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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를 둘러싼 논란

그 남자 시끄럽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이클 무어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처음 인지했던 것이 10여년 전이었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영화를 공부하는 과정이어서 그의 데뷔작이자 성공작인 <로저와 나>(1989)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열악한 화질의 비디오로 접한 <로저와 나>는, 그다지 감격스럽지 못했다. 독립 다큐멘터리의 수작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미시간주의 플린트라는 도시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자본과 지역주민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던 나에게 버거운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TV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그 당시까지도 그리 익숙하지 않았던 다큐멘터리 장르 자체가 낯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북극의 나누크>나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와 같은 다큐멘터리영화의 대표작들이 모두 비슷한 느낌을 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뒤로 완전히 잊고 지내던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가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들춰진 것은, 2000년 초 어느 날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미시간주의 트로이라는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방문 전에 내가 그 도시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는 그저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자동차 산업지대의 일부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동안, 나는 그 도시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거대한 규모의 공장들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고 길가에는 황량함과 스산함만 풍기는 오래된 작은 건물과 주유소만이 가끔 보이는 그 도시의 모습은, 딱 <로저와 나>에 나오는 쇠락한 자동차 공업도시인 플린트와 너무나 닮았던 것.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지척에 있는 트로이와 플린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과 흥망성쇠를 함께 경험한 도시였다.

그런 트로이에서의 경험 이후 개인적으로 마이클 무어라는 인물에 대해 작은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년 전 그의 화려한(?) 전력을 좀더 알게 되고 또 그가 <볼링 포 콜럼바인>을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드디어 일을 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기 전부터 여러 각도에서 현실화되었다. 우선 그가 출간한 <멍청한 백인들>은 미국사회와 그 사회의 현 정권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고, 이어 자신의 평소 신념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여과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다. 그 모두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주장을 대중에게 당당하게 전달한 것이기에 좋아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켠, 특히 미국 내의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일각에서는 그의 그런 행동을 이른바 ‘거짓말’ 또는 ‘반애국’으로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시각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안티-무어 사이트에 들어가보는 일. 사실 배우들의 안티 사이트는 많지만 이처럼 감독 또는 작가의 안티 사이트를 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보다 사이트들을 둘러보는 것은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볼링 포 콜럼바인>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일종의 반미-선동영화이기 때문에 아카데미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오스카상을 취소해라’ 사이트가 가장 눈에 띈다. 다큐멘터리에 장편다큐멘터리 상을 수여한다는 아카데미상의 기본적인 규칙이 무시된 것에 대해 네티즌들이 적극적으로 아카데미 위원회에 항의를 보내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무어는 거짓말쟁이’라는 사이트는 기본적으로 마이클 무어를 ‘남의 불행을 활용해, 자신의 영달을 노리는 파렴치한’으로 규정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곳이다. 컬럼바인 고교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의 무어에 대한 잔혹한 평가를 볼 수 있고, 다양한 안티-무어 사이트들로의 링크와 그 사이트들에 관련된 언론 보도들도 바로바로 업데이트받을 수 있다. 또한 사이트에서 직접 마이클 무어의 아카데미상 취소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현재까지 청원에 참여한 네티즌은 550여명에 이른다. 이 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안티-무어 사이트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마이클 무어가 진보의 탈을 썼지만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안티 사이트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어는 여전히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자신이 만든 영화 제작사인 Dog Eat Dog사의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네티즌들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고 있는 것. 그런 그의 고군분투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최근 적극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네티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무어의 아카데미상 수상식 장면을 뉴스로 방영하면서 일부러 야유 소리를 키웠다며, 원본 화면과 화면을 비교해 올려놓은 이들까지 있을 정도다. 여하튼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떠들썩하게 만든 무어가 또다시 논쟁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모쪼록 그 작품 또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마이클 무어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ichaelmoore.com

<볼링 포 콜럼바인> 공식 홈페이지 : http://www.bowlingforcolumbine.co.kr

‘오스카상를 취소해라’ 페이지 : http://www.revoketheoscar.com

‘무어는 거짓말쟁이’ 사이트 : http://www.moorelies.com