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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國 시민을 위한 유쾌한 잔치, <오! 해피데이>
박은영 2003-04-16

■ Story

결혼식장에서 태어난 공희지(장나라)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필생의 목표다. 단짝 친구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문제 삼으며 모욕을 준 리조트 클럽에 항의하러 간 공희지는 하필 그곳 팀장 김현준(박정철)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공희지는 그 김현준을 ‘내 남자’로 만들기로 한다. 김현준의 집에 잠입해 다이어리를 훔쳐낸 공희지는 그의 스케줄에 따라붙는가 하면,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안티 전략으로 자기 존재를 각인시킨다. 김현준이 공희지의 의도적인 접근을 알아차리고 막강한 약혼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공희지의 작전은 위기를 맞는다.

■ Review

로맨틱코미디는 과연 진화할 수 있을까. 아니, 뭔가 ‘다른’ 로맨틱코미디를 만나는 일은 가능한 걸까. 신예 윤학열 감독은 ‘그렇다’고 말한다.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가 배제하던 가족의 존재감을 드러내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오! 해피데이>의 출발점이자 변별점이다. <오! 해피데이>는 그러니까, 로맨틱코미디계의 <가문의 영광>인 셈이다.

가족을 전면에 드러낸 <오! 해피데이>는 서민 대표 공희지와 상류층 대표 김현준의 대결구도로 진행된다. ‘봉천여상’ 출신의 공희지는 무명의 성우다. 미용사 어머니는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퇴직하기 전에 딸을 시집보내야 축의금이 많이 모인다고 주장하는데, 그 속물근성이 밉지 않다. 간지러운 말보다는 헤드락이나 엎어치기로 애정을 표현하는 과격한 집안이지만, 유대는 끈끈해 보인다.

반면 해외 유학파로 다국적 회사의 최연소 팀장이 된 김현준은 못하는 게 없고 안 가진 게 없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형이다. 그런 김현준이 공희지 일당에 함락당한다면, 그건 “사람 냄새”에 취해서일 것이다.

요컨대 <오! 해피데이>는 계급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다. 비현실적이라고? 물론이다. 로맨틱코미디는 어느 정도 판타지에 기대게 마련이니까. 온 가족이 합심해 공희지 신데렐라 만들기 작전을 펼치는 것을 두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힘들다. 적어도 로맨틱코미디 안에서 사랑이나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여성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오! 해피데이>는 노골적으로 ‘비현실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아드레날린 과잉으로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되고 익살스런 효과 음향을 타고 흘러가면서, 흡사 명랑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특히 장나라의 연기는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 엔딩을 취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건 꿈이야, 기분 좋은 꿈이지. 유쾌하고 떠들썩한 잔치에 어울리는 피날레다.

웰 메이드 로맨틱코미디는 대개 남녀의 관계, 이들 내면의 변화상을 섬세하게 따라잡는다. 하지만 <오! 해피데이>는 인물들의 관계와 내면의 목소리를 포착하는 대신 캐릭터와 상황에서 파생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정의의 화신인 공희지가 안하무인의 야심가 김현준을 사랑하게 되는 건 운명이라 치더라도, 뻣뻣한 김현준이 공희지의 ‘선행’에 감복해 호감 이상의 감정을 품는 과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캐릭터는 저마다 코믹 에피소드를 쏟아내느라 입체적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것이다. 김현준과 부딪칠 빌미를 만들기 위해 환경운동을 시작한 공희지가 “갯지렁이를 살려주세요”라고 간청하는 대목이나 공희지의 의도적인 접근을 알아차린 김현준이 “내 배경이 그렇게 탐났나요?”라며 배신감을 드러내는 대목이 어색한 것도 그런 이유다.

<오! 해피데이>는 심각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순간마저도 웃음의 재료로 둔갑하곤 한다. 연애가 뜻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 눈물을 떨구는 공희지의 얼굴에서 카메라가 빠지면, 공희지는 비빔밥을 한 가득 입에 우겨 넣거나, 비데에 앉아 치질수술 직후의 고통을 실감하는 중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연애하는 여자의 내숭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김현준이 공희지를 어르고 달래느라 ‘야누스처럼’ <이 밤을 다시 한번>을 부르는 장면도 웃음을 자아낸다. 반면 둘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처럼 심각한 상황은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서둘러 막음되는 식이다. 코믹 버라이어티쇼처럼 달려가던 영화가 호흡을 고르고 진지해지는 유일한 순간은 공희지가 아버지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대목. 따뜻한 울림이 있지만,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오! 해피데이>는 파편적인 웃음을 선사하긴 하지만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고 따라가게 하진 않는다. 그것은 보는 이에 따라, 이 영화의 미덕이기도 하고 결함이기도 하다. 당신이 만일 ‘장나라’나라의 시민이라면, 극장에서 심각하거나 진지해지고 싶지 않다면, <오! 해피데이>는 만족스런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해피’한 관람을 보장할 수 없다.

:: 윤학열 감독 인터뷰

“가정을 따뜻하게 그리고 싶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한 윤학열 감독은 <오박사네 사람들> 등의 TV코미디물 작가로 활동했고, <인연> <블루>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오! 해피데이>는 윤학열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 일반 시사 반응이 좋다. 예감이 어떤가.

믿고 맡겨준 분들을 실망시키지는 않겠구나, 하는 정도다. 내가 현장 경험도 적고, 영화의 메커니즘을 잘 알지 못해서, 작품의 완성도에서 아쉬운 점은 많다. 다만 내가 가진 장점,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만족한다.

- 서민 가족 이야기로 만들어 보이겠다고 했는데, 가족과 친구의 비중이 시나리오보다 줄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문제였다. 영화의 맥이 러브 테마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전면에 나서다 보니, 가족과 친구들 에피소드가 많이 잘려나갔다. 관객의 몰입을 돕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계기와 과정의 설득력이 약한 편이다.

배우들은 화면에서 잘 뛰어놀아야 하는데,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살리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는 코미디만 13년을 썼는데, 남성 중심의 코미디를 주로 했었다. 해보니 로맨틱코미디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웃기기도 해야 하고, 멜로 감정도 살려야 하고.

- 전반적으로 애니메이션 느낌이 강하다. 장나라의 캐릭터가 특히 그렇다.

장나라는 TV에서 이미 많은 걸 보여줬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정극으로 변신시켜야 할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결론은 관객에게 더 친절한 방식으로 다가가자는 것이었다. 대중예술을 하는 한, 관객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장나라는 천성적으로 로맨틱코미디 배우로서의 자질을 타고났다. 상황만 설명하면 그에 대한 연기가 본능적으로 나온다. 장나라의 일상을 관찰하고, 활용한 대목들도 있다.

- 엔딩을 뮤지컬로 마무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로맨틱코미디하면, 떠올리는 해피엔딩을 좀더 색다르게 만들어 보이고 싶었다. 내가 희곡을 전공해서인지, 뮤지컬의 엔딩이 떠오르더라. 메인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콘티에도 없는 부분을 촬영하자고 하니, 스탭들도 처음엔 의아해했다. 그런데 편집하면서 그 뮤지컬 엔딩의 음악적 효과를 이해하더라.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의 국민성, 한국적 코드에 맞춘 것이기도 하고. 다소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결말에 어울리는 표현법이라고 생각했다.

- 이 영화에서 관객이 꼭 알아봐주길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괴롭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가족을 찾게 되고 위로받게 되지 않나.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도 중요하지만, 가정을 따뜻하게 그리고 싶었고, 그걸 느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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