐교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학생들을 서울로 전학시키기 위해서 술수를 부린다. 그 와중에 도리어 선생과 학생,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해의 가교가 마련된다.

■ Review

<선생 김봉두>는 코미디를 주축으로 한 대중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제작진과 배우가 결합한 영화다. ‘촌지킬러 불량 티처 고군분투 오지 탈출기’라는 한줄짜리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명료한 컨셉을 바탕으로 한국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는 대중적인 코드를 찾아 배합해나가는 데 별다른 실수가 없다. 안전한 장르영화를 생산하는 능력이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유지시키는 핵심 요소라고 한다면, <선생 김봉두>는 본연의 임무 수행에서 합격점은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구축하는 데 뼈대가 되는 것은 두 가지의 선명한 이항대립이다. 타락한 교사와 교사를 타락시키는 현실이 그 첫 번째 요소겠다. 촌지 비즈니스에 날이 새고 해가 지는 밉상맞은 교사의 실상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는 반면, 선생 월급으로는 안정된 가정생활을 꾸리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양날 공격을 가하고 있다. 김봉두의 아버지가 오랜 병치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화 속에서 너무 빨리 드러나는 바람에 김이 좀 새기는 하지만, 어쨌든 타락한 주인공을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드는 공감의 장치는 마련되어 있고 후반부에 들어서면 김봉두의 어린 시절이 소개되면서 좀더 강화된다.

서울에서 폭탄주에 밤을 새웠던 봉두라지만, 지역주민들과의 첫 술자리에서는 "서울 사람이라 술에 약하구먼" 하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취해 나가떨어진다.

다른 한축은 서울과 강원도 산골이라는 공간 대립이다. 서울은 무엇이든 차고 넘치며 이해관계와 감정이 선명한 역동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 직원 조회에 지각한 김봉두가 교무실 문을 나서는 교사의 무리에 슬쩍 섞여 되돌아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허접한 삶을 묻혀두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 강원도 두메산골 사람들은 뚱 하다 싶을 만치 감정표현이 적고 불친절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덜 발달되어 있을 뿐, 타인을 말없이 배려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방비에 가까울 정도로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춘식(성지루)과 최 노인(변희봉)이 이런 성격을 잘 대변하는데 스스로가 ‘강원도 산골아이’였다는 장규성 감독 덕분에 빚어진 캐릭터인 것 같다.

강원도에 대한 이런 규정은 사실 <선생 김봉두>에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사람 전체가 강원도를 소비하는 방식에 가깝다. 자연이 수려하고 민심이 순박한 고장이라는 규정 덕분에 오늘날 강원도는 관광과 휴식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며, 영악한 도시 사람들은 그곳에 다녀오면 심신이 정화될 거라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강원도를 열광적으로 순례하는 것은 아닐지.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과 늦깍이 할아버지 제자가 봉두를 우러르는 눈길은 결국 봉두 마음속 무엇인가를 쥐어흔든다. 그렇게 <선생김봉두>는 "웃다가 웃으면 이상한 데 털난다"는 봉두의 말에 관객까지 뜨끔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도 ‘불량 티처’ ‘휴money스트’ 김봉두는 강원도 덕분에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거듭난다. 고향과 시골에 대한 감독의 애틋한 추억과 애정이 도시인들을 위한 상업영화에 질좋은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아이러니는 ‘강원도의 힘’을 시니컬하게 돌아보았던 영화를 제외하고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다. 시사회 직후에 어떤 관객이 “<선생 김봉두>가 <집으로…>만큼이나 감동적”이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게 된다.

어쨌거나 이런 코드는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특히 ‘소석이의 3만원’은 철심장이라도 흔들리게 만들 만큼 기습적이다. 개인적으로 상상한 또 하나의 감동 요소는 20년간이나 산내분교에서 근무하다가 심장병이 도지고 나서야 떠났다는 전임 교사다. 그는 영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지만, 그 선생님 또한 김봉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여곡절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런 회심 덕분에 두메산골의 작은 학교에 청춘을 묻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봉두와 아이들의 물놀이 장면은 때를 놓친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시나리오상의 계절과 제작 시기의 불일치는 촬영감독에게 고통스런 숙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선생 김봉두>는 배우 의존도가 무척 높은 영화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차승원의 연기가 “경이롭다”는 의견이 벌써 올라와 있는데, 그가 캐릭터드라마 한편을 무리없이 끌어가는 배우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웃음을 끌어내는 박자 감각이 몇 군데에서 빛을 발하지만,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제일 돋보이는 순간은 코믹한 우울증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일급 모델로부터 출발해서 장르를 건너뛰어 다시 한번 배우의 일급으로, 두번에 걸쳐 생의 도약을 이룩하는 인간을 만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다만 배우의 감정을 짜내는 것에 비례하는 시나리오상의 디테일 혹은 컷과 숏의 이야기 능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아역배우 5명 중에서 소석이를 제외한 4명의 아이들에게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영화 전체의 감동을 인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수준의 위험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소희 cwgo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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